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인문학] 두 번의 설거지

아이들 마음은 한 번 더 깨끗이 씻어줄 것

by 모간

# 두 번의 설거지


저녁 밥상을 차리고 나면 의외의 안도감이 몰려온다. 하루치의 의무감이 사명을 다했다는 신호와도 같다. 그래서 저녁밥은 한결 넉넉해지고, 반찬 외에도 자잘한 일상들이 골고루 차려진다. 이렇게 함께 차린 밥상을 맞이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밥알 사이로 재잘재잘 이야기를 뱉는다.


중지 : 학교에서 너무 속상했어요. 그런데 꾹 담고 있다가 엄마한테 이야기하니까 속이 시원해요.

모간 : 중지야, 잘했어. 가끔은 꾹 담고 와야 할 때도 있는 거야. 대신 엄마가 다 받아줄 테니까 저녁 밥상에서는 시원하게 다 뱉어도 된다. 대신, 맛있는 밥은 꿀꺽 삼키고~^^


(다음날 저녁밥상) 애지가 할 말 가득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한 술도 안 떴는데, 입안 가득 뭔가 불룩했다.


모간 : 친구들, 오늘 별일 없었어?

중지 : 네~

애지 : 엄마, 우리 밥 먹으면서 할 말 있는 사람은 해보는 게 어때요?

모간 : 콜! 오늘도 시원하게 뱉어보자. 그런데 잠깐만, 엄마가 빈 접시 하나만 꺼낼게. 이제부터는 이 빈 접시에 하루 종일 쌓였던 꼬질꼬질한 감정들은 다 뱉어내! 엄마가 퐁퐁 팍팍 풀어서 뽀득뽀득 설거지해줄게~

애지중지 : 네!!!


가슴 한 구석에 기어코 할 말을 남겨두는 애지가 그걸 뱉겠다고 선언했다. 빈 접시에 남자 친구들이 놀리며 욕 쓴 이야기, 단짝이라고 믿었던 친구가 서운한 말을 했던 이야기, 선생님이 자기의 진심을 들어주지 않았던 이야기, 애지중지가 서로에게 상처를 준 이야기 등이 후드득 쏟아졌다.


빈 접시 하나만 꺼냈을 뿐인데 애지중지는 앞다투어 마음 헹구기에 여념이 없다. 빈 접시가 가득 찼는데도 흘러넘치지 않았다. 오히려 비워지고 비워져서 다시 넓은 품을 내주었다. 꼬질꼬질하던 마음이 새하얗게 변했다.


그 후로, 모간은 매일 저녁 두 번의 설거지를 한다. 진짜 설거지는 다음날로 미뤄도 불편함이 없는데, 아이들 마음 설거지는 그날 꼭 해치우지 않으면 가슴에 가시가 돋친다.


어떤 날은 빈 접시 위에 주황색 탁구공 하나를 놓는다. 우리가 뱉어낸 꺼먼 속마음들의 실물쯤 되겠다. 눈으로 본 후, 시원하게 쓰레기통에 버려주면 애지중지는 깔깔깔 넘어간다. 마음 알아주는 일이 별건가, 종종 외면해서 쌓일 때도 있지만 굳어지기 전에 비워주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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