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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Apr 19. 2016

달라보여

두 번째 이야기

 밤 열두시에 왠 우동이냐며 저를 타박하던 이수는 온데간데 사라진 채, 벌써 반을 비워 낸 모습을 보며 원준은 이젠 놀랍지도 않다는 얼굴을 보였다.



 " 말이나 말던가, 이렇게 잘 먹을 거면서. "

 " 나 진짜 면 끊어야 되는데, 못 끊겠어. "

 " 이 맛있는 걸 왜 끊어? "

 " 맛있으니까. "



 그러며 국물까지 싹 비워낸 이수에게 물을 따라 건넨 원준은 지금 이 상황이 마냥 재밌기만 했다.



 " 남자친구가 이 시간에 뭐 먹자 그랬으면 질겁했겠다? "

 " 그렇지? 질겁하면서 안먹었겠지. "

 " 그게 무슨 연애야. 그럼 데이트 내내 밥은 참새 모이만큼 먹고, 집에와선 대놓고 알차게 먹고? "

 " 그렇지? "

 " 재수없어. "

 " 다 먹었어? "

 " 보시다시피. "

 " 가자, 그럼. "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계산을 하고 나서는 이수를 보며 원준은 따라 일어섰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난데없이 90년대 노래가 듣고 싶다며 플레이리스트를 댄스로 꽉 채운 이수로 인해 차 안은 일순간 시끌시끌해졌다.



 " 나 귀 아파. "

 " 커플은 정말 언제 들어도 명곡이야. 들어도 들어도 질리지가 않아. "

 " 나한텐 하루에 열두번도 더 질린다고 얘기하면서 이깟 노래는 10년을 들어도 좋다하냐. "

 " 야. 그게 진심이겠어? "

 " 열두번을 더 말하는데 그럼 그게 장난으로 들리겠어? "

 " 좀 걸러들어. 그럼 우리 사이에 필터끼고 얘기하리? "

 " 어, 좀 껴. "

 " 얘가 오늘 왜 이래? "

 " 내가 뭐. "

 " 입은 댓발 나와가지고 내가 뭐. 하면 다냐? "



 그래. 라고 말하며 밉지 않게 이수를 노려보던 원준은 제가 그러거나 말거나 옆에서 열창하느라 바쁜 얼굴을 한 손으로 쓸어내리며 볼륨을 낮췄다. 나 귀 아프다고. 다시 한번 더 얘길하는 원준의 목소리에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의 음량 버튼을 줄인 이수는 다시금 열창을 시작했다. 원준이 귀가 아픈 이유가 본인 때문이란 건 전혀 알지 못한채로.



 들어 가. 집 앞에 도착해 인사를 하는 원준을 보며 벨트를 풀던 이수는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조심히 들어가라며 차 문을 열다말고 뭔가 생각났는지 가방을 뒤지던 이수는 막대사탕을 꺼내어 강제적으로 원준의 입에 물렸다.



 " 졸음운전 하지말고, 맛있게 먹으면서 가. "

 " 아, 콜라 맛 싫어. "

 " 입에 물고 가. "

 " ... . "

 " 내일 연락할게. "

 " 왜 연락해? "

 " 뭐 언젠 안했어? 가. "



 쿨하게 차 문을 닫으며 집으로 들어서는 이수를 확인하고서야 원준은 잠겨있던 사이드 브레이크를 풀며 주택가를 벗어났다. 당장에라도 사탕을 뱉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방금 전, 투정말고 입에 물고 가라던 이수의 말이 생각 나 다시금 사탕을 입에 문 원준은 집에 도착하서야 빈 막대를 버릴 수 있었다.



 " 오늘 오프닝 다 썼어? "

 " 마무리 중 이에요. 오늘 왜 이렇게 일찍 나오셨어요? "

 " 녹음이잖아. 얼른 일하고 영화보러 갈 거야. "

 " 누구랑요? 아, 어제 그 여자친구? "

 " 아, 어제 그 여자친구 그만 신경쓰고 얼른 오프닝이나 쓰지? "

 " 알았어요. "



 막내작가의 머리를 헝클이며 스튜디오로 들어 선 원준은 모레 있을 방송 녹음을 준비했다. 하나 둘씩 제 자리를 채우고 나니 비로소 모든 일이 원활하게 돌아갔다. 부담없이 진행 된 라디오 녹음을 끝내고, 저마다 약속을 위해 분주해진 모습을 보며 편집을 시작하려던 원준은 제게 왜 안가냐며 묻는 막내 작가를 보며 입만 웃어 보였다.



