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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움 Dec 14. 2023

당신은 어디쯤에 서있습니까?

-연극 <엘리펀트 송>을 보고


환자복을 입은 소년이 품에 코끼리 인형을 소중하게 감싸 안고 있다.


안광이 희번덕거리는 눈으로 병원장 그린버그에게 거래를 제안하는 영악함을 보이다가도, 

간호사 피터슨이 방에 들어오면 그 자신을 대변하듯 

인형 '안소니'를 앞세워 몸을 웅크리고 도통 알 수 없는 말들을 해댄다.



15살부터 8년간 정신병동에 입원해 있는 마이클은 

'다른 사람들을 미쳐버리게 하는 일'에 충실한 '정신병자의 본분'을 하는데 여념이 없다.





"진실은 곧 알게 될 거예요"


캐나다 브로크빌의 한 병원.
크리스마스이브를 하루 앞두고 의사 로렌스가 돌연 사라져 버린다.

유일한 단서는 그가 마지막으로 만난 환자 마이클의 증언뿐.

병원장 그린버그는 행방의 단서를 찾기 위해 마이클을 찾아오지만
마이클은 수간호사 피터슨을 경계하며 알 수 없는 코끼리 얘기만 늘어놓는데...

치밀하게 엇갈리는 세 사람의 대화가 가리키는 진실은 대체 무엇일까.

-네이버 '엘리펀트 송' 소개 중에서





연극 <엘리펀트 송>은 2015년 초연 이후, 꾸준히 사랑받아온 연극으로, 

치명적인 스포일러가 있어 이를 알고 보는 것을 '지뢰를 밟는다'라고 할 정도로

촘촘히 쌓여가는 복선을 따라감에 있어 

곳곳에 깔려있는 스포의 중요성이 실로 대단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저기서 조금씩 주워들은 지뢰를 미리 밟았음에도 불구하고

<코끼리의 노래>는 눈물을 자아내고,

90분 내내 이어지는 소년의 자유를 향한 갈망은 안타까움과는 별개로,  그 결말을 수긍할 수밖에 없게 한다.

그리곤 어깨를 찍어 누르는 막막한 허탈감을 암전 속에 남기고 사라진다. 

   





마이클은 가벼운 만남으로 이어진 오페라 가수 엄마와 엔지니어 아빠 사이에서

24시간의 짧은 사랑의 결과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출중한 실력의 유명한 오페라 가수인 엄마의 '성대를 찢고 태어난' 

사고 같은 탄생에 대해 소년은 죄책감을 안고 자라난다. 



그렇기에 그 후로 오랫동안

무대 위에서 환호를 받던 엄마가 자신을 목에서 꺼낸 후, 

갑자기 목소리가 나오지 않자 곧장 비난과 야유를 받는 것을 지켜보는 악몽을 반복해서 꾼다. 



엄마는 커리어의 오점인 소년에게 한없이 냉랭하고 무심했지만, 

단 한번 아빠를 만나게 해주는 희망을 주기도 한다. 

엄마는 이것이 소년에게 희망일지 절망일지조차도 관심 없었겠지만, 

소년은 부푼 마음으로 케이프타운으로 아빠를 만나러 간다. 



아빠가 거대한 사파리에 가자고 하자 어린 소년의 가슴은 요동친다. 

별빛 같은 조명이 무대 뒤의 숲에 흩뿌려진다. 

초록의 빛, 소년의 눈도 숲처럼 빛난다.

소년은 광활한 자연 앞에 꿈꾸는 눈동자로 서 있다.



차를 타고 숨어 들어간 아름다운 자연, 

펼쳐지는 거대한 초록, 

거기서 마주친 신비한 동물, 

코끼리, 아름다운, 코끼리, 코끼리...


모계사회를 이루고 사는 무리동물.

엄마 뱃속에서 자라는 시간이 부럽게도 무려 20개월.


그러나, 이윽고 차의 굉음과 함께 뿔뿔이 흩어져

한 마리가 섬처럼 고립된다. 



"참 아름다운 동물이지 않니!!!!!" 

본인의 앞마당처럼 당당한 아빠는 호기로운 목소리로 코끼리의 아름다움에 대해 외치다

돌연 장총을 꺼내 코끼리를 겨눈다. 


이윽고, 

총성이 연달아 세 번.




 탕! 코끼리는 휘청거리고 차는 도무지 멈출 줄 모르고 돌진한다.


탕! 코끼리의 머리에서 흐르는 피. 아빠는 주저하지 않고 다시 한번.



탕!! 



소년은 아빠와 함께 차에서 내려 쓰러진 코끼리에게 다가간다.

피를 흘리는 코끼리는 눈을 감지 못한 채 아직 살아 있다, 아니 죽어가고 있다. 

눈동자를 덮는 피. 

소년은 일방적으로 가담된 이 '죽임'을 평생 잊히지 않는다고 말한다.



무대 뒤 초원 속에 형형히 빛나는 붉은 꽃. 


