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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비아 Jul 21. 2023

부재를 존재로

부모사별자의 내면치유 애도일기 #15. [마지막화]


애도에 한도가 있다고 생각했다. 몇 번 겪어내고 나면 그다음엔 찾아오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애도는 극복이라고 생각했다. 정상의 궤도에 도착하면 되풀이되어도 흔들림이 없으리라 생각했다.

전부 틀린 생각이었다.


애도는 마치 감정의 카테고리에 어느새 자리 잡은 이방인 같았다. 말없이 찾아왔다가 스르르  자취를 감추며 통제할 수 없었다. 빈번히 발생하는 이것에는 한도도 극복도 없었다. 부재를 안고 살아가는 법을 배울 뿐.


삶의 크고 작은 전환점이 나에게 기회를 줄 때, 그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과거에서 현재까지 나를 변할 수 있게 했던 건 오로지 해보겠다는 결심이었다. 잊으려고 할 때가 아니라, 기억하려 할 때 나아갈 수 있었음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나에게 찾아온 애도와 어떻게 하면 잘 지낼 수 있을지 궁리했다. 명상, 무의식 상담, 치유 글쓰기를 통해 접했던 여러 가지 방법에서 힌트를 얻었다. 애도야 안녕, 인사를 건네며 여러 작업을 시작했다.





첫 번째, 기억의 재구성 : 과거에 머물러있는 마음의 정리     


첫 아이를 낳고 기르는 과정은 나를 치유하는 시간이었다. 엄마가 나에게 주었을 사랑이 떠오르지 않아 나의 아이를 어린 날의 나처럼 생각하고 사랑을 주었다. 아이가 편안해하고 안정감을 느낄 때마다 그 나이의 나도 이런 사랑을 누리며 자랐겠지, 자주 위안 삼았다. 엄마라는 사람으로서 아이에게 주는 사랑이자 스스로 주는 사랑이기도 했다. 이처럼, 나에게 강렬한 고통으로 남아있는 그날의 기억도 가벼워지길 바랐다. 죄책감에 묶여있는 나를 놓아주기 위해 과거에 머물러있는 마음을 정리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치유 글쓰기에서는 자신을 괴롭히는 장면을 구체적으로 떠올려 보고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거나 어떤 의미를 남겼는지 돌아보게 했다. 관점 돌아보기나 의미 찾기는 지나온 과정이라 생각해 무의식 상담에서 경험했던 방법을 각색해 그 장면으로 다시 돌아가 새로운 기억을 쓰기로 했다. 수동적인 그날의 나를 지우고, 주체가 되어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보기로.




[1997년 3월, 아홉 살의 그날]


아빠의 연락을 받고 한달음에 달려간 집의 거실. 아빠, 언니, 내가 긴장된 침묵 속에 있었다. 아빠가 무슨 말을 하려는 순간, 현관 쪽에서 '딸깍' 소리가 들리며 누군가 들어온다. 엄마였다. 기다렸다는듯 달려가 엄마 품속을 파고들었다. 엄마가 또 떠날까 두려운 나는 고개를 들어 엄마의 표정을 살핀다. 엄마의 따뜻한 손이 내 머리칼을 쓸어 넘긴다. 긴 여행을 끝낸 엄마의 표정은 누구보다 편안했다.


"엄마, 돌아온 거지?" 조심스럽게 내가 묻는다.

"응, 오래 기다렸지. 미안해. 이제 엄마가 곁에 있을게." 흔들림 없는 목소리.

불안했던 마음이 안도하자 눈물이 터진다.

"엄마, 너무 보고 싶었어. 나 때문에 엄마가 떠나버린 줄 알았어. 미안해. 이제 말 잘 들을게."

엄마에게 고해성사하듯 잘못을 시인한다.

"아니야, 네 잘못이 아니야. 엄마에게는 시간이 조금 필요했을 뿐이야. 엄마는 언제나 널 사랑해."

내가 꼭 듣고 싶은 이야기를 엄마가 해준다.

엄마가 들려주는 사랑한다는 말에 잘못이라 생각했던 단서들이 아주 작은 조각이 되어 공기 중에 흩어져 자취를 감춘다.

‘내가 엄마를 웃게 해 줄 거야, 행복하게 해 줄 거야.’

아홉 살의 나는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새롭게 그려낸 장면에 머물며 시각화 명상도 했다. 편안한 마음으로 눈을 감고 하는 상상이랄까. 처음엔 그저 다른 이의 삶이 상영되는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낯설었지만 치유작업의 일환이라고 생각했기에 이 장면들이 생생하고 구체적일 때까지 몇 번이고 더 반복했다. 필요하다면 엄마에게 전하는 마음을 소리 내어 말하고 엄마에게 듣고 싶었던 이야기도 나에게 직접 해주었다. 장면이 점차 내 것이 되었다고 느껴졌다. 마음이 녹아내리고 따뜻해졌다. 엄마의 영혼이 나에게 찾아와 이야기해 주는 것처럼.





