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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Apr 24. 2016

달라보여

마지막 이야기

 혼자 있을때면 여러번 느끼는 마음이였다. 어째서 너는 나를 자꾸만 좋은사람이 되게끔 만드는건지 매일 너를 만나면서도 매일 모를 일 이였다. 아무렇지않게 너에게 스며들어 작은 행동조차 변해가는 나를 보며 느낀다. 너를 만나길 참 잘했다고, 너를 좋아하길 참 잘했다고.




 공원에 도착해 몸을 풀던 원준의 시야로 아직 잠이 덜 깬 얼굴로 걸어오는 이수가 가까워졌다. 오다 어디 안 부딪혔냐? 제 몸 곳곳을 살피며 묻는 목소리에 이수는 잠긴 목을 큼큼하며 원준의 손에 들린 라켓 하나를 받아들며 뒷걸음질쳤다.



 " 나 아침, 점심 다 안먹었다? "

 " 오늘 만남의 요점이 스시는 아닌데? "

 " 그럼 뭐야? "

 " 스시전에 그랬잖아, 할말 있다고. "

 " 아, 맞다 맞다! 말해. "



 나란히 공을 주고받던 중, 제 앞에서 떨어진 공을 주으며 원준을 보던 이수는 다시금 작게 물어왔다. 뭔데?



 " 나 좋아하는 여자 생겼어. "

 " 진짜야? "

 " 진짜야. "

 " 그래서 너 소개팅 안한, 누구야? 내가 아는 사람이야? "

 " 뭐가. "

 " 네가 좋아하는 여자, 내가 아는 사람이냐고. "

 " 알걸? "

 " 알아? "

 " 어, 너 공 떨어트렸다. 일대영! "



 공이 떨어지건 말건 저를보며 누구냐고 묻는 이수를 보며 원준은 가만 생각하는 얼굴을 해보였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해야할까,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가 다름 아닌 너라고 어떻게.



 " 숨기는거야? "

 " 너 내 얘기 들으면 놀랄텐데. "

 " 누구야 진짜? 대체 누구길래 이래? "



 자꾸만 저를 재촉하는 이수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원준은 다른 말 대신 걸음 걸음 가까이 이수의 앞으로 다가섰다. 여전히 골똘한 얼굴로 저를 보고 있는 그녀를 이마를 살짝밀며 너야, 너. 라고 얘기한 원준은 웃으며 뒷걸음질을 쳤다. 물론 이수는 당연하게 그 말을 믿지 않았지만.



 " 너 그 여자랑 잘되서 연애하면 난 이제 누구랑 노냐. "

 " 아쉽냐? "

 " 조금? 지금처럼 막 부르지도 못할테고. "

 " 불러. "

 " 야, 그게 다 오해와 미움을 사는 지름길이야. "

 " 그게 왜? "

 " 봐. 니 여자친구 입장에선 나처럼 예쁜 여자가 너랑 오랜친구라는 이유로 서슴없이 만나면 질투가 끊이질 않을거라고. "

 " 걔 아직 내 여자친구 아니고, 내 오랜친구중에 예쁜여자는 없어. "

 " 나. "



 꽃받침을 한 채, 저를 보고 웃는 이수를 보며 원준은 하마터면 웃음을 흘릴 뻔 했다. 마음속으론 수 없이 웃음이 넘쳐났지만 보이는 얼굴 위론 철저히 감춘 채, 애교스러운 이수를 보며 원준은 가까이 다가섰다. 여전하 말똥말똥 저를 올려다 보고있는 얼굴울 가만 내려다보던 원준은 이수의 눈 끝을 밀어당며 굳이 매를 버는 말을 던졌다. 아이크림 팍팍발라, 우리 이제 그럴나이야. 그리곤 예상한대로 들려오는 날 선 목소리와 날 선 주먹을 요리조리 피하던 원준은 아직 낫지않은 제 얼굴을 가르키며 이수의 앞을 막아섰다.