 " 얼른 일하고 영화보러 가신다더니 왜 갑자기 편집이에요? "

 " 우리 상우가 요즘 나한테 관심이 많아도 너무 많네. "

 " 제가 언젠 안 그랬나요. "

 " 앞으론 줄여. 그리고 얼른 퇴근해, 확 잡아서 묶어 놓기 전에. "

 " 그럼 전 이만 퇴근하겠습니다! "



 제 말에 쏜살같이 나가는 상우를 보며 웃던 원준은 테이블 위에서 울리는 진동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수신 된 문자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이수였고, 제 마음을 읽은건지 영화보자! 라고 온 문자에 원준은 웃으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 나 안그래도 퇴근하고 볼랬는데. "

 " 뭐 볼거야? "

 " 사랑과 음악사이. "

 " 그거 나왔어? "

 " 응, 어제 개봉했어. "

 " 그럼 보러가자! 너 어디야, 회사야? "

 " 응, 오늘 녹음 하나하고 막바지 편집 중. "

 " 그럼 내가 그 쪽으로 갈게. 느슨하게 밥 먹고 보자, 9시 영화 어때? "

 " 좋아. 그럼 와서 전화해, 내려 갈게. "



 들뜬 목소리로 대답하는 이수와의 통화가 끝나고 간단히 편집 할 마음으로 모니터를 보던 원준의 입꼬리가 자꾸만 간질거렸다. 3부 오프닝 곡을 고르며 이 곡 저 곡을 듣는 와중에도, 심지어 슬픈 노래를 듣고 있는 와중에도, 자꾸만 원준의 입꼬리는 간질거리고 있었다.



 다왔다는 이수의 전화에 코트와 가방을 챙겨 엘리베이터에 탄 원준은 유리 너머로 우두커니 서 있는 이수의 모습을 보며 저도 모르게 웃었다.



 뭘 그렇게 뚫어져라 보는지 앞 건물 카페를 유심히 보고 있는 그녀의 뒤를 조용히 밟은 원준은 큰 목소리 대신 낮은 목소리로 다가섰다가 예상치 못하게 얼굴을 맞고야 말았다.



 " 아, 너무 아파. "

 " 그러게 왜 뒤에서 놀래켜! 어디 봐. 얼굴 긁혔어? 야 어떡해, 긁혔다. "

 " 아파. "

 " 가자, 약국가서 약 사서 바르자. "



 미안한 얼굴로 원준의 팔을 붙잡은 이수는 제 손톱에 긁힌 볼을 보며 아프지 않냐고 연신 물어왔다. 저녁으로 먹기로 했던 파스타 집에 들어가기 전, 근처 약국에서 연고와 밴드를 사서 나온 이수는 그 자리에서 원준의 얼굴에 약을 발라 밴드를 붙혔다.



 가게에 들어서 피자와 파스타를 주문하고, 거울을 보며 제 얼굴을 확인하는 원준을 보며 이수는 연신 웃음 진 얼굴을 해보였다.



 " 자본주의 미소 별로야. "

 " 자본주의라니 그럴리가. 근데 흉 안지겠지? "

 " 지겠지, 당분간은. "

 " 아니 나 이 미안함을 어떻게 표현해야하지? 진짜 미안해 죽겠는데. "

 " 정 미안하면 소원 하나 들어주던가. "

 " 소원? 알았어, 말해. "

 " 지금말고 나중에. "

 " 알았어. 언제든, 언제든 말해. "



 소원 하나로 원준의 마음을 낫게 한 이수는 그제서야 풀린 얼굴을 해보였다. 둘 다 배가 고팠던지 음식이 나오기가 무섭게 허겁지겁 음식을 비워냈다. 시계를 보니 30분도 안된 시간을 가르키며 웃던 이수는 원준에게 속삭이듯 얘길하며 웃음을 참지 못했다. 우리 진짜 배고팠나봐, 들어온지 30분만에 나가.



 " 그래도 시간이 맞아서 다행이다, 30분 뒤에 영화 시작해. "

 " 너 나쵸 먹을거지. "

 " 응. "

 " 그럼 가서 커피랑 사올게, 기다리고 있어. "



 자리에 앉아 영화가 시작되길 기다리며 나쵸를 하나씩 집어먹던 이수는 광고중인 10분만에 한가득 담겨있던 나쵸를 비워내곤, 마른 목을 축이기위해 원준에게 커피를 달라며 손짓했다.