마이클에게 깊이 각인된 피 흘리는 눈동자가 생기고, 

케이프타운에서 돌아오는 길에

보통은 매니저가 엄마의 역할을 대신했음에도 불구하고, 

희귀하게도 처음으로 마중 나와준 엄마는 코끼리 인형 '안소니'를 선물해 주며,

소년에게 평생 소중히 지켜주라는 말을 남긴다.



그리고, 코끼리를 세는 노래 '엘리펀트 송'을 알려준다.



아름다움을 사냥해 손에 넣어야 직성이 풀리는 아빠와,

마이클의 소회는 묻지도 않고 혼자만의 심상만으로 코끼리 인형을 사다 안기는 엄마는

명백히 접점이 없었을 것이고, 같이 살았다고 해도 정상적인 결혼생활을 할 수 없었을 것 같다.


그래서  아마 아빠는 아들에게 한번뿐인 멋진 경험을 시켰다고 내심 뿌듯했을 것이고,

엄마는 마이클에 대해 한없이 무심했기 때문에, 

보드라운 인형을 안기며 그토록 무거운 약속을 시켰을 것이다.


<다정함을 가장한 이 무심한 잔인함>이 소년에게는

어쩌면 견디다 보면 사랑받을 수 있다는 희망으로 각인된다.

온전히 부모의 타의로 태어난 마이클에게 아빠는 일방적으로 폭력을 가하고, 

엄마는 냉담함으로 일관했지만 마이클은 앤서니를 품에 안고 딱 그 크기의 희망을 품으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엄마는 마이클이 15세가 되었을 때,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시도를 하게 되고,

 소년은 이를 발견한 후 즉시 911에 신고한 후,  엄마가 힘겹게 내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기도한다.


"사랑한다,라고 했으면 더 바랄 게 없었고, 미안하다,라고만 했어도  참을 수 있었는데.."


"음정 3개를 틀렸어.."

엄마는 어제 콘서트에서 실수했다는 말을 끊임없이 되뇔 뿐이다.

소년의 존재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이.


영원히 음정 3개보다 못한 나. 죽는 순간까지 음정 3개가 전부인 엄마. 



사랑받을 수 있다는 잠시간의 거짓만 주고, 

영원보다 더 오래도록 소년에게 냉담하려는 결심을 한 엄마를 위해

소년은 차분해진 목소리로 조그맣게 '엘리펀트 송'을 부르기 시작한다.



아직 감지 못한 엄마의 눈을 바라보며, 

코끼리 한 마리, 코끼리 두 마리, 코끼리 세 마리... 



엄마가 알려줄 땐 따뜻하게 느껴지던 <엘리펀트 송>의 음률이 음산한 장송곡처럼 들리게 되는 순간. 

코끼리가 죽어가는 소리를 흉내 내는 소년의 찢어지는 괴성에서 

오래전 잔칫날 잡았던 돼지 한 마리의 죽음이 떠올랐다.



인간의 경사를 위해 희생되던 돼지의 끝나지 않던 울음소리. 감겨있던 밧줄들. 괴로워하는 소음.


따뜻한 방바닥에 앉아 깎아준 과일이나 먹고 있던 어른 남자들은 마당에 나와

사냥이라도 해온 듯 당당했지만,

분주하게 일만 하다가 사랑방에 숨어 다 같이 문고리를 닫아걸고

귀를 막고 고개를 휘젓던 할머니의 며느리들.

손바닥으로 내 눈을 가려주느라 귀를 막지 못한 나의 엄마.


그리고 호기심 때문에 엄마 손을 치우고 잠깐 열어본 문 틈으로 보이던 꽁꽁 묶인 돼지.

이윽고 궁금해해선 안되었다는 죄책감. 그러나 들떠있는 사람들. 

넓은 마당에 신명 나게 울리던 꽹과리의 음이 조금씩 느리게 들리기 시작했던 것. 

경사로운 잔칫날, 울던 돼지를 할머니의 며느리들의 품으로 썰은 돼지를 먹는 것. 



여린 아이에게 잔혹함은 소리 없이 찾아온다. 그것이 성장의 일부가 되었을지라도, 

엄연한 폭력은 찬 계절이 올 때마다 자꾸 긁게 되는 볼록 올라온 상처로 남는다. 

세 번의 총성이든, 세 개의 음정이든. 

순간을 잠식하는 어둠은 평생 소년만의 것.


코끼리의 죽음을 방치하는 걸 보았듯이, 이윽고 엄마의 죽음도 바라보기만 하는 소년. 

엘리펀트송이 20여 마리째의 코끼리를 세자 엄마는 숨을 거둔다.



"엄마, 쉬어."



그는 존속 살해로 정신병동에 온 것이었다.






마지막 상담에서 소년은 그린버그에게 당신은 나와, 내가 원하는 것 사이,에 있다고 말한다.


나는 그 '원하는 것'이 죽음을 포함하되 그에 국한되지 않으며,

수많은 기대를 품게 했던 기대감의 전부, 곧 실현되지 못한 모든 희망이었다고 느낀다.



