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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Mar 12. 2017

나는 너의 움직임이 좋다

 모처럼의 휴일을 보내고 있었다. 이상하게 이번주는 그도 나도 주중에는 진득하게 휴식을 취할 수 없을만큼 마냥 바쁘기만 했다.



 그런 와중에도 겨울은 낮이면 봄을 불러와 설렐 것 없는 일상에 꽃을 선물해주었고, 그는 그때마다 짧은 전화로 내게 오고 있는 봄을 알려주었다.


 내일 뭐할까? 어젯 밤, 통화를 하며 묻던 그는 손으로는 어지러운 집안 곳곳을 치우고 있는 듯 했다. 전화너머로 들려오는 작은 소리를 들으며 나는 그의 움직임을 보고있지 않아도 보고 있는 듯 했다.



 < 영화볼까? >

 < 아니다. 그 때 그 카페 갈까? >



 지나오며 내가 던졌던 말들을 기억해 뱉는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나도 모르게 지나 온 오늘을 먼저 얘기했다.


  " 은결이 결혼한대. "
  " 어 진짜? 언제? "
  " 다음 주 토요일. 회사다니랴, 결혼준비하랴 정신없겠더라. 오늘도 우리한테 연신 미안하다는데, 이상하게 그 상황이 이해 되는 거 있지. "
  " ..그렇겠지? 자기도 곧 그 상황을 만날테니까. "


 그리곤 말이 끝나자마자 아 맞다, 물! 하며 바쁘게 걷는 걸음이 전화 너머로 들려왔다. 뭔 소리야. 그의 말을 되 묻지 않아도, 대충 그 말의 뜻을 이해했으면서도 나는 한번 더 물었다.


  " 뭔 소리긴, 우리도 결혼해야지. "


  뭘 묻냐는 듯 당연하게 얘길하는 그의 목소리를 넘어 컵으로 물이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곤 이내 들려오는 목소리는 전보다 조금 밝게 들려왔다. 마치 어린아이가 갖고 싶어했던 장난감을 손에 쥐고 얘길하는 것 처럼.


  " 자기가 준 더치커피 이거 진짜 맛있다. 오늘 집에 있으면서 세번은 더 타 마셨어. "
  " 무슨 커피를 그렇게 많이 마셔. "
  " 맛있어. 진짜 맛있어. "


 짧지않은 긴 시간동안 함께 만나오며 서로의 일상에 당연하게 서로가 물들어 있었다. 막 연애를 시작한 연인들만큼의 설레임은 없지만, 그들에겐 없는 익숙함이 우리에겐 있었고, 사소한 감정으로 서로를 밀고 당기지 않아도 되는 당연함이 존재했다.


  " 아까 낮에 애들이랑 공차기전에 시간 좀 남아서 여섯이서 승부차기 했거든? 근데 철진이 오바해서 공차다가 넘어져서 코를 땅에 받은거야, 근데 웃긴게 진짜 정확하게 일자로 쭉 까졌어. "


  많이 다친 거 아니냐고 묻는 내 말에 그냥 까지기만 했다고, 이 참에 콧대 세울 핑계가 생기나 했는데 택도 없겠더라며 웃는 그의 목소리에 나도 따라웃으며 부엌으로 향했다. 잠깐씩 들려오는 커피 마시는 소리에, 그의 움직임에 덩달아 이끌린 것 이였다.



  " 결혼하면 지금보다 더 싸우겠지? "
  " 아무래도? 떨어져있는 시간보다 붙어있는 시간이 더 많을테니까. "
  " 그러면서 서로 몰랐던 모습도 보게되고? "
  " 에이 우리도 5년이 넘었는데. 내가 내 모습은 잘 몰라도 자기 표정, 행동보면 뭐 때문에 웃고 울고 서운해하는지는 척척 다 알지. "


  확신에 찬 말투였지만 그렇다고 으시 되는 건 아닌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작은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의 말마따나 나 또한 어느샌가부터 나보다도 그를 더 잘 알고 있었다. 그의 표정, 행동을 보면 뭐 때문에 웃고 울고 서운해하는지 척척 다 보였으니까.


  " 우리 처음 만났던 날, 자기 뭐 입고 왔는지 기억나? "
  " 나? 아니? 나 그 날 뭐 입었어? "
  " 노란색 옥스포드 셔츠. 내가 거기에 반했잖아, 뭔 남자가 노란색이 이렇게 잘 받나 싶어서. "
  " 얼굴이 아니라? "
  " 얼굴은 - 나 만나면서 많이 폈지? "


 당당하고 당돌한 내 목소리를 들으며 그는 어이없다는 듯 웃다가도 아 그래, 그건 인정. 하며 내 말을 거들어주었다.



 수 없는 나날들을, 수 없는 긴 시간들을, 시간따라 흘러가는 계절들 모두 함께 보내 온 5년 속에 묻어났고, 그 순간 거짓말처럼 기억의 잔상들이 뚜렷해지며 까먹고 지냈던 나날들을 일으켜주었다.



 그리고 그 기억은 우리가 함께일때를 세세하게 드러내줬고, 지금 내 옆에 있는 이 사람이 아니면 안되는 이유를 알려주었다.


  " 나 휴게소 우동 먹고싶어. "
  " 갈까 지금? "


 드라이브하며 노래 듣는 걸 좋아하는 내 취향을 배려해주던 그는 어느 날 내게 말했다. < 휴게소에 우동 먹으러가자. 여행 기분도 내고, 그 결에 드라이브도 하고. > 하며.


  " 안 피곤하겠어? "
  " 전혀. 나 옷만 입고 나가면 되는데 준비 할 시간 필요해? "
  " 그래도 예의상 비비는 바를게. "
  " 고오맙다. 이제 그 예의 갖추고 싶어도 못 갖출텐데, 지금이라도 실컷 갖춰. "
  " 야. "
  " 도착해서 전화할게. 미리 나와있지 말고, 전화하면 내려와. "
  " 응. "


 서로에게 모든 게 익숙한 우리였지만, 그래도 설레임은 곧잘 생겨났다. 지금처럼 당연한 듯 나를 이야기하는 그의 말에, 그럼에도 여전히 내가 먼저라는 듯 나를 끌어당기는 그의 행동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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