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장례식은 조용하고 단출하게 치러졌다. 코로나 방역 수칙이 4단계로 격상된 때라 친족 방문만 허용됐다. 우리를 포함해 스무 명도 채 안 되는 아빠의 가족들만이 빈소를 지키고 있었다. 필요한 곳에 소식을 알렸지만 거리가 멀어 오기 어려운 사람들이 더 많았다. 수도권에 사는 소수의 지인이 찾아와 허전했던 아빠의 사진 앞에 국화꽃 한 송이씩 놓아주고 돌아갔다.
빈소 옆 작은 방에서 잠들기 전과 후 눈을 감고 명상했다. 눈을 뜬 일상에선 아빠가 없다는 사실이 슬펐지만, 눈을 감고 명상하면 아빠가 편히 있다는 느낌이 들어 내 마음도 평온해졌다. 발인 전, 아빠의 얼굴을 보는 것이 마지막인 시간. 수의를 입은 아빠의 살결이 살을 에는 듯 차가웠지만 누워있는 아빠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고요했다. 죽음이 죽음으로만 끝나지 않음을 알기에, 아빠의 영혼이 원하는 새로운 시작이 있음을 알기에, 어렵지 않았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나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오전에 일찍 발인을 마치고 연화장 납골당에 아빠를 모셨다. 친척들과 주차장에서 헤어지는데 어릴 적 엄마가 떠난 후 같이 살았던 작은 고모부가 나를 살포시 안아주며 위로를 건넸다.
“힘들 거야, 잘 견뎌내.”
두 문장에 담긴 의미가 무엇인지 설명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울컥하는 말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처음도 아닌걸요.’
차를 타고 납골당을 떠나는 데 마음이 이상했다. 장례식장까지 아빠와 함께 있다고 생각했었나. 아빠가 없는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에 마음이 요동쳤다. 단단하게 느껴졌던 나는 온데간데없이 낯선 슬픔에 발을 담그듯 눈물이 번지기 시작했다. 이런 거구나, 이제 시작이구나.
언니와 함께 친정으로 돌아왔다. 아빠가 지냈던 안방 문을 열었더니 아빠에 대한 기억이 잔뜩 몰려왔다. 행거에 가득한 옷, 역사책이 빼곡한 책장, 먼지 쌓인 책상의 문구류, 아빠가 잠들었던 이부자리까지. 아빠와 함께 살던 언니에게 이 흔적은 아픔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정리를 서두르자고 제안했다.
창고에서 검은색 대형 비닐봉지들을 꺼내와 옷을 하나둘씩 집어넣었다. 낡았지만 버리지 않은 옷, 아깝다고 몇 번 입지 않은 옷, 뜯지도 않은 새 옷. 아빠에게 옷은 중요한 의미였다. 엄마 없는 자식처럼 보이고 싶지 않다며 빠듯한 살림에도 계절마다 우리에게 옷을 사 입혔다. 아빠 또한 엄마가 있을 때처럼 옷을 멀끔히 차려입었다. 홀아비처럼 보이기 싫었다나. 아빠의 모습이 담긴 추억을 하나둘 정리했다.
넣어도 넣어도 줄지 않는 옷들을 봉지 속에 툭툭 던져버렸다. 정리에 속도가 붙어 봉지도 나도 힘써 움직이는데, 문득 그 비닐봉지가 거대한 블랙홀 같았다. 아빠의 흔적을 삼키기 위해 손에 있는 옷을 자꾸 빨아들이는 블랙홀. 이렇게 아빠가 사라져 가는구나, 하는 생각에 기계적인 움직임을 멈췄다.
얼마나 더 해야 하나, 남은 것을 확인하는데 아빠가 임종 때 입었던 옷이 남아있었다. 체온이 떨어져 가는 아빠의 몸을 마지막까지 따뜻하게 해 준 패딩과 담요. 이미 아빠에겐 필요 없어진 물건들인데 더 이상은 아무것도 그 블랙홀 속으로 넣을 수가 없었다. 내 뒤에서 서류를 정리하던 언니가 그런 나를 보더니 거의 끝났네, 하곤 그것들을 차례대로 봉투에 담았다. 누군가는 해야 했을 일인 걸 알면서도 전신에 힘이 빠져버렸다. 잠시 멍하게 있는데 고모부의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힘들 거야. 잘 견뎌내.”
