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사과하는 법을 배우는 중입니다
여덟 살 중지가 두 발 자전거를 배우기 시작했다. 둘째라 그런가, 애태우지 않아도 저만의 성장 시계는 째깍째깍 흘러갔다. 더딘 감은 있지만 서두를 필요는 없다는 확신도 있었다. 중지는 뭐든지 스스로 하겠다고 자청하고 그렇게 맞이한 기회는 온 마음을 다해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파라솔은 기분 좋게 보호장구를 착용시켜 주고, 중지가 비틀거릴 때마다 허리를 한껏 구부린 채 뒷 안장을 힘껏 잡아주었다. 그러면 중지를 태운 자전거는 비틀거림을 멈추고 앞으로 쭉쭉 나아갔다. 동화책이나 드라마에서 보던 다정한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흐뭇했다.
그러나 5분 후,
파라솔 : 중지야, 브레이크를 잡아. 브레이크를 안 잡으면 어떻게 하냐. 특히 코너를 돌 때는 속도를 줄여야지.
중지 : (주눅 든 표정) 네
파라솔 : 자전거를 배울 때는 속도를 내는 것보다 브레이크 잡는 법을 먼저 배워야 해. 앞으로 가는 것보다 멈춰서는 게 더더 중요하단 말이야. 제발 멈춰야 할 때는 멈춰. 아니면 다쳐.
중지 : (곧 눈물이 터질 것 같은 표정) 네
역시, 운전 연습은 시작만 아름답다. 자동차 운전이든, 자전거 운전이든 말이다. 누가 보면 남편이 아내에게 운전 연습을 시키는 줄 알겠다. 그 어떤 로맨틱한 장면도 '찰나 같은 한 순간'을 두고 하는 말이다. 사랑으로 맺어진 부부 사이든, 부녀관계든 운전 교습이 '길어지면' 로맨틱은 진흙탕 싸움으로 번진다. 아무리 옳은 말도, 바람직한 조언도, 감정을 빼곤 어려운 법이다. 중지는 그런 아빠의 잔소리와 교양을 브레이크 삼아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긴 시간 묵혔던 덕분인가, 중지는 생각보다 빠르고 쉽게 두 발 자전거를 뗐다. 자기가 마음먹고, 파라솔의 교양 두 어번 정도만 곁들이니 금세 두 발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었다. 덕분에 중지는 틈만 나면 자전거를 타러 가자고 졸랐다. 모간과 파라솔에게도 작은 여유가 생기니 나쁜 제안은 아니었다.
화창한 봄날 오후, 중지는 어제 자전거를 뗀 사람답지 않게 능숙한 솜씨로 자전거를 탔다. 애지중지는 넓디넓은 공원을 원 없이 누볐고, 모간과 파라솔은 '이런 날도 오는구나. 많이 컸다.' 하며 커피 한 잔을 나눠 마셨다.
그때, 애지가 황급히 달려왔다. 분명 중지와 함께 미니 족구장 뒤쪽으로 자전거를 타고 갔는데 자전거는 어디 두고 혼자 달려온 걸까.
애지 : 엄마, 큰일 났어요. 중지가 자전거를 타다가 어떤 할아버지와 부딪쳤어요. 그래서 지금 울고 있어요.
모간 : 뭐? 빨리 가보자.
모간은 애지의 손을 잡고 전속력으로 달렸다. 다행히 중지가 울고만 있을 뿐, 외상은 없어 보였다.
모간 : 중지야, 괜찮아? 천만다행이다. 다친데 없지?
중지 : 네 엄마. 흑흑.
모간 : 근데 왜 부딪친 거야?
중지 : 그게, 속도가 너무 빨라서 멈출 수가 없었어요.
모간 : 브레이크 안 잡았어? 아빠가 위험하거나 속도가 너무 빠르면 브레이크를 꼭 잡으라고 신신당부했잖아.
