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인문학] 아픈 기록도, 추억이었음을

남기는 모든 것은 나름의 의미가 있다

by 모간

# 마흔 생일에 받은 편지 두 통


<열 살 어른 애지의 편지>

어머니께.
저 어머니 큰 딸 애지예요. 애지중지를 낳아주시고 키워주셔서 고맙습니다.
어머니 생신 파티를 할 때 마음이 시언찮네요. 걱정 마시고...... 생일 축하드려요. 사랑해요.
<아홉 살 어른 중지의 편지>

엄마께.
엄마! 나 중지야. 요줌에 차 수원까지 왔다 갔다 힘들지요?
저도 수학 시계 단원 열심히 할게요 ♡ 사랑해요. 그리고 생일 축하해요.


애지중지에게 이렇게 짧지만 아린 편지는 처음 받아본다. 쓰다만 편지 같다. 중략도, 하략도 없이 딱 여기까지다. 지금까지의 손편지는 기쁘고 행복한 마음일 때만 띄워지기 마련이어서, 슬픈 감정은 새겨질 기회조차 없었다. 그런데 슬픔이 기록으로 남았다.


20년 지기 파라솔과 종종 마음이 엇나가서 생긴 마음의 생채기

원거리 출퇴근으로 인한 고단함과 '아침 엄마'를 잃은 애지중지에게 미안한 마음

애지중지의 학업 성취도에 대한 은근한 걱정과 부모 역할에 대한 고민


애지의 말처럼 파티를 할 때의 마음이 '시언찮아서' 그 너머 마음까지는 담기지 못한 채 편지는 끝났다. 하지만 아이들의 순수함을 닮아서, 이 편지 안에는 모간의 마흔통이 그대로 살아있었다. 별거 아닌 일로 파라솔과 서로 마음에 생채기를 냈고, 그 생채기는 애지중지에게로 옮겨갔다. 우리 넷은 그렇게 다 같이 아팠다.


사실 어떤 상처나 갈등, 섭섭함도 오래 담아두는 성격은 아니다. 엄마가 된 이후, 담아두고 묵히려고 해도 애지중지가 그냥 놔둘 리 없어서 금세 뽀송뽀송하게 말라버린다.


이번도 그랬다. 애지중지가 강제로 이끄는 통에 파라솔의 따뜻한 손을 잡았고, 애지중지가 뒤에서 밀어붙이는 통에 우리는 껴앉았다. 그렇게 아픈 기록은, 추억이 되었다.


마흔통이 추억의 뒤안길로 사라지자, 우리는 아침에 타다만 촛불을 다시 꺼냈다. 열 살짜리 큰 초가, 한 살짜리 작은 초로 변해있었지만, 그 위에 다시 새로운 불씨를 붙였다. 마흔, 네 개의 촛불이 반짝반짝 빛났다. 아침의 눈물자국은 새로운 불꽃이 아름답게 녹여냈다. 그 모습을 한 동안 지켜보던 파라솔이 말했다.


"우리 순서대로 촛불 하나씩 끄기 하자! 다른 사람의 촛불은 꺼뜨리면 안 되고"

우리 넷은 네 개의 촛불을 하나씩 꺼 나갔다. 주인공 모간부터 시작했다.

조심, 조심, 후~

이어 애지와 중지 차례다.

조심, 조심, 후~

조심, 조심, 후~

심혈을 기울여 자기 촛불을 껐다. 마지막 한 개의 촛불은 파라솔 차례였다.

시원하게, 후~

우리는 실패 없이 해냈다. 환호성과 함께 절로 박수가 나왔다.


두 번의 생일 파티는 우리에게 일러주었다. 주인공이라고 해서 촛불을 도맡아 끄라는 법은 없다고. 주인공을 빛내주는 또 다른 주인공들이 곁에 있고, 그들에게도 하나의 촛불은 허락되어야만 한다고.


그간, 주인공 역할에 심취해서 다른 촛불을 마구잡이로 꺼뜨렸던 건 아닐까? 깊게, 오래, 생각했다.


각자의 촛불이 소중하듯, 타인의 촛불 또한 온전히 지켜주면서 자신의 행복을 누려야 한다. 나 하나 꺼져도 그만이 아니라, 각자가 영롱하게 제 빛을 밝혀줘야 진짜 파티는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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