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스큐 Miss Que Aug 03. 2020

야밤 산속에서 와이파이를 찾는 여자,  그리고 남자

 아들친구 가족과 1시간 이내에 위치한 동네 뒷산에 캠핑을 가기로 했다. 주말이 되면 게임과 티브이 앞에 붙어 있는 부자를 보고 마음이 찜찜했는데, 캠핑을 할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았다. 무엇보다 그들을 스크린으로부터 차단시키는 게 좋았다.


나는 주말이라 별 특별한 일은 없지만 딱 하나, 글쓰기 커뮤니티 [한 달]에  내일 아침 8시 전까지 글을 올려야 한다. 명색이 실리콘밸리라는 곳은 와이파이가 안 터지는 곳이 곳곳에 많다. 일 년에 정전도 한두 번씩 발생한다. 캠핑장으로 향한 차 안에서 1시간 안에 글쓰기를 목표로 열심히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예상보다 일찍 산길이 나오기도 전에 와이파이가 끊어졌다. 쓰던 글 어디로 갔는지 어딘가에 살아는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꼬불꼬불한 산길을 올라간다. 샌프란 시스코 국제공항에서 동쪽 내륙으로 한 시간, 밀피다스, 이곳 산은 동글동글한 동산 같은 모양에 황금색 잔디가 깔려 있는 듯하고, 그 사이사이 어두운 초록나무가 듬성듬성 있는 모양이다. 이 동글동글 언덕 같은 황금빛 산은 겨울이 되어 비가 많이 내리면 싱그러운 초록색으로 옷을 갈아입는다. 나는 비가 주구장창 내리는 캘리포니아의 겨울을 우기라고 부른다. 다른 사람들이 우기라고 부르는 것은 보지 못했다.


도착 후 캠핑장을 둘러보는 관리인( park ranger)에게 물어보니 와이파이가 터질 가능성이 있는 곳을 몇 군데 알려줬다. 제일 마지막 옵션은 공원 입구 초소인데 너무 멀다. 저녁 하이킹에서 멋진 달을 보고 일행에게 양해를 구한 다음  혼자 산속 길을 더 걸었다.  이곳저곳 다 가봐도 와이파이 터지는 곳은 없었다. 포기하고 내일 아침을 기약했다. 다음날 새벽 일찍 눈이 떠져 겸사겸사 텐트를 나섰다. 아침해가 뜨기 시작하는데 여전히 와이파이를 찾지 못했다. 배터리에도 빨간색이 떴다. 포기하고 발길을 돌린 순간 차를 몰고 나가는 일행의 아빠를 보았다. 그리고 와이파이를 찾으러 나간다고 해서 그 차에 올라탔다. 머쓱하게 웃으며 본인이 이메일 체크 중독이라며, 집 시큐리티, 주식, 비트코인, 사이드로 하는 트럭 렌트 일 등을 확인한다고 했다. 하루 자고 오늘 내려가는 건데 다 자는 새벽에 시동을 걸고 차까지 끌고 나와야 했는지 의문이었지만, 어제부터 와이파이를 찾아 산속을 헤매고 다닌 내 꼴도 우습기는 마찬가지다. 산책 삼아 와이파이를 찾는 건 괜찮았지만, 캠핑 와서 굳이 차를 타고서 까지는 찾고 싶지 않았다. 구차하고 모양 빠지는 일로 생각했다. 난 참 실속도 없다. 차를 타고 한방에 공원 입구로 가니 초소 뒤 와이파이가 바로 잡혔다. 볼일이 끝난 그 아빠는 돌려보내고 나는 와이파이 수신 탑 밑에 앉아 빨간불이 뜬 핸드폰을 붙들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타이밍도 기가 막히게 어머니 전화가 울린다. 급한일이 아니길 바라며 거절을 눌렀다. 글을 포스팅하고 자리에서 일어나기도 전에 배터리는 죽었다. 사실 배터리가 꺼지지만 않았으면 확인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았다. 와이파이와 스크린에서 멀어진 아빠와 아들을 보고 흐뭇할 줄 알았는데, 정작 와이파이 없는 산속에서 안달 난 건 나였다


아~ 이렇게 개운할 수가 캠핑장으로 돌아가는 길은 의도치 않은 조깅으로 마무리했다. 개떡 같은 글이라도 다 쓰고 나면 이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천천히 걸어가도 되는 길을 뛰어가게 만든다.


.




작가의 이전글 미국은 구조조정 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