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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n 잡은 루이스 Sep 13. 2016

여름과 한강, 그 사이 어디쯤에 놓인 짧은 단상

우린 모두 여름에서 가을로 걷고 있어.. 천천히 천천히.

뉴스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연일 '폭염'에 대해 언급한다.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충분히 몸으로 느낄 수 있음에도 말이다. 빛의 속도로 간다고 해도 8분이 넘는 거리, 약 1억 5천만 km. 지구와 늘 같은 거리를 유지해왔을 태양이 올해는 조금 더 가까이 온 듯 느껴졌다. 굴복할 수밖에 없는 자연이라는 위대한 힘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흐른다.

"아 진짜 인간적으로 너무 덥다."


나는 가끔 한강으로 운동을 나간다.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나는 이 더위 속에서 '건강' 좀 챙겨보겠다고 나름 시원한 차림으로 한강을 따라 걷고 또 뛰었다. 마포역 부근에서 한강을 따라 한강철교까지 왕복하는데 대략 5km쯤 소요된다. 집으로 돌아와 씻고 에어컨 버튼을 누른다. '윙~'하고 돌아가는 에어컨으로 찜통 같은 더위를 하루하루 이겨낸다. 에어컨. 여름마다 작렬하는 태양과 그 먼 곳에서 발원하는 뜨거움을 이겨내기 위한 일종의 '인간의 저항'이랄까? 


하루는 에어컨 과부하로 전원 코드가 타버렸다. 전기가 필요한 가전들 모두 그 힘을 잃어버렸다. 급히 AS센터에 전화를 걸어 수리 예약을 했다. 5일 후에나 가능하단다. 

"아저씨, 부탁입니다. 빨리 와주세요."

에어컨이 없는 집안은 가히 살인적이었다. 힘 없는 선풍기만 더운 바람을 내뿜었다. 


그렇게 무더웠던 여름의 기억. 우리는 모두 여름에서 가을로 아주 천천히 걸어가고 있다. 



이어폰을 꽂고 근육을 푼다. 운동의 즐거움을 한층 더해줄 음악이 흘러나온다. 주변에 보이는 모습들은 어제와 똑같다. 

누군가는 천천히 걸으며 약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이한다. 느리게, 느리게. 또 어떤 사람들은 애완견과 함께 산책로를 걷는다. 몇 번이나 왔을법한 녀석인데 마치 처음 온 듯 온통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마냥 귀엽다. 옆으로는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신나게 달린다. 쉽게 볼 수 있는 한강 산책로의 모습이다.

한강은 잔잔했고 바람은 거의 불지 않았다. 조용하다.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와 자전거 바퀴가 돌아가는 소리, 가끔 강변북로를 지나는 자동차의 엔진 소리가 매미들의 울음소리와 함께 묘한 조화를 이룬다.  

강렬했던 여름이 서서히 자취를 감추는 듯 가을 분위기 물씬 풍기는 꽃들이 하나 둘 눈에 띈다. 산책로 옆으로 솟은 나무들과 우거진 풀에 가려져 있던 걸까? 또는 앞만 보며 걸었기 때문에 미처 보지 못했을까? '앞만 보며 살아가는 일부 현대인들'에 포함되는 나 역시 이 곳에서도 앞만 보며 걸었던 게 아닐까 싶다. 마치 경마장에서 말이 달리듯. 평소와 달리 천천히 그리고 느리게 걸으니 주변에 피어있는 꽃들이 한 눈에 들어왔다. 

땀이 범벅이 되어 뛰다가도 '숨고르기'를 위한 '쉼'은 필요하다. 우리 삶 역시 마찬가지. 숨 가쁘게 하루하루를 힘차게 달려온 우리의 삶에 한 번쯤 쉬어가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일 것이다. 쳇바퀴 돌듯 매너리즘에 사로잡혀 다크서클이 발끝까지 내려간 거울 속 우리 모습을 보다 빛나게 하기 위한 휴식은 온몸을 나른하게 만든다. 아주 편안하게. 잔잔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내 몸에서 뿜어져나오는 열을 식혀준다. 

한동안 그렇게 작렬했던 태양이 서서히 서쪽으로 내려앉는다. 노을이 진다. 빨갛게 드리워진 한강의 모습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모습을 뽐낸다. 하나 둘 불이 켜지면서 한강 위를 비추고 있는 불빛도 이 분위기를 달군다. 

푸른빛에서 붉은빛까지 아리따운 그라데이션을 뽐내는 시간은 매우 짧다. 순식간에 저 멀리 사라져 버리는 태양은 또 다른 날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사라진다. 불빛만 가득하다. 그나마 휘영청 밝은 달이 이 밤을 환하게 비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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