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y Jun 12. 2017

I swear

 나 취했어. 오늘 밤, 오랜만에 고등학교 동창들을 만난다던 그가 전화를 걸어 내게 처음 뱉은 말이였다. 조용하고 차분한 내 공간과는 달리 소음으로 가득 한 그의 주변이 일순간 외롭게 느껴졌고 건조함과 투덜거림 그 사이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시계를 확인했다.


  " 괜찮아? "
  " 버틸만 해. 뭐하고 있었어? "
  " 음악 듣고 책 읽고, 그러고 있었어. "
  " 무슨 음악? "
  " 레이첼 야마가타. "
  " 들린다. "


 내 말에 귀를 기울였던건지 조금은 풀린 목소리로 노래가 들린다고 얘길하는 그의 말에 나는 웃었다. 안 추워? 전화너머로 들려오는 바람소리를 들으며 내가 묻자 그는 응. 이라고 대답했다.


  " 시원해. 술 마셔서 그런가? "
  " 응. "
  " ... . "
  " ... . "
  " 아까는 내가 미안해. "


 진중한 그의 목소리에 나는 매만지고 있던 머그컵에서 손을 떼었다. 내가 잘못했어. 오늘 오후, 잠깐 오갔던 말다툼이 그에겐 하루종일 묻어 있던 듯 했다. 시끄러운 주변 소리에도 미안하다고 얘길하는 그의 목소리가 뚜렷하게 들려오는 걸 보니 나 또한 오늘 내내 그의 사과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 다음부턴 아무리 화나도 그렇게 매정해 지지는 마. "
  " 내가 좀 그랬지. "
  " 너무 다른사람 같았어. "
  " 어떤 사람? "
  " 되게 되게 못된 사람. "


 내 말에 그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제서야 마음에 맺혀있던 무언가가 터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이제서야 늘 상 마시던 달콤한 커피가 생각났다. 늦은시간 이였지만 지금 그녀에겐 시간이 문제가 아니였다. 커피를 마시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의 전화너머로 그를 부르는 친구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내일 열한시까지 데리러 갈게. "
  " 자리가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데. 괜찮겠어? "
  " 죽기야하겠어. 먼저 자, 들어갈 때 문자 남겨 놓을게. "
  " 그러지말고 내일 푹, "
  " 애들이 자꾸 부른다. 내일 열한시까지 갈게. 잘 자. 사랑해. "


 급하게 끊긴 전화였지만, 괜찮다고 말을 덧붙일 틈도 없이 그렇게 끊어져버린 전화였지만 나쁘지 않았다. 다만 내일 아침 숙취와 함께 저를 데리러 올 그를 위해 냉장고를 뒤적이던 그녀는 간단한 재료로 칼칼한 해장국을 끓여냈다. 그리고 그제야 미리 타두었던 커피를 한모금 마시던 그녀는 살짝 식어버린 맛에 아쉬워하면서도 이내 컵에서 입을 떼지 못했다.


 조용한 공간으로 방금 전 그와의 통화가 흘러 가는 듯 했다. 그의 진심어린 사과를 듣고, 한 순간 마음에서 무너져내렸던 그것 또한 사랑이였음을 그녀는 문득 느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너의 움직임이 좋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