두 번째, 감정의 받아들임 : 현재가 흘러가도록     


부모 없는 삶에 익숙해졌지만, 그들의 빈자리를 알게 하는 일은 때때로 찾아왔다. 걷지 못해 휠체어 타는 노인을 볼 때나 병환으로 요양원에 계신다는 누군가의 부모님 소식을 들을 때. 부모님의 부고 소식이나 어떤 이의 자살 소식을 들을 때, 심장은 어김없이 쿵 내려앉았다.


부모가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그 사실을 바꿀 능력도 없었다. 그러나 이 사실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 가에 대해서는 내가 결정할 수 있었다. 이 사실이 나를 끌어당기는 어떤 상태에 맹목적으로 끌려가는 대신, 스스로 새로운 균형을 만들어 가기로 했다. 아무도 지나가지 않은 새 하얀 눈길 위에 나의 발자국을 꾹꾹 눌러 밟아 남기듯이.


올해 초 시작한 애도 작업은 수면 아래 잠들어 있던 다양한 아픔을 보여주었다. 마음껏 떠올리고 미친 듯이 울면서 가능한 많은 것을 끄집어냈다. 그 행위 덕분에 시작되었다. 장례 의식을 온전히 치르며 작별 인사한 아빠와 달리, 어떤 의식도 인사도 하지 못한 엄마를 위한 마음의 장례식이.


충분히 마음의 장례식을 치른 뒤, 수시로 현재 마음 상태를 확인했다. 진동이 유난히 센 날에는 괜찮다고 마음을 다독거렸다. 그러다 과거가 겹쳐 슬픔이 올라오면 기꺼이 슬퍼했다. 슬퍼하는 마음은 곧 사랑하는 마음이므로. 과거의 나와 과거의 그들을 위한 나의 사랑을 외면하지 않도록.


감정은 시시때때로 나에게 말 걸어올 것이다. 피하지 않고 대답해 주어야 감정은 자신이 흘러가야 하는 곳을 통해 흘러 나갈 것이다. 나는 그저 출렁이는 나의 마음 상태를 바라보고 받아들이려 노력할 뿐. 자연스러운 것을 자연스럽게 바라볼 수 있을 때 흐름을 받아들일 수 있다. 그게 내가 되는 길이었다.





세 번째, 함께 존재하기 : 나만의 방식으로 추모하기     


새로운 애도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고인과의 유대감을 이어 나가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우리의 인연은 이제 끝이라며 분리되었다고 느꼈던 과거보다, 기억하고 떠올리며 연결되었음을 느꼈던 그 순간이 나에겐 더 큰 위로가 되었기 때문이다. 서로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더라도 우리를 추억할 수 있는 행위가 일방적인 방식이더라도 나에게는 유의미했다. 고인을 추억하는 나만의 추모식을 진행하며 미래를 향하는 마음에 물을 주고자 했다.


부모님 각자의 기일에는 그들에게 감사 편지를 썼다. 1년 만에 만났으니 한 해 동안 나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나의 근황을 알리기도 했다. 나의 삶의 지도를 보며 그들은 어디선가 기뻐하리라.


그리고 나의 생일에는 내가 직접 엄마와 아빠가 되어 나에게 답장을 썼다. 한 해 동안 네가 얼마나 대견하고 기특했는지, 듣고 싶은 마음을 담아 썼다. 올해는 이렇게 적었다. "네가 나에게 와주어서 정말 고마웠다. 우리가 만날 수 있어서 행복했다. 짧았지만 그 시간이 있기에 살아낼 수 있었다. 네 덕분에 웃는 날 또한 많았다."  

    

매년 그들을 기억하고 인사하는 시간을 통해 나에게 무엇이 쌓일지 궁금해진다. 애도는 분명 나를 새로운 차원으로 이끌어 주고 있었다.





"삶이 내게 알려주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엄마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던 내가 엄마가 되기로 결심했던 그날, 내 안에 갇혀있던 시선이 삶과 연결되면서부터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대답은 늘 바로 오지 않았다. 질문을 마음에 품고 삶에 충실할 때 조금씩 나를 스쳐 지나며 힌트를 줬다. 스무고개의 그것처럼, 보물 찾기의 그것처럼. 그러다 보면 어느새 내 안에 '아!' 하는 대답이 찾아왔다.


이 질문은 과거를 돌아본다고 주어지는 건 아니었다. 미래만을 내다본다고 주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과거에서 ‘왜’를 찾고, 미래를 향해 ‘어떻게’를 떠올리며 향해가는 균형의 자리에 있을 때 나타났다.


삶에서 무너지고 싶은 순간이 올 때마다, 이 물음을 떠올렸다. 없다고 생각할 때는 없었고, 있다고 생각할 때는 대답이 꼭 나타났다. 애도가 시작되었을 때도, 어김없이 이 질문을 떠올렸다.


한차례 폭풍우가 지나갔다. 남겨진 자리를 차분히 정리했다. 이 애도가 끝이 아님을 안다. 애도는 나의 삶에 한 부분이 되었으므로. 언제든 또 다른 폭풍우가 다가와 나를 또 흔들어 놓을 수 있다. 괜찮을지, 괜찮지 않을지 장담할 수 없지만 그때에도 나는 나에게 질문을 던질 것이다.



삶이 내게 알려주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무엇을 경험하게 하려고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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