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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큐 Miss Que Aug 04. 2020

우리 동네 우편배달부 베니시아

띵동! 벨이 울렸다. 문을 열어보니 몇 개월 전 우리 동네에 새로 온 우편배달부 베니시아였다. “혹시 이 개 알아요?”라고 말하며 몸을 돌려 가방 안을 보여주는데, 깜작 놀랐다. “아톰?” 집에 있어야 할 우리 집 개가 우편배달 가방에 편안히도 들어앉아 계셨다. 베니시아가 편지를 배달하는 동안 개가 이 집 저 집 걸어 다니는 걸 본 뒤 점점 멀리까지 가는 걸 목격하고는 잡아서 가방에 넣고 일일이 근처 집 벨을 누르며 물어봤다고 한다. 아톰은 틈만 나면 집을 나간다. 늦잠 자는 걸 좋아하는 아톰이 침대에서 아직 자고 있다고 생각했지, 없어진 줄은 상상도 못 하고 있었다. 아침청소 중에 잠시 문을 열어놓은 사이에 나간듯한데, 나는 그것도 모르고 아톰이 나갈까 봐 언제나처럼 문을 꽁꽁 닫고 있었다. 이 무거운 개를 가방에 넣고 다녔을 베니시아를 생각하니 고맙고 미안했다.


베니시아를 처음 만난 건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새해가 오기 전쯤이었던 것 같다. 처음 보는 여자 우편배달부가 아들과 이야기하고 있었다.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는데, 다음날 우리 집 벨을 누르고 아이에게 작게 포장한 사탕을 건네주었다. 고마운 마음은 잠시였고, 순간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미국에 10년 넘게 살면서 우편배달부와 이야기해본 기억은 없다. 동네에서 못 보던 여자 우편배달부가 갑자기 아이에게 사탕을 건네고 벨을 누르고 이야기도 하는 상황은 나에게 충분히 이상해 보였다.


베니시아의 몸에 달려있는 스피커에서는 클래식 디즈니 풍의 아이들 노래가 항상 흘러나온다. 세인트 페트릭 데이에는 초록색, 금색 초콜릿 봉지를 건네고, 부활절에는 달걀, 토끼 모양의 달달한 것들을 봉지에 예쁘게 포장해 우리 집 우편함에 넣어주었다. 그녀의 이름은 그때 그 사탕 봉지 속에서 보고 알았다. 베니시아의 노랫소리가 우리 집에 가까이 다가오면 아들은 문밖으로 뛰어나가 반갑게 인사한다. 캔디의 힘이 강하다.


우리 집 개를 찾아주고 무장해제가 된 나는 베니시아와 마주칠 때마다 우리 집 냉동실에 있는 메로나를 건네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처음 먹어보고 입맛에 꽤 맞았는지 그다음부터는 다른 옵션이 있어도 메로나만 먹는다. 그녀는 아이들과 동물들을 좋아하는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어제는 베니시아가 하루 종일 오지 않았다. 다른 우편배달부도 오지 않은 것을 보니 갑자기 아프거나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닌가 싶다. 오늘은 메로나를 준비하고 베니시아를 기다려봐야겠다.

 

베니시아의 얼굴은 초상권을 위해 필터 처리, 상습 도망자의 얼굴은 전격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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