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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Apr 21. 2016

달라보여

세 번째 이야기

 뭐에 그리 열중인지 도로를 내려오며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이수를 발견한 원준은 조금 빠른 걸음으로 오르막길을 올랐다. 제가 점점 가까워짐을 못 느낀 채, 여전히 핸드폰을 보며 위험한 걸음을 걷는 이수의 앞을 단번에 막아 선 원준은 저를 보고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는 얼굴을 보며 못마땅하다는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 차가 이렇게 지나가는데 뭘 그렇게 들여다 봐. "

 " 아니 친구한테 위로를 해줘야 하는데 마땅한 말이 생각안나서. "

 " 그렇다고 도로가에서 생각할 것 까진 없잖아. 뭔데, 누군데. "



 자연스레 옆으로 서며 묻던 원준의 시선은 이수의 손에 들린 핸드폰으로 향했다. [ 나 헤어졌어. 자기랑 헤어져달래, 다른 여자 만나고 싶대. ]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적힌 메세지를 보고있는 저를 향해 뭐라하지? 라고 묻는 이수를 보며 원준은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같이 욕해줘.



 밥을 먹으러 온 자리에서도 여전히 핸드폰만 들여다 보고있는 이수의 앞에 숟가락을 놓아주던 원준은 잘 되가? 라며 장난스레 물었고, 이수는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아마도 제가 가르쳐 준 방법이 통했는지 한참을 잡고있던 핸드폰을 내려놓으며 저를 빤히 들여다보는 이수를 보며 원준은 눈을 가늘게 떠보였다.



 " 뭐냐 그 눈빛? "

 " 그 상처는 왜 빨리 안낫냐, 볼 때마다 미안해지게. "

 " 볼 때마다 미안해 해. 하다못해 얼굴 다친게 다행이란 생각도 든다. 팔뚝이나 정강이 다쳤어봐, 넌 진즉에 까먹었을건데. "

 " 야. "

 " 뭐. "

 " 밥 많이 먹어, 내가 살게. "



 며칠 전 처럼 자본주의 미소를 지은 채 웃는 이수를 보며 고개를 젓던 원준은 테이블에 놓여지는 육개장을 보며 환히 웃었다. 육개장 하나에 그렇게 웃을 일이야? 놀리듯 들려오는 목소리는 무시한 채, 반찬을 놓아주는 점원에게 고맙다며 인사를 건네던 원준은 한 숟가락 크게 떠 후후 불었다.



 " 맞다. 너 소개팅 할래? "

 " 왜 갑자기? "

 " 아니 대학동기가 주변에 남자 없냐고 소개시켜달라 그러는데, 내 주변엔 남자라곤 니가 다라서. "

 " 안해. "

 " 얘 되게 예뻐. "

 " 안해. "

 " 키도 크고 날씬한데? "

 " 안해. "

 " 웃을 때 예뻐. 너 웃을 때 예쁜 여자 좋아하잖아. "

 " 한번만 더 물어라. "



 말 없이 저를 빤히 보는 이수를 보며 원준은 다른 말 없이 밥 먹는데에 열중했지만 눈치없는 이수는 굳이 이 상황을 짚고 넘어가야만 했다. 아니 왜? 여전히 저를 향해 물어오는 목소리륻 들으며 원준은 먹던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티슈로 입을 닦았다.



 " 내가 잘못 한 거야? "

 " 안한다고 몇번을 말했는데 자꾸 하래! 그렇게 좋은 여자면 니가 만나던가. "

 " 굳이 여자를? 세상에 널린 게 남잔데? "

 " 말은 잘해. "

 " 오랜만에 너한테 예쁜 짓 좀 할랬더니. "

 " 밥이나 먹어. "



 턱 짓으로 뚝배기를 가르키는 모습에 고개를 끄덕인 이수는 한동안 말 없이 밥 먹는데에 열중했고, 먼저 그릇을 비워낸 원준은 잘도 먹는 이수를 영화 보듯 가만 보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못가 다 먹었다며 티슈를 뽑아 입을 닦는 이수의 앞에 물이 든 잔을 놓아주던 원준은 먼저 일어나 카운터로 향했다.



 동창회 몇시랬지? 가게를 나서며 묻는 원준의 말에 이수는 시계를 보며 다섯시. 라고 대답했다. 이틀 후 어머니 생신을 챙기기위해 일찍이 이수에게 만나자고 했던 원준은 넉넉히 남은 시간에 안도하며 백화점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스무디 하나씩 물고 돌자. 강렬한 햇빛을 막으려는 듯 이마 위로 손을 뻗은 이수는 어쩔 수 없이 한 쪽 눈을 감은채로 원준에게 얘기하고 있었다.