소년은 죽음을 원했고, 정신병동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기 위해 존재했다. 

소년은 주치의인 로렌스를 사랑했고, 로렌스 또한 그랬지만 그 사랑의 '형태'는 달랐다. 



흔히 사랑의 '대상'이 엇갈리는 삼각관계를 미완성으로 보고, 

두 사람의 사랑이 쌍방으로 이루어지는 결말을 해피엔딩으로 보기 쉽지만, 

두 사람이 퍼즐이 온전히 들어맞는 것. <주고 싶은 사랑과 받을 수 있는 사랑의 합치>야말로 이상이 아닐까.



우리의 퍼즐은 겉으로 보기엔 마이클의 엄마인 오페라 가수의 

씨디 케이스처럼 모두 비슷한 정사각형처럼 보이지만,

그 안을 열어보면 미처 정상적으로 자라지 못한 기형적으로 생긴 구멍이

누군가 혹은 무언가로 인해 늘 완벽하게 꼭 맞춰질 순간만을

기다리다가, 혹시나 하다가, 그리하여 희망을 잔뜩 품었다가, 산산이 부서져버린다. 



마이클이 끝끝내 자유를 선택했음을 알고 전화너머로 우는 로렌스에게 

"지금 .. 나를 위해 울어주는 거예요?"하고 놀란 듯이 말하며

"사랑해요."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서둘러 전화를 끊는다.



이 '나를 위해 울어줌'이 마이클이 그 순간 로렌스에게 바란 전부라 해도, 

그걸 듣는 순간 또 무얼 더 할 수 있겠는가. 

마이클이 주고 싶은 사랑은 이미 오래전에 갈 곳이 없어져 

소년과 소년이 원하는 어떤 것의 행간에서 계속 헤맬 뿐이다. 



부인과 아이 문제로 불화를 겪는 그린버그에게 

마이클은 아이가 태어난다면 

"1분 1초도 놓치지 말고 사랑해 주세요.

온 힘을 다해 아낌없이 사랑해 주세요."

라는 말을 남긴다. 



소년은 사랑받길 원했고, 그 누구도 쉽사리 사랑을 주지 않았다.

소년은 사랑하고 싶었지만, 주고 싶은 사랑의 형태가 그 누구와도 맞지 않았다. 



그렇게 소년은 의자에 누운 채, 무대는 암전에 잡아먹히고,

또 소년은 홀로 고립된 코끼리처럼, 피 흘리며 죽어가는 코끼리처럼, 눈도 감지 못한 코끼리처럼.

기꺼이 자유를 선택하고, 또 타의로 자유에 선택당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나는 다시 무대 위의 시간을 돌려, 

그의 마지막 상담을 맡아, 그 자신도 알지 못한 채 소년에게 자유를 주고 만 그린버그가 되어 본다.

마이클을 구할 아드레날린 주사를 들고 계단을 한달음에 걸어 올라가더라도,

그게 언제든, 내가 얼마나 빠르든 간에 그 구원의 시계는 애초에 늦어버리고 만 것이다.



외로운 코끼리는 덩그러니 혼자 있고야 마는 것이다.




당신은 어디쯤에 서있는가?



우린 삶과 죽음의 사이를 걷는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삶과 사랑의 사이라고 느낀다.



이토록 삶을 헤매게 하는 것은 죽음인가 사랑인가.

객석의 시공간을 모두의 훌쩍거림으로 가득 채운 암전이 끝나고도,

객석이 조명으로 환히 밝혀졌어도, 나는 좀처럼 출구 쪽으로 발걸음을 뗄 수가 없었다.





연극을 관람한 후, 밤마다 고요한 혼자만의 시간이 오면

바로 어저께의 기억보다 또렷한 유년 시절의 기억들이 머릿속에 몰려들어 며칠밤을 조금씩 나눠 울었다.



힐링극이라 할 수도 없고, 멘탈 탈곡극이라 하기엔 따뜻한 이 연극은 뭘까.

잊고 지낸 지나간 상처를 쿡 찔러 그 아문 자리가 다른 살보다 단단해진 게 맞는지,

감히 흉터가 있었다는 걸 잊지는 않았는지 진실을 마주하고 확인해 보는 자가 테스트 같은 것이라 하겠다.




'삶은 사랑과 절망 속에서 끼어 노는 습성이 있다.'


어쩐지 마이클은 마지막으로 내게 이 말을 내게 해준 것 같다. 



231210 오후 5시, 이 날의 캐스트 



+) 맡은 회차를 전부 피켓팅으로 만드는 마이클 역의 <전성우 배우>는

<마이클 장인>이라는 호칭에 걸맞게 호연을 보여주었다.

.. 평생 소년을 연기하소서! 


+) 연극의 주된 지뢰들은 전혀 적지 않았으므로(!!!) 

+알아도 느끼는 바가 매우 큰 좋은 연극이므로

극장에서의 관람을 적극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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