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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비아 Jun 16. 2023

기꺼이 슬퍼하겠노라고

부모사별자의 내면치유 애도일기 #12


떠올리겠다고 마음먹은 게 아니었음에도 밤이 찾아오면 그들의 서사가 생생하게 펼쳐졌다. 나의 부모로서가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간으로. 그들의 삶이 보였다. 장면 하나하나가 내 눈에 밟혔다.



- 그녀의 이야기.

곁을 주지 않는 남편, 아들을 낳지 못했다는 시어머니의 냉대, 끝없는 살림과 육아. 오래된 우울증에 마음의 병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처음엔 해낼 수 있다고 믿었지만 이젠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자신만이 남아있다. 가족에게 짐이 되어버렸다. 그녀만을 바라보는 아이들. 그들의 눈빛을 보며 어떻게든 살아갈 힘을 얻겠노라, 다짐해 보지만 그 마음은 자주 무너진다. 나아가야겠다는 다짐은 번번이 되새겨야 겨우 글자 하나 새겨지는데 무너지는 것은 어째서 순식간인지.


그러다 남편의 외도를 맞닥뜨린다. 기댈 곳 하나 없는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절망스럽다. 더 이상의 희망이 사라진다. 떠나야겠다, 결심한다. 옳은 결심인가 고민하며 고향을 찾는다. 하늘에 있는 부모, 형식적인 관계 오빠, 그곳에도 기댈 곳은 없다. 바다를 보며 생각에 잠기다 자신을 숨 쉬게 하던 산이 떠오른다. 배낭을 메고 버스에 몸을 싣고 긴 시간 끝에 산에 다다른다. 그녀가 그토록 좋아하던 그곳에서 그녀는 숨을 끊는다.


- 그리고 그의 이야기.

회사에서 일하는 중에 낯선 번호로 전화가 온다. ‘네..? 그게 무슨..’ 자신을 경찰이라 소개하는 낯선 이. 그가 오라는 곳을 향해 몇 시간을 운전한다. 전화로 설명은 들었지만, 머릿속이 새하얗다. 믿고 싶지 않다. 운전하는 손이 덜덜덜 떨린다. 그간 아내에게 잘못했던 일들이 순식간에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도착한 그곳에서 두 눈으로 시신을 확인한다. 암담한 채 시신을 정리하고 다시 운전대를 잡는다. 정신없이 몇 시간을 운전해 집으로 돌아온다. 탈진할 것 같은 몸과 마음으로 생각에 잠긴다. 아이들에게는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내가 잘못하고 있다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될 줄은... 용서를 구할 곳이 없다. 그녀의 삶에 대한 죗값으로 보이지 않는 수갑이 채워진다.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있을까. 영원한 죄인이 되었다.



어떤 날은 이 장면에서, 어떤 날은 저 장면에서. 나는 그녀가 되기도 하고 그가 되기도 했다. 헤아리지 못할 슬픔이 나를 덮쳤다. 핏줄이 섞인 자식으로서, 아이를 낳은 부모로서, 같은 땅을 밟고 숨 쉬는 인간으로서 그들의 사연이 서글퍼 가슴이 멨다.


한참을 빠져들어 울고 나서야 겨우 잠에 들고 힘 빠진 어깨로 아침을 맞이했다. 부은 눈두덩이의 촉감이 느껴질 때면 지난밤을 복기해 보곤 했다. 뭐에 홀리기라도 한 듯이, 왜 그렇게까지 울었던 거지.


기억에서 지워버렸던 엄마와 재회하고 화해했다. 엄마의 죽음 또한 이해했다. 분명한 잘못이 있었지만 뉘우치고 있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아빠도 용서했다. 투병 중에 발견된 그의 편지 덕분에 서로에 대한 진심도 주고받았다. 아파하는 옆자리를 지키지는 못했지만, 그에 못지않게 아빠에게 도움 주려고 최선을 다했다. 후회되는 일도 거의 없었고 그의 죽음 또한 받아들였다.


그러나 부모를 이해한 것과 별개로 지금 내가 받아들여야 하는 사실이 있었다. 이제 나에게 부모는 없다는 것.


내 나이 서른셋. 부모의 죽음이 익숙할 나이는 아니었다. 엄마의 부재도, 아빠의 부재도 이르게만 느껴졌다. 이제 세상에 기댈 곳은 없다. 모두가 다 있는 그것이 나에게만 없는, 북적거리는 군중 속 덩그러니 놓여있는 기분. 나를 세상과 연결해 준 이들과의 끊어짐. 아빠가 살아있는 동안 의지하는 딸은 아니었지만 내 편이 존재한다는 사실 만으로도 가끔은 위로받곤 했는데. 막연하고 든든한 위로와 응원조차 받을 곳이 없어 서글펐다.