 " 너 너무 허겁지겁 먹은 거 아니냐? "

 " 야. 칩 하나하나, 치즈 하나하나 다 음미하면서 먹었어. "

 " 그러기엔 속도가 너무 빠른데? "

 " 됐어, 잔소리 말고 스크린이나 봐. "



 마침 시작하는 영화 소리에 원준의 고개를 스크린으로 돌린 이수는 시작되는 영화 소리에 잔뜩 기대를 하고 있었다. 둘 다 좋아하는 영화 장르인지라 영화를 보는내내 두 사람은 아무 말도 않은 채, 오로지 스크린에만 집중했다. 잔잔하고 달콤한 시간들이 흘러 어느새 영화는 막바지를 보였고, 엔딩크레딧이 올라가서야 서로의 얼굴을 마주한 원준과 이수의 얼굴엔 재밌었다는 웃음이 가득했다.



 근래에 봤던 영화중에 제일 아름다운 것 같아. 앞서 계단을 내려가며 얘기하는 이수의 말에 원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영화를 보러 들어가기전만해도 어둑어둑했던 밖은 어느새 어둠이 가라 앉아 있었다.



 " 영화가 너무 좋았어. …만약에 내가 해나였다면 어땠을까. "

 " 어땠을 거 같은데? "

 " 나도 죽기 전 까진 그 사람 못 잊고 살겠지? 결혼을 했다는 건 그만큼 깊은 마음이 생겨서 였을텐데. "

 " 하긴. "

 " 근데 진짜 생각하기 싫은 부분이기도 해. 어찌됐건 어떤 이유건, 나를 두고 그 사람이 떠나는 거 잖아. "

 " 응. "

 " 많은 생각을 주는 영화야. 한동안 삶에 대해, 사랑에 대해 이렇게까지 깊게 생각 해 본적 없는 거 같은데. "

 " 좀 진지해졌다? "

 " 분위기가 그렇게 만드네? "



 집으로 가는 차안에선 어제와는 다르게 분위기에 젖은 말들이 오갔다. 한동안 아무말도 없던 두 사람 사이에 홀로 떠들던 라디오에선 한 때, 둘 다 즐겨듣던 노래가 흘러 나왔다. 그리고, 그 노래가 나옴과 동시에 반가움을 온 몸으로 표현하던 이수는 원준을 보며 웃었다.



 " 진짜 오랜만이다! 내가 이 노래 고등학교 때 너한테 알려줬었는데, 그치? "

 " 그러게? 오랜만이다, 이 노래. "

 " l love you, 넌 내게 영혼의 안식처야, l love you 거스를 수 없는 시간처럼- "

 " 이럴 때 보면 라디오 피디 하기 잘했다 싶어. 노래 하나로 누군가에게 잊혀졌던 기억을 찾아주는 셈이잖아?  "

 " 그게 또 그러네? "

 " 좋다. "

 " 응, 좋다. "



 열어 둔 창문으로 시원한 밤 바람이 묻어 들어왔다. 서로의 예전을 추억해주는 노래가 차 안을 가득 울리고, 각자 노래를 음미하며 보내는 이 시간이 웃음 속에 달콤함으로 가득 물들었다. 집 앞에 도착해 들어 가. 라고 얘길하는 원준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던 이수는 어제와는 다르게 내리기 전, 가방에서 막대 사탕을 꺼내 껍질을 깠다.



 " 콜라야? "

 " 아니, 너 좋아하는 딸기우유. "

 " 아- "

 " 조심히 가. "

 " 잘 자. "



 한번쯤은 차에서 내려 손을 흔들 법도 한데, 이수는 한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 내림과 동시에 문을 닫곤 그대로 집으로 들어서기 바빴다. 그럼에도 원준은 곧장 차를 출발시키진 않았고, 오늘도 어제처럼 아니 늘 그랬던 것 처럼, 이수가 집에 들어가는 걸 확인하고서야 차를 출발 시켰다.



 더 이상 가까울 것도 없는 사이를 두고, 그는 자꾸만 그녀와 가까워지고 싶은 제 마음을 느꼈다. 그렇다면 방법은 단 하나, 친구에서 연인이 되는 길 밖에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생각과는 다르게 쉽게 다가가지 못해 망설이는 제 마음을 오늘도 꾹 누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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