 " 아? "

 " 아? "

 " 됐고, 너 빨리 저기가서 서. 30분으로 결판보고 밥 먹으러 가자, 나 배고파. "

 " 배고프면 그냥 지금 가. "

 " 안돼, 이 스코어대로면 내가 밥 사야 돼. "

 " 뭔 소리야? 이러나 저러나 니가 살텐데 뭐. "

 " 야. "

 " 내가 살게, 가. "

 " 커피도 살거야? "

 " 뽑아줄게. 스시집에 있잖아, 너 좋아하는 자판기 커피. "

 " 세상에. "



 놀라하는 이수의 어깨를 끈 원준은 뭐가 문제냐는 듯 웃어보였다. 가게에 도착해 스시 두 세트를 주문한 원준은 영수증을 받아들곤 자리로 돌아왔다. 얘기 좀 해봐.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물어오는 이수의 얼굴을 보며 원준은 방금 전의 제 고백은 금세 잊은 듯 했다.



 " 뭘? "

 " 너 좋아하는 여자 말이야. "

 " 아. "

 " 누군지 말하기 그러면 성격이나 얘기해봐, 니가 좀 까탈스러워야지. "

 " 나보다 걔가 더 해. "

 " 더해? 그런 여자를 니가 감당한다고? "

 " 어쩌겠어, 좋은데. "

 " 왜 이래? "



 정말 의아하단 듯 묻는 이수의 말에 원준은 시선을 맞추며 앞접시를 건넸다. 얼른 먹으라는 말을 하기도 전, 바삐 움직이는 이수의 손을 보며 원준은 빈컵에 물을 따라 건넸다.



 " 너 딴데가서 이렇게 먹지마. "

 " 왜. 너무 예뻐서? "

 " 예쁘면 이런 말 안했겠지. "

 " 잘되면 소개 시켜줘, 술 살게. "

 " 그래. "

 " 아니야, 너 이렇게 순순히 대답하는 거 보니까 안 보여 줄 거 같아. "

 " 보여줄게. "

 " 언제 만나기로 했어? "

 " 아직 약속 안 잡았어. "

 " 먼저 연락해서 밥 먹자고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라. "

 " 그럼 먼저 연락하면 되잖아? "

 " 모든 여자들이 그렇게 적극적이진 않아. "

 " 모든 남자들도 그렇게 적극적이진 않아. "

 " 넌 좋다며. 그럼 적극적이여도 되는 거 아니야? "

 " 그건 그러네. "



 멍청이야? 입 안 가득 스시를 문 채 얘길하는 이수를 보며 원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거짓말도 할 줄 아는 사람이 해야지. 이렇게 좋아하는 사람을 눈 앞에두고, 바보처럼 고백하지 못해 없는 사람을 만들었으니-



 " 내일 너 퇴근하고 시립미술관에 비디오 아트전 보러가자. "

 " 야. 그걸 왜 나랑 가? 그 여자랑 가야지. "

 " 왜 그 여자랑 가야돼? "

 " 응? "

 " 왜 그 여자랑 가야되냐고. 뭐, 데이트 이거야? "

 " 어. 아니야? "

 " 갈 거야 말 거야. "

 " 나야 너랑 가면 좋지, 어차피 일 때문에 보러 가야 되는데. "

 " 갈 거면서 말은. "



 먼저 도시락을 비워 낸 원준은 늘 그랬듯 식사중인 이수를 기다렸다. 천천히 좀 먹어. 빈 도시락을 가르키며 얘기하는 이수를 보며 원준은 다른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근데 내일 어머니 생신이잖아. 다 같이 저녁 안 먹어? "

 " 엄마 내일 출장, 아빠가 퇴근하고 엄마한테 갈 거라고 나보고 끼지말라 하시던데. "

 " 역시 아버지, 상남자셔. "

 " 나도 상남자야. "

 " 대체 어디가? "

 " 매일 보면서 왜 몰라? "

 " 평생 모르고 싶다. "

 " 왜? 설렐까봐? 내가 남자로 보일까봐? "

 " 웃기고 있네. "

 " 니가 더 웃겨, 인중에 붙은 밥풀이나 떼. "

 " 넌 무슨 말을 이렇게 잘해! "

 " 라디오 피디라 그런다, 왜. "

 " 아. 방송국 언제 들어가? "

 " 왜? 보내기 싫냐? "



 능글능글 물어오는 원준의 얼굴이 그저 얄미웠던 이수는 눈을 가늘게 뜨며 반박했다. 설마- 되게 보내고 싶어서 그래.



