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인문학] '마음 통'을 비우세요

아홉 살 어른의 현실적인 조언

by 모간

# 어른 싸움 후, 아홉 살 어른에게 구한 조언


최근 파라솔이 생존 PT를 등록했고, 자신의 시간을 챙기기 시작했다. 시간 사용 계약은 주 3회, 1회 2시간 정도로 정했는데 어느 순간 주 5회를 당당히 넘긴다. 파라솔이 빠져나간 시간은 고스란히 모간의 몫이기에 달갑지 않다.


하긴, 더 어려운 시기도 이겨내 놓고 뭐 이 정도야.

그런데 스멀스멀 올라오는 이 억울함은 뭘까? 이 감정을 인정하자니 나약함을 들키는 것 같고, 시시콜콜 짚고 가자니 사랑이 식어가는 소리가 들리고, 혼란스럽다.


거기다 연애 20주년 기념일이 다가왔고, 곧 모간의 생일도 임박했다. 선물이나 깜짝 파티를 기대할 나이도 아닌데 '그래도, 내 마음 쉬어갈 틈은 있겠지?'라는 미약한 기대는 있었나 보다. 생각보다 빠르게 그 기대가 빗나가는 신호를 읽었고, 서운한 감정은 폭발적으로 쌓여갔다. 말 끝마다 툭툭 감정이 실려나갔기 때문이다.


중지를 붙잡았다. 중지야 들어봐, 파라솔과 대화를 해봐도 마음을 알아주기는커녕, '그럼, 운동을 그만 두면 되잖아. 내가 아무것도 안 해야 집 안이 편안하지.'라는 얼토당토않는 말만 하더라니까. (글을 쓰면서도 핏대가 오른다.) 그런데 애지중지는 신경 쓰지 마. 엄마 속상한 감정은 엄마가 또 해결할 수 있으니까 너희들은 못 들은 걸로 해. 그러자 중지가 아주 차분한 말투로,


엄마,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마음 통'은 배꼽부터 가슴까지 있어요.

그 마음 통에는 좋은 감정도 쌓이고 나쁜 감정도 차곡차곡 쌓여요. 나쁜 감정이 자꾸 쌓이다 보면 배꼽부터 요기(명치)까지 쌓이는데, 이제 남은 곳이 얼마 없어서 좋은 감정이 들어오려면 좀 힘들어져요. 그러니까 나쁜 감정은 빨리 뱉어내야 돼요.

만약에 지금처럼 나쁜 감정을 내뿜으지 않고 쌓아두잖아요? 그러면 아주 기쁜 일이 있을 때 다른 사람들은 와~~ 하면서 환호성을 지르는데 나만 아.... 할 뿐 많이 기뻐할 수가 없어요. 그러면 얼마나 억울해요? 나쁜 감정때문에 좋은 일이 있어도 기뻐할 수 없다는 게?

그러니까. 마음 통에 나쁜 감정이 들어올 때는 바로바로 가루로 만들어서 훨훨 날려 보내야 해요. 그래야 좋은 감정을 통째로 느낄 수 있어요.

아빠한테 당당하게 말하세요.
내가 조금만 도와달라고 했는데, 문제를 더 크게 키워서 꼭 이렇게까지 해야겠냐고요. 나 힘들다고 말하는 게 잘못이냐고요. 막 따져요. 마음 약하게 먹으면 안돼요.


십 년 먹은 체증이 확 내려갔다. 모간은 중지에게 심리 상담을 받은 후, 아주 편안한 상태에 이르렀다. 파라솔의 사과나 후속 조치는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가슴까지 차올랐던 나쁜 감정을 믹서기에 곱게 갈아서 가을바람에 훨훨 날려 보냈기 때문일까?


갈수록, 애지중지에게 의지하게 된다.

함께 큰다고 생각했는데 이럴 때면 애지중지가 모간을 키우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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