ⓒ Rasa Kasparaviciene, 출처 Unsplash
기록을 좋아하는 아빠는 가계부를 일기장 삼아 이것저것 적어놓는 습관이 있었다. 그날의 지출을 적어두고 하루의 평을 남기거나 할 일을 한두 문장으로 적어두는 식이었다. 아빠가 섬망이 왔을 때도 기록 덕분에 아빠의 공인인증서를 사용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작은 수첩이나 메모 하나라도 일일이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아빠는 무엇이든 적어두는 일부터 했을 테니.
책상 서랍 마지막 칸에는 오래된 추억들이 묵혀있었다. 20년도 더 된 아빠의 증명사진과 어린 딸들의 우스꽝스러운 스티커 사진. 명절이며 생일이며 챙겨줬던 용돈들이 차곡차곡 자리를 잡고 있었다. 쓰라고 줬는데 왜 다 모아뒀대. 다 쓰고 가지 못한 것들에 괜히 심술이나 툴툴대며 오래된 회사 수첩을 집어 들었다. 이번에는 또 무얼 적어뒀을까, 아무것도 없으면 넌 쓰레기통 행이야. 중얼거리며 무게감 있는 수첩을 흘겨봤다.
1994라는 숫자와 그 당시 아빠가 다녔던 회사의 로고가 박힌 먼지 쌓인 수첩. 텅 비어있는 월간계획표를 지나 유선 노트에 적혀있는 아빠의 영어 공부 흔적이 나타났다. 그 당시 해외 출장을 자주 다녔던 아빠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것이 끝이겠거니 빠르게 넘기는데 다이어리의 끝장에는 아빠와 다른 글씨체로 일기가 몇 개 적혀있었다.
등산을 좋아했던 엄마의 산행 일기였다. 내밀하게 적어 내려간 당시의 심경들.
쏟아지는 별을 만나 자연과 동화되는 순간.
신선한 새벽공기 내음에 자신의 마음을 둘러보는 순간.
힘차게 솟아오르는 태양을 보며 한 번 더 힘내보자며 다짐했던 순간.
그러다,
낯선 이들과의 서먹한 대화에 자신다운 웃음을 발견하면 더 공허해져 버리는 순간.
옛날의 자신을 잃어버린 지금 포효하는 네발짐승일 뿐이라는 처량함을 느낀 순간.
나아가고 싶지만 나아가지 못하는 모습에 수없이 좌절하는 엄마의 모든 심정이 적혀있었다.
자는 듯이 죽고 싶다, 고 적었다가 쓸모 있는 인간이고 싶다, 며 혼란스러워하는 엄마의 일기는 엄마가 떠나기 2년 전의 기록들. 그녀의 마음은 한순간에 밟힌 게 아니었다. 오랜 시간 동안 서서히 짓이겨져 있었다.
다이어리의 맨 뒤, 수납공간에는 엄마의 이름이 적힌 자그마한 휴대용 산행 수첩이 껴있었다. 엄마가 자살하기 전 며칠간의 행적과 당일 날 유서같이 적어 둔 짤막한 독백까지.
마음속 끊어졌다고 생각됐던 어떤 지점들이 지옥불처럼 데일 듯 타올랐다. 잔잔한 바다의 수면 아래에 존재했던 사람처럼 나를 지배하는 정서가 한층 낮아져 어떤 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아빠의 장례식 이후 짐작으로만 느끼고 있던 무기력이 날이 더할수록 나를 짓눌렀다.
환한 세상의 낮이 불편했다. 어둠이 짙은 밤은 편안했다. 잠을 쉽사리 이루지 못했다. 아이가 잠들었는지 확인하고 나면, 등을 돌리고 몸을 웅크리며 생각에 잠겼다. 한동안은 계속 같은 장면을 떠올리며 내가 그들인지, 그들이 나인지 모를 시간 속에서 헤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