 이수가 말했듯 백화점에 들어서 쇼핑을 하기 전, 스무디 가게로 들어 선 원준은 뭐 마실거냐고 이수에게 물을려던 차 먼저 카운터로 가 주문을 하고 있는 이수를 보며 멀뚱히 서 있었다. 그리곤 늘 먹던 메뉴 두개를 주문하곤 뒤로 물러 나 제 옆에 선 이수를 보며 별안간 일렁이는 마음을 느꼈다. 정확히 왜 인지는 모른 채.



 굳이 제가 말하지 않아도 저보다 더 잘 알고있는 이수의 걸음을 따라 원준은 따라 걸을 뿐 이였다. 구두를 사드리고 싶다는 말 한마디만 했을 뿐 인데, 어쩜 모든 걸 다 말한 것 처럼 막힘없이 이곳 저곳을 살피는 이수가 새삼 신기하게 느껴졌다. 마치 혼자온 듯 여러켤레의 구두를 보며, 진지한 얼굴을 지우지 못하는 이수를 보던 원준의 얼굴 위로 웃음이 번져갔다. 아니, 이렇게까지 진지 할 일이야? 제 물음에 당연하지! 라고 대답하며 몇컬레를 신어보던 이수는 이게 낫겠다. 라는 말을 건네며 한 구두를 집어들곤 점원에게로 향했다.



 " 저 사이트에서 먼저 보고왔는데, 스틸레토 쉽스킨이면 이거 맞아요? "

 " 네, 이거예요. "

 " 그럼 이걸로 할게요. 사이즈는 240으로 주시구요, 이거 굽 5센치 맞죠? "

 " 네. "

 " 색은 몇가지예요? "

 " 블랙 화이트 베이지 버건디 페인팅피치 세레니티 이렇게 있어요. "

 " 어- "

 " 본인이 신으시는 거예요? "

 " 아니요, 어머니 생신선물로 드릴려구요. 색은 블랙으로 주세요. "



 이수의 주문을 들은 점원은 창고로 향했고, 한 발 뒤에 서 있던 원준은 그제야 가까이로 와 물었다. 인터넷에서 보고 온 거야? 제게 묻는 목소리에 이수는 당연하단 듯 고개를 끄덕이며 스무디를 집어들었다.



 " 백화점에 구두 브랜드만 몇갠데, 아까도 어머니가 좋아하는 브랜드로만 돈 거야. 사이트에서 안 보고 왔으면 우리 오늘 동창회 못 갔어, 결정장애와서. "

 " 이래서 집에 딸이 필요하다는 거구나. "

 " 딸 같은 아들이 될 순 없냐? "

 " 아들 하나로 사는 것도 벅차서. "



 투닥거리던 둘의 뒤로 점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계산 도와드릴게요- 라는 점원의 말에 카운터로 향한 원준은 포장 된 구두를 보며 마치 제 것인듯 좋아하는 이수를 보며 넌지시 얘길했다. 너 뭐 필요한 거 없어?



 " 왜? 있다 그러면 사주게? "

 " 너 뭐하나 사준다고 내가 굶어죽진 않아서. 뭔데? "

 " 없어. "

 " 넌 뭐 맨날 없대? 뭐 먹자 그러면 단번에 메뉴 나오면서. "

 " 본능이야 그건. 그리고 그런 말은 좀 작게하면 안돼? "

 " 미안. 레이디 앞에서 예의가 없었네. "

 " 일단 그거 킵해, 나중에 먹고 싶은거 생기면 바로 전화할테니까. "

 " 야. 내가 선물을 해준댔지, 먹을 거 사준다곤 안했잖아. "

 " 나한텐 그게 그거야. 그러니까 킵. "



 저들의 대화에 몰래 웃고 있던 점원이 건네는 쇼핑백을 받아 든 이수는 밝게 웃으며 매장을 벗어났다. 이제 가자, 걸어가면 시간 맞을 거 같아. 약속시간까지 남은 시간을 계산해 걸어가자고 얘길하는 이수의 팔에 들린 쇼핑백을 받아들며 원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쨍쨍한 거리 위를 걸으며 인상을 필 수 없는 이수와는 다르게 원준은 별 신경을 쓰지 않는 듯 했다. 약속 장소로 가는 길, 둘 사이엔 별다른 대화가 오가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순간 순간이 어색하진 않았다. 약속시간에 가까워지자 서로를 찾는 전화들이 줄을 잇고, 멀리 보이는 간판들 중 오늘의 약속장소인 음식점을 발견 한 이수는 지친 원준의 팔을 잡아 끌며 걸었다.



