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취소로 혼술

참치집에서 홀로 혼마구로와 냉사케

by Lounge And

약속 취소로 혼술



퇴근길에 휴대폰이 울렸다.

오늘 저녁 약속이 취소됐다는 짧은 메시지였다.

이유는 익숙했다. “갑자기 일이 생겨서 미안.”

특별히 섭섭하지도, 그렇다고 아무렇지도 않았다.


가던 길을 멈추고 천천히 방향을 틀었다.

집으로 곧장 가기엔 시간이 너무 이르고,

굳이 새 약속을 잡기엔 마음이 덜 움직였다.

그래서 문득 떠오른 곳이 있었다. 골목 끝, 참치집.


들어가자마자 코끝을 스치는 차가운 생선 냄새와

은근히 비릿한 공기, 그리고 조용한 재즈.

혼자 앉기에 어색하지 않은 작은 바가 마음을 받아 준다.

의자에 앉자마자 사장님이 물었다. “혼마구로 괜찮으세요?”


냉사케 한 병과 혼마구로 소자를 주문했다.

술잔이 놓이자마자 냉기가 손끝을 쓸고 지나갔다.

잔을 들며 스스로에게 묻는다.

“혼자 마시는 건 괜찮은 걸까, 아니면 그냥 익숙해진 걸까.”


첫 점을 집어 간장에 살짝 찍었다.

기름기 없이 단단한 붉은살이 입안에서 천천히 풀린다.

이건 배를 채우는 게 아니라 하루의 긴장을 푸는 의식 같다.

한 모금의 사케가 그 여운을 매끄럽게 이어준다.


주변의 소음은 적당히 멀었다.

낯선 이들의 대화가 배경음처럼 흐르고,

혼자 앉은 나만의 세계는 점점 또렷해졌다.

이런 고요가 나쁘지 않다.


문득 창문 너머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작은 방울들이 유리창을 두드리며 리듬을 만든다.

그 소리에 맞춰 술잔을 한 번 더 채웠다.

오늘은 누구에게 연락하지 않아도 되는 밤이다.


두 번째 점은 참다랑어 뱃살.

기름이 살짝 번지며 사케의 차가움과 부딪힌다.

혀끝에 남는 감칠맛이 묘하게 오늘 하루의 피로를 씻어낸다.

나는 잠시 아무 생각 없이 그 맛을 따라갔다.


식사는 천천히 진행됐다.

시간이 늘어지니 마음도 조금씩 풀린다.

아까까진 공허했던 자리였는데,

지금은 조용히 나를 위로하는 의식처럼 느껴진다.


사람은 결국 혼자 있어도 괜찮은 법을 배워야 한다.

처음엔 외로움 같지만, 익숙해지면 평온이 된다.

오늘의 혼술은 그 경계선 어딘가였다.

비어 있는 의자가 어색하지 않을 만큼의 고요.


잔을 비우며 다시 생각했다.

약속이 취소되지 않았다면

이 밤은 그냥 시끌벅적하게 흘러갔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혼자 있는 이 여유가 조금은 고맙다.


계산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골목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나는 잠시 멈춰 섰다.

참치의 여운과 사케의 온도가

천천히 몸 안에서 섞여드는 기분이었다.


오늘의 저녁은 계획된 만남보다 낫다.

누구와의 대화보다 진한 건

나와 나 사이의 짧은 침묵이었다.

참치집의 불빛이 멀어질수록 마음은 묘하게 단단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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