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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Apr 19. 2016

달라보여

첫 번째 이야기

 왜 또 대낮부터 원준이 잡고 그래. 스쳐가며 식탁에 반찬을 놓던 엄마를 보며 이수는 울상진 얼굴을 해보였다.



 " 아, 엄마! "

 " 나한테 말한다며. 어머닌 두고, 계속 얘기 해. "



 그러며 이수의 팔을 붙잡은 원준은 다시금 이야기에 집중했다. 이수가 말하고픈 오늘의 푸념은 이러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사랑을 느껴 만나게 됐으면서 어떻게 하루 아침에 싫어졌다고 얘길 할 수 있는지, 어떻게 일방적으로 나 너 싫어졌어- 라고 말할 수 있는건지. 이해가 안된다고 말하며 결국엔 울었다.



 어머니, 저희 좀 나갔다 올게요! 급하게 이수를 부축해 집을 나선 원준은 조수석에 앉아 힘빠진 얼굴을 해보이는 이수의 얼굴을 손으로 쓸어내리며 차의 시동버튼을 눌렀다. 너 자꾸 징징거리면 합정역에 확 버리고 도망간다- 능숙하게 차를 운전하던 원준의 말에 이수는 참았던 화를 토해내며 소리를 질렀다. 하필 그 사람이 사는 그 동네에 저를 버리고 도망간다니-


 이런 순간이면, 이럴때면 꼭 먹어야하는 이수의 고질적인 고집을 꺾지 못한 원준의 차는 오늘도 페이처스로 향했다. 어찌나 자주왔던지 이제는 가게에 드나드는게 마치 집을 드나들듯 자연스러웠다.


 " 휘낭시에 둘, 쇼콜라 하나, 플랫화이트 두잔, 그리고 시원한 물 한잔 주세요. "


 제가 주문을 하고도 알차다 싶었고 민망스럽다 싶었던 원준은 재빨리 카드를 건넸다. 이윽고 결제 된 영수증과 카드를 건네받은 원준은 자리로 와 다 쓰러져가는 이수의 앞에 앉았다. 이런 꼬라지가 너무도 마음에 안든다는 얼굴을 감추지 못한채로.


 " 내가 한마디만 할게. "
 " 안돼. "
 " 너 그 남자한테는 이래봤냐? 이 얼굴로, 이렇게 말해봤냐고. "
 " 나 지금 여기까지 열났다? "


 제 이마를 손으로 짚으며 말하는 이수를 보며 원준은 두 눈을 꼭 감았다. 주문하신 음료 나왔습니다- 점원이 가져다 준 트레이 위에 놓인 커피를 이수의 앞에 놓아주던 원준은 눈치 아닌 눈치를 보며 소콜라 옆에 휘낭시에를 담아 건넸다.


 " 사랑이 그렇게 사람을 괴롭힌다, 그러니까 하지마. "
 " 야. "
 " 왜. "
 " 너 결혼 언제 할 거야? "
 " 왜. 너 나랑 맞춰서 결혼하게? "
 " 아니, 너 결혼하기전에 내가 먼저하게. "
 " 그건 무슨 심보야? "
 " 몰라. "
 " 미친거야? "
 " 미쳐가나봐. "
 " 일단 먹어. "


 포크를 쥐어주며 얼른 먹으라고 얘길하는 원준을 보며 이수는 날선 표정을 지어보였다. 넌 어디가서 그러지 마, 그러면 안돼. 마치 제가 그랬단 듯 단호하게 얘길하는 이수의 말에 마시고 있던 커피에서 입을 뗀 원준은 얄미운 얼굴의 이마를 밀며 인상을 찌푸렸다.


 " 난 너무 좋은 사람인게 늘 문제지. 연애를 하나, 그 연애가 끝나나. "
 " ... . "
 " 내가 그런 남자를 만났네 하고 말아. 작은 것 부터 후회하다보면 금세 니 인생이 흔들린다. 그러다보면 그 시간들이 아깝고, 좋았던 그 때가 보잘 것 없어지고. "
 " 너 말 잘한다. "
 " 반가워요, 바른 가치관의 소유자 차원준입니다. "


 꽃받침을 한 채 웃는 원준을 보며 따라 웃던 이수는 이내 다 비운 그릇을 트레이 위에 올려놓으며 차가운 얼음물을 벌컥 들이마셨다.



 전투 준비 완료? 손으로 동그라미를 만들며 웃는 원준의 얼굴출 향해 티슈를 날린 이수는 자리에서 먼저 일어섰다.


