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 마라고 했지만, 남몰래 다 해본 이야기
보통 셋이 샤워하는데, 둘만 샤워하는 날은 유난히 화기애애하다. 애지는 모간과 단 둘이 샤워하면 끊임없이 콧노래를 부르고, 중지는 모간과 단 둘이 샤워하면 세상 모든 이야기를 쏟아낸다. 이 짧은 시간만큼은 엄마를 온전히 차지할 수 있다는 자신감 같다.
중지 : 엄마, 나한테 불만 있어요?
모간 : 불만 없는데 왜?
중지 : '불'만 없어요? ㅋㅋ 그럼 '물'만 있어요? ㅋㅋ (우린 별거 아닌 거에 별일처럼 크게 웃었다)
모간 : 엄마 빵 터졌다 ㅋㅋ 근데 어디서 들은 거야?
중지 : 밍꼬 발랄
모간 : ㅋㅋㅋ
중지 : 엄마, 이런 유머도 배우는데. 왜 밍꼬 발랄을 못 보게 해요?
모간 : (유해하지는 않지만 굳이 빨리 접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 못 보게 해도 다 봤잖아. ㅋㅋ
중지 : 네, 맞아요. ㅋㅋ
여름휴가다. 모간과 파라솔, 그리고 애지중지도 한없이 풀어지는 시간이다. 걱정도 잠시 풀어놓고 무아지경이 된다. 애지는 엄마 입에 연신 입을 맞추고 좋은 감정을 한껏 표현한다. 그저 좋다는 뜻이다. 맞벌이 부모 밑에서 크느라 제대로 된 방학 한 번 보내지 못했다. 방학 중에도 돌봄과 학원은 이어지기 때문이다. 다른 무엇을 하지 않아도, 우린 그 어느 때보다 최고의 휴가를 맞았다. 누워서 뒹굴뒹굴, 준비하지 않았던 이야기가 예고도 없이 흘러나온다.
애지 : (세상 순수) 엄마, 우리 게임할 줄 알아요.
모간 : 옹? 언제부터? 너희들 게임하는 건 본 적이 없는데~ 언제 배웠어?
중지 : 친구들이 알려줬어요. 구글에 가서 '무한의 계단'을 치면 게임도 할 수 있어요. 근데 광고가 많아요.
모간 : (하지 마라 해도 다 하는구먼) 그래? 엄마보다 낫구먼. 좋다! 어디 해보자~ 남들이 하는 건 다 해봐야지. 근데 제목이... 계속 계단만 오르는 건 아니지? ㅋㅋ
중지 : 계속 계단만 올라가요. 근데 재미있어요. ㅋㅋ
요즘 초등 저학년 여학생들이 좋아하는 게임이다. 종종 친구들로부터 새로운 세상을 배워오면 흠칫 놀란다. 엄마부터 해볼게~ 하며 시작했는데 몇 계단 오르지 못해 아웃이었다. 애지중지는 엄마의 어설픈 실력 앞에서 깔깔깔 넘어간다. 그럼, 더 멋지게 아웃돼 볼까?
일상 속에서 애지중지가 이런 고백을 했다면 모간은 필히 호랑이로 변했을 것이다. 게임을 왜 했냐부터, 광고를 잘못 누르면 이상한 게 깔려서 핸드폰이 다 털린다부터, 으르렁 거렸을 게 뻔하다. 하지만 휴가였다. 이성도 감성도 모두 파도에 맡긴 채, 흔들흔들 리듬을 타던 중이다. 애지중지는 자신도 모르게 이런 고백을 했고, 모간은 그 순수함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여유가 바닷길을 내주니, 마음이 절로 통했다.
모간 : 여보! 애지중지랑 게임 좀 해요. 주말에만 특별히 허락합니다!
파라솔 : 오---예!! 애지중지야. 어서 하자. 우리 무슨 게임할까?
소싯적에 게임 좀 해봤다는 파라솔은 신이 났다. 그런데 막상 파라솔은 FIFA나 스타크래프트, 카트라이더 외에 잘하는 게 없다. 이중에서도 애지중지 앞에서 으스댈 만한 실력은 카트라이더였다. 특히 파라솔이 가장 자신 있다는 '빌리지 손가락'은 멀미가 나는데도 계속 이어갔다. 애지중지는 파라솔의 현란한 솜씨에 놀라 연신 박수를 쳤다. 모간은 잔소리, 군소리를 모두 접고 고즈넉이 바라만 보았다.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장면이다.
다음 성장도 놀라듯 다가오겠지. '하지 마라 해도' 다 해봤듯이, 하지 마라 해놓고도 '남들 하는 건 다 해보도록' 응원하는 마음도 잊지 말아야겠다. 앞으로 키운 시간보다, 어쩌면 뒤로 키운 시간이 애지중지를 더 단단하게 키울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