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놈의 자기연민

by 사랑의 생존자


육아를 하면 자기 밑바닥을 보게 된다는 말을, 예전에 어디선가 들었다.


그리고 나는 드디어 그걸 봤다.

바로 어제.




돌이 지나고 지안이는 간단한 말을 알아듣기 시작했다. 표정도, 행동도 점점 ‘작은 인간’ 같아졌다.

그게 너무 귀엽고 신기한 것도 잠시,

작은 인간은 곧 자기 주장을 하기 시작했다.

밥이 싫으면 전부 뱉고, 마음에 안 들면 소리를 지르고 운다. 저번 주부터 심해지더니 이번 주는 거의 하루 종일 이어진다.


육아서적이나 인터넷을 찾아보면 결론은 늘 같다.

‘아기는 지금 감정을 배우는 중이에요. 잘 자라고 있는 증상이지요.’


그 말을 보면 잠깐 안심한다.

아, 잘 크고 있구나.

하지만 그 잠깐이 지나고 나면 나로서는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는 울음과 짜증에 금세 지쳐버린다.

그래서 그런가. 편두통이 심해졌다.

지안이 울음소리가 머릿속 골을 딩딩딩 울려댄다.


“The days are long, but the years are short.”


요새 이 말만큼 피부로 와닿는 게 없다.




새벽 6시부터 시작되는 하루를 겨우 버티고 나면,

퇴근하는 H군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그리고 그 순간,

지안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깔깔 웃는다.


그 모습을 보면 흐뭇해야 하는데,

왠지 억울한 감정이 불쑥 올라온다.


H군은 육아가 체질인 사람 같다.

하루 종일 아이와 붙어 있는 건 나인데, 평일에 고작 한 시간 남짓 아이를 보는데도 본능적으로 아이가 원하는 걸 알아낸다. 울음에 휘둘리지 않고, 해야 할 걸 한다. 밥을 먹일 때도 더 먹이려고 애쓰는 나와 달리 단호하다. 그래서인지 H군이 먹이면 아이는 잘 먹는다. 놀아줄 때는 또 완전히 자신을 던져놓고 논다. 지안이는 H군을 참 좋아한다.


고마운 남편,

좋은 아빠.


감사해야 하는데,

스스로 생각해도 어이없게

자꾸 부족한 나와 H군을 비교하게 된다.


아, 나는 육아를 왜 이렇게 못할까.




문화센터에 가면 육아 동지를 사귈 수 있을 줄 알았건만, 쉽지 않았다. 이미 삼삼오오 무리가 형성되어있는 엄마들 사이에서 혼자 있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본다. 대부분은 친정의 도움을 조금이라도 받고 있었다. 아니면 적어도 대중교통이 전무한 이 동네에서 차는 한대씩 있었다.


하루종일 아기와 단둘이 있는 상황에서 집에만 있을 수는 없다. 게다가 에너지가 넘치는 이 사내 녀석이 조금이라도 낮잠을 자게 하려면 꾸역꾸역 밖으로 나가야 한다.


유모차와 아기띠로 왕복 한 시간을 들여 문화센터를 다닌다. 어제는 시에서 운영하는 놀이방에 가려고 아기띠를 메고 버스를 기다리는데, 배차 시간은 늘 야속하다.


급기야 저녁에 참았왔던 정체모를 억울함이 무르익을대로 익어 터져버렸다.


왜, 왜, 왜! 나만!’


그걸 묵묵히 듣고 있던 H군이 한마디했다.


“왜 이렇게 남들이랑 비교를 해.”


그 말 한마디에 뭔가 와르르 무너졌다.

아, 내 자존심.

어디 하나 틀린 말이 아니라서 더 그랬다.


“나 원래 비교하고 그런 시시한 사람 아니야! 상황에 너무 몰려서 그래! 아무도 모르는 낯선 곳에서 하루 종일 아기랑 있는거 너무 힘들어! 너무 외로워!”


H군에게 짜증과 울분을 가득 담아 소리쳤다.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실은 나도 요즘 느끼고 있었다.

나, 요즘 왜 이렇게 남들이랑 비교하지.




결혼 전에, 아니 정확히는 육아 전에 나는 딱히 부러운 게 없는 사람이었다. 잘난 게 있어서 그런게 아니라, 원래 비교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남들이 흔히 부러워하는 학벌, 외모, 돈, 연애 같은 것들에 크게 흔들려본 적이 없었다. 그냥 나는 내 것에 만족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


아니었다.

그냥 그런 것들이 안 부러웠던 거였다.

단지 그뿐이었다.


육아를 하면서 처음으로 부러운 것들이 생겼다.

잘 자는 아기, 잘 먹는 아기, 곁에서 도와주는 다정한 친정엄마, 함께 육아를 나눌 친구들,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차를 가진 사람들. 하다하다 못해 육아를 잘하는 H군까지 부러워한다.


부럽다, 부럽다 하다 보니

결국 내가 불쌍해졌다.


그제야 퍼뜩 깨달았다.

아아, 도졌구나. 또 도졌구나.


나는 힘들어지면, 상황에 내몰리면

어김없이 이 감정으로 떨어진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 힘들다고 착각하면서

옆에 있는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

상대가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는 보려고도 않고,

내 힘든 것만 들이민다.

결국 함께 버티고 있는 소중한 사람을 눈치 보게 만든다.


그 놈의 징글징글한 자기연민.




내가 정말 싫어하는 인간형이 있다.

가진 게 많으면서 없는 몇 개에 매달려 끝없이 슬퍼하고 자신을 불쌍히 여기는 사람.

그걸 이유로 다른 사람을 아프게 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모르는 사람.

섬세한 척하지만 사실은 무신경하고, 착한 척하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공격적인 사람.


대학원 다닐 때 딱 그런 동기가 있었다.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속으로 정말 싫어했다.


솔직히 의문이었다.

나는 왜 그 친구를 그렇게까지 싫어했을까.


이제야 답이 나온다.

아, 나를 닮아서였다.


내가 싫어하는 내가 눈앞에서 구체적인 형상으로 서 있었던 거다. 그래서 그렇게까지 싫었던 거다.




나는 H군이 참 좋았다.

묵묵히 자기 인생을 가는 그 모습이 좋았다.

힘들면 방법을 찾고, 안 되면 받아들이고,그 안에서 작은 즐거움을 찾는 사람.

거기에 자기연민이 없다.

그래서 좋았고,

그래서 더 부러웠나보다.


나에게

자기연민의 반대말은 묵묵함인지도 모르겠다.

내 밑바닥을 보고 알았다.

나는 묵묵한 사람이 못 된다.

상황에 몰리면 어김없이 이 감정으로 떨어진다.

그리고 내 힘든 것만 내세우며 옆에 있는 사람을 아프게 한다.




문득 떠올랐다.

임용시험에 연달아 떨어지고 지금처럼 자기연민에 허덕이는 소리를 쉴새없이 해댈 때.

그때 J가 나한테 그랬지.


“사탄아, 물러가라!”


자기연민이 내 사탄이다.

요며칠, 패악질은 충분히 했다.

이제 그만해야 한다.




내일은 성 금요일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나의 죄를 짊어지고 돌아가신 날을 기념하는 날.

사람들에게 희롱당하면서도 묵묵히 십자가를 지신 그분을 생각한다.


묵묵히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사람,

나는 그럴 수 없는 사람이겠지만

적어도

내가 힘들다고,

이 감정을 소중한 이에게 던지지는 말자.


그 정도는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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