 " 싸울 준비 됐네. "
 " 나 매운 떡볶이 먹고 싶어. "
 " 너 지금 이걸 다 먹어놓고 뭘 또 먹는다고. "
 " 떡볶이 먹으러 가자. "
 " 이래놓고 너 내일되면 나한테 화낼거잖아, 얼굴 팅팅 부었다고. "
 " 안 내. "
 " 안내는 무슨, 낼 거 면서. "


 내일이면 제게 보여 질 이수의 행동들을 알면서도 원준은 못 이기는 척 따라 일어섰다.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선 어쩌다보니 옛 상황에 멈춰 별별 얘기가 다 나오곤 했다.너 고 2때 만났던 여자애, 걔보다 내가 더 나았어! 라고 얘길하는 이수를 보며 원준은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 너 당이 과하게 들어갔다, 다시 빼야겠네. "

 " 솔직히 그 여자 별로였는데. "
 " 그렇게 따지면 그 때 네가 만났던 남자도 별로였어. "
 " 그랬나? "
 " 어, 뱁새처럼 눈 찢어졌던 애. 걔 말하는 거 맞지? "
 " 뱁, 야. 그렇다고 사람한테 뱁새가 뭐냐, 뱁새가. "
 " 내가 그 때도 말했을건데, 걔 뱁새 닮았다고. "
 " 그랬나? "
 " 아마 내 말은 안들렸을거다, 좋아죽던때라. "


 이미 추억이 되어버린 일들을 기억으로 꺼내 얘기하던 얼굴 위로 웃음이 번져갔다. 집 앞 떡볶이 가게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매운 떡볶이 2인분을 주문하고선 신난 얼굴로 자리에 돌아 온 이수를 보며 원준은 손을 얼굴에 가져다대곤 부푼 모양새를 해보였다.


 " 그만큼 부어도 먹을 건 먹어야겠다, 왜. "
 " 내가 너 이별증후군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으로서 말하는건데, 이번건은 좀 다르다는 게 느껴진다. "
 " 어째서? "
 " 너 헤어지면 집에 콕 하고 박혀서 나오지도 않고, 전화도 안받고, 내 말도 안듣고, 밥도 안먹고 그러는데, 이번엔 그 네가지를 다 무시했다는거지. "
 " ? "
 " 봐라, 너 오늘 집에서 나왔지? 내 전화 받았고, 내 말도 잘듣고, 밥도 잘먹은데다 디저트도 먹었는데 떡볶이까지 접수한걸로 봐선 이런 이별이라면 친구 입장에선 얼마든지 환영이다. "


 듣고보니 그러네. 가만 원준의 말을 듣고있던 이수는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주문 한 떡볶이가 테이블에 올려지고, 일순간 매운 냄새가 에워싸 코를막은 원준과는 다르게 이수는 기다렸단 듯 포크를 들어 떡을 집었다.


 " 맛있냐? "
 " 어. 역시 스트레스엔 매운거야, 매운 게 답이야. "
 " 누가 그래, 매운 게 답이라고. "


 코를 훌쩍이며 먹는 모습을 보며 자리에서 일어 난 원준은 머그컵에 얼음을 가득담아 물을 채워 이수의 앞에 놓았다.


 " 그래도 나 다행이지? "
 " 뭐가. "
 " 혼자 세상 무너진 사람처럼 울고불고 안해서. "
 " 그래, 그건 괜찮네. "
 " 어제 문득 그런 생각이 드는거야. 이 사람은 갔는데, 내가 지겨워져서 곁을 떠났는데, 나는 그 사람의 그런 모습을 못본 사람처럼 여전히 좋아하고 있었다는 게. "

 " 다 컸네. "
 " 그래도 문득 문득 마음이 시려워져서 울컥해. "


 떡볶이를 휘휘저으며 얘기하는 이수를 보며 원준은 지금 제가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음을 알곤 입을 꾹 다물었다. 나 다 먹었어. 들고있던 포크를 내려놓으며 얘기하는 이수에게 티슈를 건네 원준은 가자며 손짓했다.


 어느덧 7시가 훌쩍 넘은 시간, 저와는 다르게 지금부터가 회사 생활 시작인 원준이 그제서야 걱정이 된 이수는 작은 목소리로 안피곤해? 라고 물었다.


 " 안 피곤해. "
 " 차 막히나봐. 어떡해? "
 " 괜찮아, 9시까지만 들어가면 돼. 너 집으로 갈 거지? "
 " 아니. "
 " 그럼 어디가게. "
 " 나 너 따라 라디오가면 안돼? "
 " 안될 건 없는데 와서 뭐하게, 내 얼굴 감상하게? "
 " 아니, 너네 디제이 보러. 야- 한류스타를 코 앞에서 볼 수 있는데 니가 눈에 들어오겠어? "
 " 말 그렇게 해라, 나 믿는다. "
 " 겸사겸사지. 그럼 나 너 따라 가는거다? "
 " 가. "


 집으로 향하던 차를 유턴시켜 방송국으로 향하던 원준은 왜인지 제 옆에서 싱글벙글한 얼굴을 감추지 못하는 이수를 보며 물었다.