짙게 깔린 회색빛 외로움 속에 몇 번이고 처박혔다. 의도치 않게 엄마와 아빠의 마지막을 비교했다. 장례식. 형식뿐이라 생각했던 그 의식은 고인을 위해 우러나오는 마음이었다. 가족들에게 엄마의 마지막은 지워야 할 무언가로, 아빠의 마지막은 기억될 무언가로 남겨졌다. 엄마의 마지막에 우리는 함께하지 못했고 아빠의 마지막은 우리가 지켰다. 떠나보낼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작별 인사 하는 자리이기도 했는데. 그 형식과 의식의 차이가 나의 가슴을 더 찢어놓았고 엄마에 대한 연민을 불러일으켰다. 엄마를 떠올릴수록 다 지나갔다고 생각했던 아홉 살의 그날이 다시 내 앞에 놓였다.


ⓒ Denise Jans, 출처 Unsplash



올해 1월, 기다리던 소중한 선물, 둘째의 생명이 찾아왔다. 입덧과 무력감에 침대 밖을 벗어나질 못했다. 마음이 무겁던 찰나에 몸까지 무거워지는 순간이 괜히 반가웠다. 어두움을 쏟아내기에 적절한 시기처럼 느껴졌다.


애도하는 마음이 우울하게 번져갔다. 생각도 감정도 그 얼룩덜룩함을 먹이 삼아 몸집을 키웠다. 외면하고 발버둥 쳐도 소용없었다. 참는다고 참아지는 건 아니었다. 어쩌다 눈물이 질질 새어 나오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이 슬픔에 끌려갔다. 우는 건 나약해, 나의 일상은 무너질 거야, 두려움이 말했다. 그 두려움을 비웃기라도 하듯 쏟아내고 나면 무언가 개운하고 후련했다. 꺼내어 놓아도 괜찮다 다독여 주는 감정의 카타르시스. 엄마가 죽은 뒤, 슬픔을 남몰래 감춰야만 했던 내가 떠올랐다. 그때의 내가 이 사실을 알았더라면 고통을 쌓아 두진 않았을 텐데.


시리고 베일 듯한 심장의 고통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다. 이번에는 달라지고 싶었다. 애도의 터널을 적극적으로 통과하기로 결심했다.


이 결심은 배 속의 아이 덕분이기도 했다. 첫째를 키우며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양육자의 내면에 쌓인 두려움은 아이를 키우면서 시시때때로 펼쳐진다는 걸. 행동, 말, 감정, 생각 모두에 스며들어 전파된다는 걸. 몸에 덕지덕지 붙은 해묵은 우울이 있는 상태로 아이를 맞이할 순 없었다. 적어도 이전과는 다른 마음가짐으로 이 상황을 마주해야 했다. 나는 이 아이를 책임져야 할 사람이 아닌가.


산모와 태아는 신체적으로도 그렇지만 정신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엄마가 웃을 때 태아도 웃음 짓고 엄마가 울 때 태아도 찡그린다는 것을 다큐멘터리에서 본 적이 있다. 내가 슬퍼할 때마다 태아가 기뻐하진 않으리란 걸 안다. 그렇지만 왠지, 이 아이에게 슬퍼해도 된다고 허락받은 것만 같았다. 견뎌낼 수 있으니 충분히 풀어놓아도 된다고 용기를 주는 것만 같았다.


자주 아이에게 기도했다.

‘엄마는 괜찮아. 엄마는 자주 슬퍼하지만 두렵지 않아. 엄마는 이 시기를 외면하지 않고 담담하고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싶어. 엄마가 눈물짓는 대신 웃고 기뻐하는 게 너에게 더 좋을 거라는 것도 알아. 네가 기쁨보다 슬픔을 먼저 느끼게 되는 게 부모로서 신경 쓰이는 일이긴 하지. 난 네가 거짓보다 진실을 이해하는 아이이길 바라. 지금 내가 너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것도 진실한 마음뿐이거든.’


아이가 이 시기에 찾아오지 않았다면 적극적인 마음으로 애도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나를 붙잡기 위해 와준 것일까. 아이가 참으로 고마웠다.



ⓒ Dewang Gupta, 출처 Unsplash



마주하기 위해 살아온 시간을 자주 거꾸로 돌렸다. 폭풍이 휘몰아치던 그때로 돌아가 고통을 들여다보고 쏟아내고 비워내야 했다. 대신 서두르지 않았다. 이 작업은 때로는 너무나 슬퍼서 며칠은 무력하고 헤매게 했다. 필요 이상으로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닐까 고민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해야만 자유롭게 눈물을 만날 수 있었다.


내가 깨달아야 할 것을 깨닫게 되면 현재로 돌아와 지금을 열심히 살아 내리라는 것에 의심이 없었다. 나만의 삶의 리듬을 이해하고 있었다. 아픔, 고통이 지나면 회복의 상태로 도달하리라는. 슬퍼하는 마음도 두려워하는 마음도 다 받아들일 날이 오리라는. 이 시간을 거름 삼아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할 무렵, 나는 여러 가지 단서를 발견하기 시작했다. 자유로워지는 나와, 용서할 수 없는 누군가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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