 점원의 안내를 받아 안으로 들어서니 연이어 하나둘씩 들어섰다.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그간 어떻게 지냈냐고 묻는 말들로 인해 자리는 금세 어수선해졌다. 그리곤 늘 그랬듯 술과 안주들이 테이블을 가득 채우고, 좋은 사람들과 오랜만에 함께하는 자리에 신이 난 이수는 평소보다 조금 더 과감하게 술을 들이켰다. 정이수- 오늘 작정했나보네, 차원준 고생 좀 하겠다. 바로 앞에 앉아 저와 이수를 보며 얘길하는 민혁의 말에 원준은 온 몸 다해 부정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 가만보면 얘들도 참 신기해. 그렇게 붙어다니는데도 안 만나는 거 보면? "

 " 하긴? 초등학교 때 부터 지금까지면 대체 몇년이야? "

 " 얘들 20년은 될 걸? "
 " 왜 갑자기 얘기의 타이틀이 우리야. "



 제 앞에 놓인 맥주를 마시며 이 상황을 끊으려던 원준은 제 마음과는 다르게 되질 않는 상황을 두고 다른 말은 더하지 않았다. 이 자리에선 그저 조용히 하고 있는 게 답이였다. 말을 덜어내려 하는 행동을 하면 할 수록 오히려 그들에게 재미만 주는 셈이 된다는 걸 진작에 배웠기 때문이였다



 열 일곱살에 만나 어느덧 서른이 된 지금, 대화의 주제는 전보다 깊어졌고 넓어졌다. 어디가서도 못할 직장에 대한 울분을 토하다가, 갑작스레 결혼 얘기로 튀었다가, 현재 가정을 꾸린 친구들의 얘기로 들어섰다가, 연애중인 친구들의 얘기로 빠져나오기까지. 모이면 말만 많은 자리라 일찍이 모임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밤 열시가 가까워지는 지금에도 누구 하나 쉬는 입은 없었다. 그 와중에 걸죽하게 취한 몇몇을 보며 집에 어떻게 보낼지 걱정하던 원준의 시야로 이수가 들어섰다. 이 중에서 제일로 걸죽하게 취한 그녀가.



 다음에 보자는 말로 모임은 마무리가 되었고, 늘 그랬듯 같은 방향인 사람끼리 모여 귀가를 했다. 다행히도 누구 하나 혼자 가는 사람은 없어 안도하던 원준은 모두를 보내고 나니 이제 제게 남은 이수가 눈에 들어섰다. 쉽게 잡히지 않는 택시를 잡기위해 고군분투하던 원준은 이윽고 제 앞에 선 택시기사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건네며 취한 이수를 안아 택시에 태웠다. 목적지를 얘기하기가 무섭게 떨어지듯 제 어깨로 기댄 이수로 인해 일순간 어깨뼈가 얼얼해졌다.



 " 내일만 되라, 깨기만 해. "

 " …. "

 " 아가씨가 거하게도 취했네, 총각 고생 좀 하겠어. "

 " 그러게요, 술은 마시는거라고 그렇게 말해도 매번 들이붓네요. "

 " 그래도 여자친구는 총각 믿고 이렇게 마신거 아니야, 데려다 줄 사람이 있으니까. "

 " 아니예요, 그냥 생각없이 마신 걸 거에요. "

 " 딸가진 아빠로서 아가씨 같은 손님들 보면 걱정이 돼. "

 " 아무래도 그렇죠? "

 " 그럼, 내일 여자친구한테 확실히 얘기해. 아무데서나 그렇게 술 마시지 마라고. "

 " 네, 꼭 얘기할게요. "



 기사 아저씨와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다보니 어느덧 차는 집 앞에 다다라있었다. 돈을 지불하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건네며 차에서 내린 원준은 혹시나 이수가 부딪힐까 조심조심 부축하며 차 문을 닫았다. 지금 이 상황이면 말을 걸었다간 그대로 뜀박질을 할게 뻔한 이수였기에 원준은 숨소리 조차 조용히 내뱉으며 이수를 등에 업었다. 집으로 가는 동안 제발 깨지 않길 바라며.