 " 너 다먹으면. "

 " 밤마다 고생한다. "

 " 주어 어디갔어? 남들이 들으면 오해해. "

 " 오해, 변태야? "

 " 이 나이에 순수하면 문젠 거 몰라? "

 " 넌 너무 순수하지 못한 게 문제야. "

 " 이게 어디서 오빠한테 따박따박 말대꾸를. "

 " 야. 8개월 먼저 태어난걸로 어디서 유세야? "

 " 야. 그 8개월동안 나는 너보다 숨을 셔도 더 셨어. "

 " 유치해. "

 " 다먹으면 일어나. "



 늘 그랬듯 오늘도 유치한 말다툼을 주고 받았다. 부른 배를 소화시킬 겸 집까지 걸어가는 길에도 유치한 대화는 줄지 않았지만. 집에가서 뭐할거냐는 물음에 잘거라고 대답하던 이수는 곧장 일을 가야하는 원준을 놀리는 듯 활짝 웃어보였다.



 " 이따 라디오 들어라. "

 " 왜? 멋진 남자라도 나와? "

 " 멋진 남자는 늘 나와, 그 멋진 남자가 없으면 방송이 안되걸랑. "



 자신감 가득한 얼굴을 보며 이수는 무표정인 얼굴로 대꾸했다. 너 꼭 들어. 다시금 제게 으름장을 놓는 얼굴을 보며 고개를 끄덕인 이수는 손을 흔들며 집 안으로 들어섰다. 핸드폰 알람을 10시에 맞추던 이수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요즘 청취율이 안나오나? 라고.



 3,4부에 있을 고백타임 코너에서 나갈 노래들을 선정하던 원준은 달달한 노래들로 써진 리스트들을 보니 절로 노래가 들리는 듯 했다. 코너가 코너인지라 평소와는 다르게 적극적인 사연들을 보며 하나씩 추리다보니, 어느새 방송시간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청취자들의 문자 소개로 흘러가던 1,2부가 끝이나고, 3,4부 시작을 앞 둔 순간, 디제이 앞에 놓인 사연들을 짚은 원준은 혹시나 사연속에 리스크가 있을까 분주히 살폈다.



 「 저는 오늘 고백타임 코너에 사연이 많이 올 줄은 몰랐거든요? 근데 광고 나가는틈에 우리 막내작가가 그러더라고, 평소보다 2배로 왔다고. 아니 고백을 할 거면 얼굴보고 직접 말해야지. 내가 대신 말해주면 뭐해, 내 연애도 아닌데. ‥ 내가 대신 말해서 좋은 결과를 얻으면 좋겠지만, 그렇게 안된다해도 포기하지말고 어? 두 번째는 직접 그 마음 표현하는걸로 하고. 하나씩 소개 할게요. 첫 번째 고백 -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 동작구에 사는 31살 윤세훈이라고 합니다. … 」



 그렇게 시작 된 디제이의 릴레이 고백은 듣고있는 청취자들의 마음을 말랑거리게 만들었다. 고백을 하는 사람이 제가 아님에도, 고백을 받는 사람이 제가 아님에도, 라디오를 듣고있는 순간만큼은 모두가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디제이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 편지 읽다보니까 나도 부럽고 그렇다, 안 그럴 줄 알았는데. 이제 세장 읽었는데, 나머지 4장 더 읽을 생각하니까 괜히 샘도 나고 막 그러네? 」



 중간 중간 디제이의 미움없는 질투가 사연을 보낸 청취자들의 긴장을 놓아주곤 했다. 세장에서 네장, 네장에서 어느덧 마지막장을 두고 있는 지금. 읽다보니 제가 마치 큐피트가 된 것 같다던 디제이는 마지막 편지를 손에 쥠과 동시에 익숙한 이름을 보며 반갑다는 듯 웃었다.



