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집사의 손은 항상 흙투성이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화장실도 안 가고 커튼을 걷는다.
그 이유는 단 하나.
"밤새 너희, 잘 있었니?"
내가 하는 말에 대답하는 건 아무도 없지만,
초록이들은 분명 뿌리로 무언가를 말하고 있다.
오늘은 해가 잘 드는 창가에 화분을 다시 배열한다.
어제도 했지만, 오늘은 느낌이 또 다르다.
식집사는 감정의 기류까지 반영해서 배치를 바꾼다.
출근 준비를 하면서 나는 커피 대신 분무기를 든다.
식물에 물을 줄 땐 꼭 예쁜 유리병을 써야 한다는 철학이 있다.
가성비는 떨어지지만, 식물도 예쁜 걸 보면 자란다고 믿는 나만의 과학이다.
그리고 오늘도 화분 흙에 손가락을 찔러 넣는다.
"음, 2cm 아래는 아직 축축하군."
누군가는 이걸 시간 낭비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식물을 돌보는 건 루틴이 아니라 힐링이다.
스킨답서스 잎 끝이 갈라지는 걸 보고 잠 못 이루는 날도 있다.
물 준 지 3일밖에 안 됐는데 왜 이러는지,
퇴근길에 벌써 분갈이 흙과 화분을 사게 만드는 마법.
이게 바로 식집사의 숙명이다.
가끔은 초록이들이 말을 거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오늘따라 습도 좀 부족한데?”
“이 창가는 나보다 몬스테라가 더 좋아해.”
“나 물 안 줘도 되는데… 또 줘?”
이런 대화가 오가는 내 집은 이미 미니밀한 정글이다.
친구가 집에 놀러 오면 묻는다.
"너 이걸 다 어떻게 관리해?"
나도 모른다.
그냥… 하다 보면 된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손이 간다.
그리고 매일매일 그 초록의 작은 변화가
내 하루의 소소한 성취가 된다.
가끔 죽는 애들도 있다.
한겨울에 과습으로 무너진 스투키,
해가 너무 강해 타버린 고무나무 잎사귀.
그럴 때는 하루 종일 죄책감이 따라붙는다.
식물 하나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
하지만 또 배운다.
그 아이가 떠나고 남은 빈 화분을
다음 식물을 위해 비워두는 법도.
식집사의 하루는 생각보다 다이내믹하다.
신제품 화분 입고 소식에 설레고,
흙 배송이 지연되면 괜히 조바심이 난다.
카페에 가도 사람보다 식물을 먼저 본다.
“이건 실내에서 저렇게 키워도 되나?”
며칠 후 집에 와서 똑같은 식물을 찾아보는 것까지 포함해서.
요즘은 식집사라는 단어가 참 잘 만든 말 같다고 느낀다.
단순히 식물을 키우는 게 아니라,
진짜 집사가 된 기분이다.
물 주고, 잎 닦아주고, 아픈 데 생기면 병원도 찾고.
가끔은 내 기분보다 초록이들 컨디션이 더 중요하다.
이런 삶, 나쁘지 않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꽤 좋다.
식집사는 느리게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사람이다.
급하게 자라게 만들 수도 없고,
억지로 꽃 피우게 할 수도 없다.
그저 기다리면서, 매일 조금씩 돌보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런가, 나도 식물처럼
조금씩 성장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물을 주면서 마음속으로 말해본다.
“너도 나처럼 잘 자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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