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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비아 Jul 14. 2023

애도의 흐름에 몸을 맡기며

부모사별자의 내면치유 애도일기 #14


애도의 슬픔이 몰려왔을 때, 이 파도를 올라타보자고 결심했다. 파도가 나를 덮치고 물속에 잠겨 손발을 허둥지둥 흔들어 대더라도 파도를 향해 나아가보자고 생각했다. 그런 연습 없이 파도의 흐름에 몸을 맡길 수는 없을 테니.


내 안의 감정들과 깊이 대면할수록 슬픔의 배후에는 죄책감이 자리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 시작은 엄마의 일기장이었다. 아이를 키우며 과거의 엄마를 이해하고 화해하며 품었던 생각이 있었다. 엄마라면 이랬을 거야, 추측하는 마음들. 내 경험을 바탕으로 머리로만 짰던 가상의 시나리오가 엄마의 일기장에 고스란히 적혀있었다. 한 글자 한 글자에 서려 있던 깊고 진한 슬픔을 마주했을 때 손이 떨렸다.


내가 감히 추측한 마음들이 사실이었다는 게 하나도 반갑지 않았다. 엄마의 마음을 이 정도로 읽을 수 있었다면 그때도 엄마의 마음을 알 수 있었을 거라는 의심이 나를 찔러댔다. 내면의 증오가 산불처럼 순식간에 번져갔다. ‘왜 더 적극적이지 못했어.’, ‘왜 아무것도 몰랐어.’ 마음이 무너져 내려 주저앉고 싶었다. 나는 왜 나를 또 미워하는 걸까.


어디선가 저항감이 솟아올랐다. 예전이었다면 되묻지 못하고 수긍했을 비난에 반감이 튀어 올랐다. 스스로 공격하다가 방어하다가 혼란스러운 나날을 보내며 이 감정들을 여러 날 동안 곱씹었다.



ⓒ Luke Leung, 출처 Unsplash



부모를 용서하기 위해 나를 용서하지 못한 기나긴 세월이 있었다. 아빠가 있을 때, 자식으로만 살지 못했던 나. 의심해 본 적 없는 엄마의 품이 한순간 사라져 버렸기에 아빠의 품도 어느샌가 사라져 버릴 수 있다는 불안을 늘 품고 있었다.


기대심을 채우지 못하면 사랑받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작은 불만조차 말하지 못했다. 사랑받고 싶어서 이해하려 노력했다. 아빠가 가는 길에 짐이라고 느껴지면 버려지게 될까 봐, 필요한 존재가 되기로 했다. 당신 몫의 짐까지 나서서 등에 지고 함께 그 길을 걸어가려 했다.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무엇이든 해도 된다는 사랑의 확신이 나에게는 없었으므로. 나에게 주어진 사랑이 언제 소진될까 매일 두려워했다.


그렇게 살아오며 스스로 씌운 짐이 얼마나 많았던가. 더 이상 감당해 낼 수 없었다.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 나를 미워하는 굴레에서 빠져나오고 싶었다. 시작을 되짚어 보기로 했다. 이 애도의 시작이 무엇이었는지를.





과거의 나는 엄마의 기억이 올라올 때면 덮어두고 모른척하거나 무조건 좋은 방향으로 생각을 정리했다. 진짜 마음을 들여다보려 하지 않고 회피해 왔다. 하나도 괜찮지 않았으면서 애써 괜찮다 합리화했다. 스스로를 지키겠다고 생각한 행동이 오랜 세월 나를 억눌러왔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나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감옥을 만들었다는 것도.


애도의 흐름에 몸을 맡기기 위해서 새로운 결심이 필요했다. 절망에 빠진 마음에 침착함 따위는 버릴 것. 애쓰지 않고 견딜 수 없이 무너져 볼 것. 고통과 슬픔에 쌓아둔 벽을 와장창 무너뜨릴 것. 이전과는 다른 태도와 시선으로. 덮어두고 모른 척했다면 다 꺼내어 들춰야 했고, 긍정이라는 이름으로 회피했다면 부정적인 나의 마음도 들여다봐 줘야 했다.


대신 나의 애도가 엉망이 되지 않기 위해 명심해야 할 것이 있었다. 흠뻑 애도에 취하되, 나를 망가뜨리지 않을 것. 그들을 그런 식으로 떠올리려는 애도가 아님을 명심할 것. 필요 이상의 감정까지 껴안아 나를 원망, 비난하지는 말 것.


죄책감을 느끼고 있던 마음을 발견하고 나를 비난하지 않기로 약속하고 나니, 신기하게도 나는 나의 슬픔이 반가웠다. 말할 수 있는 내가 되어서, 숨기지 않고 마음껏 울 수 있는 내가 되어서.


가끔은 울어도 괜찮다고 하면서 너무 오래 가라앉는 건 아닐지 걱정되기도 했다. 무언가 해야 하는데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태가 한심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마음속을 헤엄치고 들어가 가려져 있는 것을 거둬내고 나의 진짜 마음을 찾아냈다.


구석에 숨어 있는 내가 보였다. ‘나 무서워.’

두려움에 떠는 나를 다독다독 위로했다. ‘괜찮아, 잘하고 있어.’

오랫동안 머물 것 같던 그 마음들은 금세 자취를 감췄다. 언제든 그 위로에 달려가 기대었다.


나의 밤에 늘 자리했던 죄책감. 이제 그 죄책감을 후벼 파는 날 대신 ‘여기가 그 기억이 있는 상처구나’ 어루만져주는 날들이 많아졌다. 커다란 절망과 고통이 차례로 쌓인 층을 눈물로 하나씩 벗겨내었다. 우는 나를 바라보는 데 마음에 걸림이 없었다. 여러 날을 편안한 마음으로 울었다.



ⓒ J Lee, 출처 Unsplash




다시 애도가 시작된 이유는 나 자신을 용서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과거에 미워했던 내가 떠오른 이유는 미워함을 그만둘 때야 사랑할 수 있다는 것임을 알기 위해서였다. 실컷 울고 다 털어버리기로 했다. 용서하지 못했던 나를 다시 사랑하리라 다짐하며.


눈동자에서 떨어지는 투명한 그것은 전부 과거의 것이었다. 과거의 우울, 과거의 분노, 과거의 불안. 짠 내 나는 알갱이가 몸에 붙은 과거를 차례로 떨구었다. 중량 있는 모래주머니에서 해방되듯 가벼워진 육체가 파도 위로 떠 올랐다. 기쁨에 차올라 또 눈물이 났다.


바라만 볼 뿐이었는데 명료해졌다.

받아들였을 뿐이었는데 자유로워졌다.

파도와 함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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