 " 한류스타 본다니까 그렇게 좋냐? "
 " 뭐 꼭 한류스타여선 아니고. "

 " 가서 적당히 좋아해라. "
 " 왜? 내가 부끄럽냐? "
 " 자랑스럽진 않을 거 같다. "


 새침한 표정으로 얘길하는 원준을 보며 이수는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방송국에 도착해 라디오국으로 들어선 원준은 곧 있을 생방송 준비로 여념없는 스텝들 사이를 거침없이 들어서다말고 제 뒤를 따라오는 이수가 생각나 뒤돌아 손목을 이끌었다.


 오늘 우리 라디오 청취자 대표! 대뜸 소리치는 원준으로 인해 스튜디오에 있던 식구들의 시선은 일제히 이수에게로 향했다. 형, 여자친구예요? 디제이인 민호의 말에 원준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너무 오래된 여자친구지. 아, 너 이따 사인해주고 가. 얘 너 열렬한 팬이야. "
 " 진짜요? "
 " 그래, 가짜면 좋겠다만. "


 쇼파에 이수를 앉히곤 스튜디오로 들어 선 원준은 자연스레 콘솔 앞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그 때 부터 시작 된 막내작가와 디제이의 협업하에 이루어진 이수에 대한 추궁은 생방송 시작 5분을 앞두고도 사그라 들지 않았다.


 부드러운 두시간을 보내고, 끝 곡이 나가는 틈에 오늘 방송도 잘했다는 인사로 서로가 서로를 보며 웃었다. 스튜디오로 들어와 차피디, 이제 데이트 가겠네? 라며 물어오는 선배 작가의 말에 원준은 밖에 앉아있는 이수를 보며 웃었다. 그럴려고요.


 " 말해봐, 오늘 오빠의 프로페셔널한 모습을 대놓고 본 소감. "
 " 너 멋있더라. "
 " 그치? "
 " 콘솔 다룰 때 보니까, 아! 너 손 줘봐. "
 " 손? "


 벨트를 매려다말고 손을 뻗어 이수의 앞에 둔 원준은 새삼 제 손과 비교하는 모습이 귀여워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 너 손 되게 크다, 길고. "
 " 그러게. 아름다울 미를 표현하는건 이 얼굴 하나면 되는데, 하필 손까지 예뻐가지고. "
 " 말은. 근데 오늘 사연 들어보니까 정말 별별 사연 다오더라? 아까 그 뭐야, 17년 된 남자인 친구랑 어제로 연애 시작했다던 여자! 난 그 사연이 제일 압권이였어. "
 " 그 사연이 왜 압권이야? "
 " 아니 어떻게 친구가 남자로 보이지? 그 말은 내가 너를 남자로 보는거랑 같은 거잖아. "
 " 넌 그럼 여태 날 뭘로 봤길래 이러냐. 내가 남자로도 안 보였어? "
 " 야. 니가 어떻게 남자야, 친구지! "
 " 웃기네. 야, 친구이기전에 남자야. "
 " ... . "
 " 맞아, 아니야. "
 " ...뭐. 그게 그거지. "
 " 어떻게 그게 그거야, 순서로 뜻이 확실히 달라지는데. "
 " 그럼 뭐, 넌 여태 내가 여자로 보였다 이거야? "
 " 당연하지. "


 저와는 다르게 너무도 당당한 원준의 말에 이수는 꿀먹은 벙어리처럼 일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반응에 진심으로 서운했던 원준은, 제 말 이후로 아무런 말도 없는 얼굴을 보며 손을 뻗어 아프지 않게 이마를 쳤다.


 " 아, 왜! "
 " 나 배고픈데 우동먹고 들어가자. "
 " 밤 열두시에? 그것도 여자한테 우동을 먹자는거야? "
 " ... . "
 " 왜 웃어. "
 " 여자는 무슨, 친구라며. "
 " 어? "
 " 왜 아까처럼 선 그어보지. 밤 열두시에? 그것도 여자인 친구한테 우동을 먹자는거야? 하고. "

 " 야. "

 " 뭐. "

 " 왜 그래, 어색하게. "

 " 뭘 어색해, 나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 "

 " 아, 됐어! 딴말말고 얼른 우동집으로 가. "

 " 너 지금 긴장한거야? "

 " 긴장은 무슨. "

 " 아닌데, 한 거 같은데. "



 깜깜한 밤, 도로 위를 달리는 차 안에선 요란스러운 여자의 목소리와, 장난이 가득 묻은 남자의 목소리가 뒤섞여 흘러나왔다. 쉼 없이 투닥거리며 나오는 말들 속에 서로의 진심이 묻어 나오는 것도 모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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