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인문학] 마음 읽어줘서, 고마워

작은 마음에, 크게 위로 받다

by 모간

모간 : 어? 아빠가 급성 치매 같다고? 왜? 어디가 어떻게 아픈데?

나희 씨 : 눈동자가 다 풀리고, 초점이 없다. 사위도 못 알아보고, 자기 전화번호도 아예 모른다.


서울 한복판에서 한참을 울었다. 온 가족이 코로나 검사를 하고 돌아오던 길이었다. 운전석에 앉아, 엉엉 소리 내 울었다. 애지중지가 보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고, 나는 나의 아빠만 생각하며 충실히 슬퍼했다. 한 영혼의 절망 앞에서 그 영혼이 낳은 산물인 나는 함께 절망할 자격이 있었다.


아직 신형 휴대폰도 사드리지 못했는데, 며칠마다 한 번씩 전화한다는 약속도 못 지켰는데, 맨날 엄마 편만 들고 모진 잔소리만 했는데, 무엇보다 지금은 아닌데!


모간 : 할아버지가 기억이 지워지신데, 엉엉. 이제 엄마도 기억 못 하면 어떻게 하지? 엉엉.

애지 : 엄마, 할아버지 기억이 지워지면 우리가 더 좋은 기억을 만들어 드리면 돼요. 계속 계속 새롭고 멋진 추억이랑 기억들을 만들어주면 돼요. 지워지면 또 만들어드리고, 지워지면 또 만들어드리고.

모간 : 엉엉. 그 칼 까?


겨우 마음을 추스르고, 다음날 9시 '음성' 확인 문자를 받자마자 시골로 내려갔다. 병명은 급성 치매가 아니라, 뇌졸중이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집중치료실은 가족도 면회가 불가했고 지정된 간병인이 도와줄 거라고 했다. 서울에서 한달음에 달려갔지만 일반 병동으로 옮기실 때까지 시골집에서 기다려야만 했다.


3주 연속으로 서울과 시골을 오고 간 어느 날, 젊고 건강하던 우리도 슬슬 지쳐갔다. 몸도 몸이지만, 큰 일과 함께 필수적으로 뒤따르는 가족 간 갈등과 불화는 어김없이 찾아왔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가족이 많으면 바람 잘 날 없다는 옛말은 진리다. 덕분에 부모님의 병환 앞에서 순수하게 슬퍼할 수 있다는 건, 큰 복이라는 생각도 '아주 조금' 하기도 했다.


애지 : 엄마, 제가 할아버지 쓰러지셨을 때 카톡으로 "할아버지, 어서 힘내셔서 일어나세요"라고 보냈어요. 그런데 시골 와서 보니 할아버지가 제 카톡을 지우고 있었어요.

모간 : 그래? 그런 카톡도 보냈었어? 엄마도 몰랐는데, 정말 감동이다. 고맙다요. 내 딸.

애지 : 네, 제 번호가 저장이 안 되어 있었어요. 모르는 사람이 보냈나 싶어서 지우고 있으셨나 봐요.

모간 : 그렇구나. 지금 할아버지가 아프셔서 기억이 가물가물 하셔.

애지 : 그래서 제가 조용히 입력해 드렸어요. "모간 딸, 애지"라고요!


애지도 다 안다. 할아버지에게 더 소중한 사람은 자신보다 엄마라는 것을. 할아버지의 기억은 흐려지지만 그 소중한 기억 안에 또렷이 엄마를 새겨드리고 싶었던 것이다.


내 딸, 모간

내 딸, 애지

이 귀한 사랑의 대물림!


작지만 큰 위로 덕분에,

우리는 잃어버린 기억을 하나씩 되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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