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반대한 건 엄마만이 아니었다.
“기분 나쁘게 듣지 마" 혹은 "그래도 할 말은 해야겠어.” 그런 말을 앞에 붙이고 이야기를 꺼내는 친구들이 몇 있었다.
나는 원래 남의 일에 관여하지 않는 편이 가장 속 편하다 생각하는 인간인지라, 굳이 ‘욕먹을 각오’를 하는 번거로움을 마다하지 않는 그들에게 한편으론 고마운 마음도 들었다. 그리고 그 고맙고 번거로운 일을 가장 부지런히 해내던 사람이 J였다.
J는 대학교 때 만난 친구로, 삶의 보법이 남달랐다. 예체능을 하던 애가 영어에 꽂혀 대학 내내 도서관에 처박혀 살더니, 졸업 후엔 별안간 의류 매장으로 들어가 전국 매출 1위를 찍었다.
그리고 어느 날, 매장에 들어오는 사람들 얼굴이 죄다 돈으로 보인다며 일을 그만뒀다. 이후 J가 로스쿨에 들어갔다는 얘기를 들었고, 다시 만났을 때 그녀는 변호사가 되어 있었다. 그것도 미국 변호사로.
나 역시 음악을 하다가 갑자기 역사 교사가 된 꽤나 특이하다는 케이스였지만, J 옆에 서면 그마저도 평범해 보였다. 우린 성격은 달랐지만, J와 나는 이상하게 죽이 잘 맞았고, 각자 변호사와 교사가 된 뒤에도 자주 만났다.
당시 J는 내가 만나고 있던 전혀 전도유망하지 않은 H를 매우 못마땅했었다. 한 날은 작정한 듯 해장국집에 나를 앉혀두고 일장연설을 시작했다.
“잘 들어봐.
지금 니 월급을 적당히 쓰고 남는 건 저금하잖아.
그게 중간 정도 레벨의 삶이야.
그런데 H랑 결혼하잖아?
저금은커녕 그 집에 다 들어가는 수가 있다?”
그때 나는 J의 말보다, 몇 술 뜨지도 않은 채 식어가는 해장국이 더 신경 쓰였다. 여기 꽤 맛있는 집인데.
“야, 니 월급을 용돈처럼 쓰는 집안은 아니더라도
남의 집 노후랑 빚 갚는 데 쓰게 되면 어떡할 거냐고!”
숟가락을 신경질적으로 내려놓는 J에게 나는 '30년 키워준 우리 엄마 말도 안 듣는데 내가 니 말을 듣겠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평소엔 거의 풀린 눈으로 다니던 애가 그날은 어찌나 눈을 부라리며 몰아붙이던지, 기세에 눌려 찍소리도 못했다.
J는 마지막에, 낮게 읊조렸다.
“야, 너 타이타닉 봤지?
넌 지금 침몰하는 배를 타려고 하는 거야.
주변 사람들은 다 알아.
너만 모르고 있는 거라고.”
그날 밤,
평소처럼 잠자리에 들었는데, 잠이 오지 않았다.
‘침몰’
그 단어가 이상하게 계속 맴돌았다. 그게 꼭 내 삶에 내려진 저주처럼 느껴져, 나는 그 끝을 한번 따라가 보기로 했다.
알고 보니 H네 집에 감당하기 힘든 빚이 있었다.
내 월급은 구멍 난 장독대처럼 새어나가고,
그토록 죽고 못 살던 H와의 관계도 무너지며
결국 나는 혼자서 아이까지 키우게 되는데...
그렇게 꼬리에 꼬리를 문 저주받은 내 삶은 모든 것을 잃은 막장 드라마로 마무리되었다. 몰아치는 불행들은 상상만으로도 숨이 가빠질 지경이었다.
그러다 문득,
다른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될지도 모르는 먼 미래 말고,
그 사이를 채워나갈 ‘하루’는 어떨까.
천천히 호흡을 진정시켰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려지는 모습은 하나였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고,
하루의 대부분을 학교에서 보내고,
퇴근하는 하루.
내가 부자와 결혼하든,
가난한 사람과 결혼하든,
그 하루 자체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 같았다.
더 나쁜 일이 겹쳐도,
내 몸만 멀쩡하다면
나는 결국 또 출근하고,
하루를 버티고,
집으로 돌아올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침몰’이라는 말이 더 이상 저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 밤,
나는 오랜만에 깊이 잠들었다.
이후 J와는 자연스럽게 연락이 뜸해졌다. 변호사가 된 그녀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빴고, 나도 먼저 연락을 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2년쯤 후, J에게 전화가 왔다.
“야, 너 아직도 걔 만나냐?”
아직 만난다는 내 말에, 그녀는 한숨을 쉬며 또 그 ‘침몰’ 이야기를 꺼냈지만, 어쩐지 더 이상 그게 저주로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눈을 부라리는 J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생각나 웃음이 났던 것 같다.
그렇게 매년 같은 질문으로 안부를 묻던 J는
H와 내가 사귄 지 6년이 되던 해,
“징하다, 징해.”
그렇게 말하고는 나를 설득하는 걸 그만두었다.
결국 나는 엄마말도, J말도 듣지 않고 H와 결혼했다. 그리고 그다음 해, J도 결혼을 했다. 오랜만에 걸려온 전화에서 그녀의 목소리는 힘이 없었다.
“야. 결혼하고 뭐가 크게 달라질 줄 알았는데, 그냥 똑같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만 해.”
나는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너는 나보다 돈 세 배는 넘게 벌잖아.”
“…”
“네 밴가?”
“…”
“... 설마 다섯 배냐?”
잠시 침묵이 흐른 뒤, J가 말했다.
“야… 내가 너 결혼 말렸잖아. 그거 취소할게.”
“갑자기?”
“응. 너 결혼 잘한 것 같아.”
“왜?”
“결혼해 보니까, 착한 게 제일이더라.
H는 착하잖아.”
왜, 니 남편은 안 착해?
그 말이 목까지 올라왔지만, 하지 않았다.
살인적인 업무량과 계속되는 시험관 시술의 실패.
그때 J는 많이 지쳐 있었다.
무슨일있냐는 내 물음에
J는 한참을 아무 말이 없다가
곧 연락하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얼마 뒤, J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우리 남편, 사실은 되게 착해.’
몇 번의 시험관시도 끝에 아기를 가졌다는 소식도 함께였다.
J가 그렇게까지 말렸던 내 결혼은 생각보다 멀쩡하게 흘러가고 있다. 잘 나가기만 해 보이던 J의 삶도 내가 알던 것처럼 평탄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
사는 모양새는 멀리서 보면 비슷해 보이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다 제각각이다.
아무튼,
내 인생은 침몰하지 않았다.
아직은.
.
.
.
그래도 말이다.
나보다 다섯 배는 더 버는 J가
부럽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뭐, 그건 또 그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