서럽게 울기만 하는 중지에게 더 이상 긴말은 필요 없었다. 중지가 괜찮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 번뜩 할아버지가 생각났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셨다. 속도가 빨랐을 테고, 연세가 많으셨다면 분명 다치셨을 것이다.
중지에게 할아버지 인상착의를 듣자마자, 중지 손을 잡고 전력질주를 했다. 중지가 모간의 손에 달랑달랑 매달린 채 끌려왔다. 목에서 피맛이 났다. 200미터쯤 달려가자, 다리 한쪽을 절룩거리시는 한 할아버지를 발견했다. 무작정 말을 걸었다.
모간 : 할아버지, 우리 애가 자전거를 타다가 부딪쳤다고 하는데 몸은 좀 어떠셔요?
할아버지 : 일 없소. 가보쇼.
모간 : 아니에요. 제가 병원에 모시고 갈게요. 정말 죄송합니다.
할아버지 : 됐슈. 가보래도. 애들이 자전거를 그렇게 막 타고. 쯧쯧.
할아버지는 어떤 말도 듣고 싶지 않다는 눈치셨다. 말투도, 표정도, 언짢은 표정으로 계속 내치셨다. 그런데 왼쪽 다리는 여전히 불편한 낌새였다. 모간은 할아버지 걸음에 맞춰 졸래졸래 따라가며 말을 이어갔다.
모간 : 어르신, 엄마인 제 불찰입니다. 진심으로 죄송해요. 정 그러시다면 연락처라도 알려주세요. 나중에 병원비라도 꼭 드리겠습니다.
할아버지 : 됐다니깐. 됐데두.
할아버지는 더 빠른 걸음으로 그 상황을 모면하려 하셨다. 붙잡을 방도가 없었다. 할아버지 뒷모습을 향해 우리는 수 차례 고개를 숙이며 죄송함을 전했다. 그렇게라도 해야 우리의 진심이 닿을 것 같았다.
할아버지를 떠나보내고, 모간은 중지의 손을 꼭 잡았다. 되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전속력을 다해 할아버지를 찾아 나섰던 이유에 대해서, 할아버지가 마다하셔도 기어코 불러 세워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그리고 진심을 다해 사과를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모간은 보여주고 싶었다. 행동으로 꼭 알려주고 싶었다. 백 마디 말보다, 중지의 손을 잡고 전력질주를 하며 느꼈던 그 피맛으로 알려주고 싶었다. 그래, 이 맛이야. 숨고 싶고, 피하고 싶은 순간이 찾아올 때면 잊지 말고 기억하자. 피맛을 목구멍으로 꿀꺽 삼키고, 앞으로 나아가는 거야. 그러면 다 해결된다. 다 수습된다.
예상치 못한 사고를 맞닥뜨렸을 때,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도망치지만 않으면 된다. 은근슬쩍 등 돌리지만 않으면 된다. 다만, 부단히 연습해야 한다. 무서워도, 위험해도, 두려워도, 타협하지 않고 나아가야 한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물러서지 말고 꼿꼿이 자신을 세워야 한다. 그렇게 연습이 쌓이다 보면, 불쑥 위기가 찾아오더라도 준비된 '내'가 '나'를 지켜줄 것이다.
애지 : 그런데 엄마, 사실은 아까 할아버지를 부딪쳤을 때 할아버지가 중지를 엄청 혼냈어요.
모간 : 그래? 그래서 중지가 그토록 서럽게 울었나?
애지 : 그리고 주먹으로 중지 머리를 톡~ 하고 한 대 때리셨어요.
모간 : 그래? ㅋㅋ 그래서 할아버지께서 엄마가 그만큼 사과드리고, 병원비 드린다고 해도 그냥 가셨나? 이미 중지를 혼내셔서 더 이상의 사과는 필요 없다는 뜻? ㅋㅋ 암튼 어디 편찮은 데는 없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