 「 이제 마지막 사연만 남았어요. 아, 광고 듣고 노래 듣고 하니까 시간이 확 주네. 아쉬운대로 오늘은 먼저 끝인사를 하고 사연을 읽도록 할게요. 오늘도 찾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내일도 만나요. 자, 그러면 오늘의 마지막 사연을 소개합니다. 어? 이번 사연 주인공은 우리 차피디랑 이름이 같네요. 한 여자랑 20년 가까이 친구로 지내고 있습니다. 한살이라도 어렸을때엔 혹시나 친구를 잃을까 하는 생각에 좋아하는 마음을 꾹꾹 누르곤 했는데, 이제는 한살이라도 더 먹기전에 이 친구를 잡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사연을 보냅니다. 평소에는 라디오 들으라는 말 잘 안하는데, 오늘은 꼭 들으라고 했으니까 듣고 있을거라 믿는다 장이수. ‥내가 너 좋아하는 노래 틀어줄게.



 디제이의 목소리가 줄어듬과 동시에 라디오에 울려퍼진 노래는 동물원의 널 사랑하겠어 라는 곡이였다. 노래가 나가고야 스튜디오에 있던 라디오 식구들은 사연을 보낸 사람이 원준임을 알아채곤 하나같이 떠들썩한 반응을 보였다. 그 때 스튜디오에 데려왔던 친구냐고 묻는 메인 작가의 목소리에 원준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런 제 반응에 서로가 난리난 얼굴을 해보이는 라디오 식구들을 보며 원준은 밀려오는 부끄러움을 한껏 느꼈다. 어느덧 노래의 1절이 지나 광고로 넘어가던 순간, 원준의 손에 쥐어져있던 핸드폰은 기다렸단 듯 요란스레 울려왔다.



 잠깐만 나 전화 좀, 다들 나가 봐. 제 말에 여전히 요란스런 반응을 보이는 식구들을 스튜디오 밖으로 보내고서야 떨리는 마음을 온전히 느낀은 원준은 숨을 크게 내뱉으며 통화버튼을 눌렀다.



 " 어. "

 " 뭐야? 들려줄거면 다 들려줘야지. 노래 1절로 끝났잖아, 남은 2절은 니가 불러. "

 " 어? "

 " 틀어줄래 아니면 불러줄래. "

 " 지금 밖에 라디오 식구들 다 있어. "

 " …. "

 " 알았어. "



 「 어려운 얘기로 너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도 있어. 그 흔한 유희로 이 밤을 보낼 수도 있어. 하지만 나의 마음을 이제는 알아줬으면 해. 이 세상 그 누구보다 널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겠어 언제까지나. 널 사랑하겠어 지금 이 순간처럼. 이 세상 그 누구보다 널 사랑하겠어. 」



 원치않은 갤러리들을 둔 채 이어진 그의 고백은 전화 너머 듣고있는 그녀를 웃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반주도 없이 부르는 노래속에, 평소와는 달리 조금씩 떨려오는 그의 목소리가 진심으로 번져 그녀에게 닿았다



  널 사랑하겠어 언제까지나 널 사랑하겠어 지금 이 순간처럼. 평소 그녀가 좋아하는 이 노래가 지금 제 마음을 오롯이 전해주고 있다는 걸, 밝게 비춰주고 있다는 걸 그는 느끼기라도 한 듯 번져가는 설레임을 감추지 못했다.



 이 세상 그 누구보다 널 사랑하겠어. 노래를 부르던 그는 이대로는 안되겠단 듯 급하게 종이를 펼쳐 펜을 들었다. 오늘만 좀 이해해줘! 꽉 닫힌 문을 열고 나온 그는 테이블 위에 종이 한장을 올려둔 채 잽싸게 스튜디오를 뛰어나갔다.




나 지금 갈게.


뛰어가는 발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그의 말에 그녀가 웃으며 대답했다.


응, 기다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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