 미안하다 원준아. 이수의 집으로 들어서자 인사보다도 제게 먼저 사과를 건네는 이수의 엄마를 보며 원준은 활짝 웃어보였다. 취한채로 곤히 잠든 이수를 방에 눕히고 거실로 나오자 제게 말없이 홍삼액기스를 건네며 마시라고 얘기하는 이수의 엄마를 보며 원준은 오늘 있었던 일을 살갑게 늘어놓고서야 집에서 나올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 선물이 들어있는 쇼핑백을 방 한켠에 놓은 원준은 조용해진 공간에서 오늘 하루를 되돌아 보았다. 짧았지만 오랫동안 알고 지냈던 이수에게서 평소 느낀 적 없던 마음을 오늘 하루, 세번은 더 느낀 듯 했다. 그럼에도 이런 제 마음이 좋아함으로 번지는게 마음 한켠에선 부정하듯 흔들리고 있다는 것 또한 느꼈는지 원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켓을 벗어 옷걸이에 걸곤 욕실로 향했다.



 느긋한 주말 아침이였다. 느즈막히 잠에서 깬 원준은 쌀쌀함에 후드집업을 걸치며 방을 나섰다. 매주 일요일이면 부모님은 등산 모임에 가셨기에 일요일이면 집 안이 온전히 원준의 것이 되었다. 한상 차려진 식탁을 지나쳐 시리얼에 우유를 만 원준은 티비에서 방영하는 마블 시리즈에 흠뻑 빠져 들어갔다. 그렇게 얼마 쯤 지났을까, 제 방에서 요란스레 울려오는 핸드폰 소리에 한번은 무시하던 원준은 끊기기가 무섭게 다시금 들려오는 소리를 들으며 걸음을 옮겼다.



 ㅡ 왜.

 " 미안해, 나 눈뜨자마자 사과하는거야. "

 ㅡ 이수야.

 " 그렇게 부르지 마. 내가 잘못했다니까? "

 ㅡ 술은 마시는거야, 들이 붓는 게 아니라 이 웬수야.

 " ‥내가 그랬어? "

 ㅡ 너 어제 기억나냐?

 " 아니? "

 ㅡ 니가 그랬어, 그러니까 기억이 안나지.

 " 엄마가 너한테서 좀 떨어지래, 나 때문에 니가 피해보는 게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

 ㅡ 옛 말에 그런 말이 있어, 어른 말 들어서 나쁠 거 하나 없다는 말.

 " 야. "

 ㅡ 어제 택시기사 아저씨가 그러시더라, 딸가진 아빠로서 너 같은 아가씨들보면 걱정이 된다고.

 " …. "

 ㅡ 너 딴데가서도 그렇게 마시냐?

 " 아니? "

 ㅡ 근데 어제는 왜 그랬는데?

 " 내가 취해도 집에 데려다 줄 사람이 눈 앞에 있으니까. "

 ㅡ 꼴값.

 " 어제의 나는 잊어라. "

 ㅡ 잊으면 뭐하냐, 술만 먹으면 보는 모습인데.



 말을 하면 할 수록 제게 불리한 목소리를 들으며 이수는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들이마셨고, 반을 비워내고서야 물병을 테이블 위에 내려 놓았다.



 " 맞다. 엄마 구두는 드렸어? "

 ㅡ 아직, 일요일마다 등산 가시잖아. 그리고 생신 내일이거든?

 " 아- "

 ㅡ 술이 덜 깼는데.

 " 괜찮아, 조금 있으면 깨. "

 ㅡ 해장이나 해.

 " 넌 괜찮아? "

 ㅡ 너무 괜찮지, 그 새벽에 너를 데려다줬는데.

 " 끊자, 더 통화했다간 술이 안 깰 거 같아. "

 ㅡ 나 할 말 있어, 이따 배드민턴 치자.

 " 뭐야? 도전이야? "

 ㅡ 지는 사람이 스시 쏘기.

 " 대신 나 한숨자고, 네시에 공원에서 만나. "

 ㅡ 알았어, 지갑 꼭 챙겨라.

 " 누가 할 소릴. 끊어, 잘 거야. "



 어릴 적 부터 유일하게 함께하는 운동인 배드민턴을 앞세워 원준은 넌지시 제 마음을 던질 생각이였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그 속에 살짝 제 마음을 끼워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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