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이를 먹은 걸까, 거꾸로 먹은 걸까

다정함의 한계

by 민지

예전에 나는 늘 밝은 아이였다. 슬플 때나 우울할 때도 언제나 웃음을 유지했다. 속앓이를 할 때도 그것이 주변에 전염되는 것이 싫었고, 마찬가지로 그런 사람도 싫었다. 기분이 태도가 되는 사람, 내가 극도로 기피하는 유형이었다. 그래서 나는 더더욱 기분을 감췄다. 그러다 보니 어느샌가 언제나 잘 웃고 늘 행복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아프거나 기분이 안 좋아도 주변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했다.


그리고 마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나의 다정함과 애정을 마구마구 묻혔다. 나 역시 그것이 그대로 나에게 돌아올 때, 사랑이라 생각했다. 때로는 살가움이 나의 무기라 여겼다. 타인과의 어색한 공기를 쉽게 허물고 가까워질 수 있는 나의 특화된 능력이라 믿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 힘은 꽤나 막강했고, 운이 좋은 건지 많은 사람들이 주변을 채웠다.


그런데 문제는, 다양한 사람들을 접하면서 나의 이런 밝은 에너지도 무한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모두를 위한 다정함과 살가움은 이제 소진되었다. 애정을 받을만한 이유가 있는 사람들에게만 관심과 사랑을 쏟기로 마음먹었다. 사실은 결심한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이렇게 되었다.


친절함과 다정함을 호구로 아는 사람들이나 기본적인 예의조차 없는 이들에게, 베푸는 나의 애정은 무용한 사치에 불과함을 깨달았다. 결이 맞지 않는 이들 역시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일 필요도, 이유도 없다고 생각하는 요즘이다. 그런데 이 사실을 유념할수록 헛헛해지는 마음도 외면할 수 없어 혼란스럽다. 어렵다는 것을 알지만, 모두와 사랑하고 행복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싶은 마음이 생각보다 컸나 보다.


그럼에도 요즘의 난, 표정을 선택적으로 짓기 시작했다. 웃고 싶을 때 웃고, 때로는 정색도 하고 불편한 사람과 있을 땐 티를 내기도 한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길 포기했지만, 나에게 좀 더 친절한 방법이라 생각해 본다.


나이를 먹었다는 것이 바로 이런 걸까? 생각에 잠기다가도,


‘진정한 어른이 되었다면 불호인 사람과도 가까이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일까? 오히려 더 다정해질 수 있는 아량과 배포를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란 딜레마에 빠진다.


그래서 문득 생각한다.

나는 나이를 먹은 걸까? 아니면 거꾸로 먹은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