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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Jan 24. 2016

사랑

소리없이 찾아 온 이별

 멀어지는 시간을 보며 네가 돌아오길 바랬다. 오랜 연애 끝에 헤어진 너를 뒤로하고 처음으로 맞던 혼자의 아침에서 나는 적나라하게 이별을 느꼈다. 매일같이 와있던 깊은 밤 너의 연락이 오늘은 없었고, 기다려도 애정 가득한 아침인사는 오질 않았다.


 지금 같은 순간은 네가 참 싫어하던 내 시간 중 하나였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친구들과 둘러앉아 술을 마실때면 나는 너에게 수차례 잔소리를 듣곤 했다.


 < 언제 갈 거야. >

 < 지금이 몇신 줄 알아? >

 < 금방 간다더니 뭐하는거야.>


 분명, 너에게서 밀려오는 잔소리가 찍혀있지 않은 빈 화면이였는데 어째서인지 내 눈엔 자꾸만 네 이름이 보였고, 늘 듣던 잔소리들이 핸드폰 위로 하나씩 새겨졌다.


 그로인해 난 금방이라도 자리에서 일어나야만 할 것 같았고, 술자리와 하나가 된 친구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 할 것만 같았다. 감성과 이성이 뒤섞여 나조차도 이 상황에 물들어 헷갈릴 때 쯤, 옆에 앉은 친구가 내 핸드폰을 뺏어 들며 말했다. " 아무것도 없는데 뭘 보고 넋이 나간거야? "


 몸이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그 말을 우리에게 덮고 싶진 않았다. 만나오며 겪었던 전적의 장거리가 있으니 이번은 괜찮을거라 생각했지만, 역시나 생각은 생각일 뿐. 마음은 한껏 울적해졌다.


 손으로 꼽자면 벌써 세번째였지만 그럼에도 어색한 이 시작에서 너는 나를 꼭 안아주며 기차에 올랐고, 우리 사이에 숨 죽어있던 장거리가 다시금 피어 올랐다.


 늘 그랬듯 서로의 위치에서 하루를 잘 보냈고, 늘 그랬듯 하루의 마무리는 둘만의 전화통화로 끝이났다. 몸은 떨어져 있었지만 익숙한 서로를 느끼며 하루를 이틀을, 그렇게 두 달을 보내던 어느 날. 이상하게도 너와 나 사이에 습관적인 연락이 돌았다. 평소같지 않은 너의 메세지를 보며 나는 밀려오는 엄한 생각에 부딪혔다.


 아닐거라 믿으며 대화를 이어나가려는 나와는 다르게 너의 대답은 짧았고, 의무적이였다. 순식간에 달라진 너의 행동에 나는 수많은 의심을 떠안았지만, 섣불리 의심은 않기로 했다.


 대신, 어제보다 두시간 빨리 나는 너에게 굿나잇 인사를 건네며 잠에 들었다. 내일이면 오늘의 내 생각이 삐뚤었었구나 라고 깨닫길 바라면서.


 야속하게도 달라진 것 없는 상황을 느끼며 하루가 시작되었다. 오전에는 오전 나름 바빠 연락이 뜸했고, 그건 너 또한 마찬가지였다. 바쁜만큼 잘가던 시간은 어느새 열두시를 넘어섰고, 나는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제에 의심을 애써 억누르며.


 왠지 어제보다 더 지친 너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나 또한 힘이 빠지는 기분이였다. 맛있게 밥을 먹으라는 말로 서둘러 전화를 끊으며, 나는 다시 한번 더 느꼈다. 어제 내게 밀려 온 의심은 거짓이 아니였으며, 오랜시간 함께한 너와 내 사이의 시계도 이젠 약발이 다되어 느리게,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는 걸.


 퇴근을 하고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선 셀 수 없이 많은 상황들이 내 머릿속을 덮쳐왔다. < 나 퇴근! > 이라고 보냈던 문자의 답은 정확히 한시간이 지나고야 도착했고, 간결하게 쓰인 조심히 들어가 라는 메세지를 보며, 나는 평소와 다르게 답장 앞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나를 발견 했다. 남들이 느끼기엔 짧을 하루 하고도 반나절의 시간은, 변한 너를 느끼기엔 내겐 더 없이도 충분했다.


 ㅡ 단순히 피곤해서라기엔 서로가 서로를 너무 잘 알잖아. 사실 나 얼마 전 부터 느끼고 있었는데, 어제부로 확신이 들어서 그래. 우리 늘 서로가 궁금하고 보고싶었잖아. 근데 어느샌가부터 그 말이 나만 하는 말이 됐어. 문자도 내가 이끌어가야만 대화가 되고. 안 그래?


 직설적인 내 메세지를 보고 차라리 네가 화내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다리던 순간, 거멓던 화면 위로 환한 불빛이 차올랐다.


 ㅡ 요즘 일이 좀 힘들어서, 미안해.


 분명 메세지엔 미안하다는 말이 적혀있었지만, 왜인지 나는 네가 미안해하지 않는다는 걸 느꼈다. 평소 같았으면 전화를 걸어 큰소리를 냈을텐데, 어쩐지 오늘은 그 행동조차 나를 머뭇거리게 했다.


 ㅡ 예전엔 미안하다는 말 대신 상황을 이해시켜주더니, 이제는 뭐만하면 미안하다는 말로 덮으려하네. 우리도 다 됐나보다.


 힘 없는 메세지를 쓰면서도, 다시금 그 메세지를 읽고 네게 보내면서도 나는 쓰린 마음을 느끼는 대신, 정말 허무하게도 찾아 온 이 이별을 온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ㅡ 미안해.


 대체 뭐가 미안하다는건지. 알면서도 모르겠는 일방적인 너의 그 마음을 나는 강제로 받게 되었다. 보고 또 봐도 이미 단정 지어진 너의 대답을 보며, 나는 답장을 하는 대신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날 저녁, 친구들 사이에선 오랜 연애 뒤 헤어진 내가 핫이슈였고 저마다 내 이야기를 들으며 열띤 토론을 이어나갔다. 연락이 올 거라는 말과, 안 올거라는 말을 들으며 나는 별안간 차오르는 확신을 느꼈다. 너는 절대로 전자가 아닐 거 라고. 이번만큼은 절대로 전자가 아닐 거 라고.


 멀어지는 시간을 보며 네가 돌아오길 바랬다. 오랜 연애 끝에 헤어진 너를 뒤로하고 처음으로 맞는 밤 열한시 이 시간에서, 나는 적나라하게 이별을 느꼈다. 늦은 밤 술자리에 있을때면 쉼없이 밀려오던 잔소리도, 걱정과 짜증이 섞인 전화도 이젠 오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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