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 없이 날아드는 너의 가르침에 고개 숙여 인사하며
사월의 초입, 여섯 살 어른 애지와 단 둘이 도서관에 다녀오던 길이다. 사월인데도 꽃샘추위가 매서웠다. 오들오들 떨고 있는 애지를 품으로 끌어당기며, 굳이 이런 날 도서관에 가는 청승스러움은 뭐람 하며 후회를 했다. 애지는 엄마의 타들어가는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연신 기분이 좋다. 껌딱지 동생을 떼놓고 엄마와 단 둘이 하는 데이트는 날씨, 종류, 목적지를 불문하고 최고다.
그래도 우리는 하나다.
집에 남겨둔 파라솔과 중지를 생각하며 상가 지하에 잠깐 들렀다. 따뜻한 탕수육을 포장해서 그 온기에 기대 집까지 걸어가 볼 생각이었다.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한 손에는 따뜻한 탕수육과 짜장면, 한 손에는 따뜻한 애지의 손이 있었다. 쉼 호흡을 크게 하고 출입문을 열었다. 겨울왕국 속 눈보라가 몰아치자 본능적으로 애지를 등 뒤로 숨겼다. 입안 가득 겨울바람이 차올랐다. 애지가 무사하다는 생각에 겨우 숨을 뱉자 찬기가 '헉'하고 빠져나왔다. 등 뒤에 있던 애지가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
작고 여려서 지켜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내 새끼 앞날에 나쁘고, 위험하고, 아픈 것, 이라면 티끌 하나도 용서할 수 없다는 심정이었다. 하지만 정작 모간을 지켜준 것은, 애지의 한 마디다. 피하려고만 한 모간에게, 바람을 정면으로 맞이할 용기를 준 여섯 살 어른 애지. 모간은 이 한 마디를 타고 애지의 넓고 깊은 품 속으로 한 없이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생각했다. 아이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무심히 했던 말과 행동들에 대해서.
그래, 우리 또 맞이해보자. 살면서 마주하게 될 그것이 설령 살을 에는 추위든, 상처든, 경험이든, 무엇이든 일단 맞이해보자. 그래 봤자, 결국 바람일 뿐이고, 그래 봤자, 결국 그 무엇일 뿐이다.
맞이한다는 것은 단순한 순응이 아니라, 두 팔 벌려 크게 품는다는 뜻 아닐까. 어른의 탈을 쓰고 숱하게 뱉었던 "버틴다, 견딘다, 이겨낸다"와 같은 단어는 지우려 한다. 대신, 삶의 곳곳에 "맞이해봐요"라는 문구를 대문짝만 하게 걸어두고 반겨봐야지. 작은 시선이 일러준 큰 깨우침 덕분에 두렵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