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싱녀는 연애하면 안 되나요?

ep12 지옥을 탈출한 여자

by 윤은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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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거래한 사람이랑 연애를 한다고? 제대로 알아봤어?”


세상에 내가 진짜 행복하길 바라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혈육으로 연결된 가족을 제외하고. 친한 친구라고 분류되는 사람들도. 과연 나의 진짜 행복을 응원할까. 돌싱녀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 이후. 난 왠지 모르게 못 미더운 사람이 됐다.


33년 동안 꽤 열심히 살아왔는데. 단지 이혼했다는 이유만으로 뭔가 모자란 사람 취급을 받았다. 요즘에 이혼율도 높고. 아기가 없으면 흠도 아니라고 쉽게 말하면서도. 약간 떨떠름하고 불신의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게 느껴져. 서글펐다.


이혼한 지 2년 정도가 되었을 때. 새롭게 연애한다고 말하자. 주변 사람들 반응은 두 가지로 나뉘었다. 가정폭력 트라우마로 평생 혼자 살 수 없으니 잘했다는 반응과. 괜히 또 이상한 사람 만나서 고생하는 거 아니냐는. 후자의 반응이 더 많았다.


같이 해외여행을 갈 정도로 친한 친구인 왕현지에게. 연애 소식을 가장 먼저 알리니. 갑자기 떨떠름한 표정을 짓더니. 냉철한 분석가처럼 내게 말했다. 제대로 알아본 것 맞냐고. 순간 할 말을 잃었다.


“한 달 정도 연락하면서 서로에 대해 알아봤고 궁합도 봤는데 좋다고 했어.”


어색한 분위기를 깨려고 일부러 더 밝게 대답했다. 하지만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현지의 시선을 변함 없었다. 서도준씨와의 만남이 꽤 운명적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그동안의 서사를 하나하나 설명해줬는데 듣는 둥 마는 둥 관심이 없어 보였다.


어색한 침묵이 흘렀을까. 그녀는 또 다른 질문을 했다. 표정이 싸늘했다.


“너 이혼한 것도 알아? 어떻게 이혼했는지도 말해줬어?”


날카로운 말투로 이혼 사실을 얘기했냐고 물었다. 뭔가 이 질문이. “가정폭력으로 이혼한 것을 다 아는데도 네가 좋대?”라고 느껴졌다. 약간 당황스러웠다. 설마 내가 이혼한 사실을 숨기고 연애를 시작했다고 의심한 걸까.


“응... 그동안 있었던 일 다 말했어. 트라우마 때문에 정신과 상담받은 것까지도.”


뭔가 마음이 착잡해졌다. 이런 아픔을 가진 사람은 다시 사랑하면 안 되는 걸까. 이미 망한 인생이니까. 혼자 사는 게 자연스럽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저 운이 안 좋았고. 교통사고 같은 일이라고 스스로 합리화했는데. 가까운 사람에게 이런 말을 들으니 슬퍼졌다.


“네가 이혼한 거 알고 만만하게 봐서 접근한 거 아니야?”


현지는 내가 좋은 사람과 연애한다는 것 자체가. 현실성이 없다고 판단했는지. 계속 추가적인 질문을 했다. 어떤 답을 해야 현지를 납득할 수 있을까. 돌싱녀가 연애한다는 것이. 누군가를 설득해야 하는 일일까. 현지를 나를 걱정하는 걸까. 아니면 나를 무시하는 걸까.


“사람 자체로 봐서는 그거는 아닌 것 같아.”


질문과 대답이 반복됐다. 면접을 보는 것도 아닌데. 팽팽한 긴장감이 맴도는 기분이 들었다. 정말 축하하진 않아도 꽤 호의적인 반응일 줄 알았는데. 이렇게 날 선 느낌으로 반응할지는 몰랐다. 그리고 뭔가 나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라지 않는다는 게. 느껴졌다.


우리의 분위기와는 상관없이 낭만적인 클래식이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외관적으로는 따뜻한 분위기의 카페도 불편하게 느껴졌다. 이 자리를 얼른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 마음과는 달리. 현지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내가 너무 예민하게 반응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단지 네가 또 남자 때문에 안 좋은 일 겪을까 봐 걱정되어서... 그러는 거니까 오해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걱정이라는 말에 말문이 턱 막혔다. 단지 연애를 시작한다고 말을 했을 뿐인데. 이렇게 무거운 분위기로 대화해야 한다는 게 슬펐다. 지금 당장 이 자리를 벗어날 수 없으니 화제를 돌리고 싶었다.


“현지야, 너 저번에 썸 탄다는 남자는 어떻게 됐어?”


차라리 듣는 쪽을 택했다. 그녀의 근황에 대해 물었다. 저번에 꽤 괜찮은 남자와 썸탄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걸 기억이 나서. 바로 질문했다. 하지만 현지의 표정은 떨떠름했다.


“전남친도 계속 연락와서... 썸남이랑 전남친 중에 고민하는 중이야. 조건만 보면 전남친이 더 낫거든.”


맞춤형 질문을 던지자 분위기가 풀렸다. 현지는 제대로 된 연애를 안 한 지 3년이 넘었다. 꽤 냉철한 기준을 갖고 있는 그녀는. 많은 남자의 대시를 받았지만 그녀의 기준에 충족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래도 인성이 괜찮고 너랑 마음이 잘 맞는 사람을 선택하는 게 좋지 않을까?”


나로서는 할 수 있는 최선의 대답을 했다. 이혼을 하면서 난 확실하게 느꼈다. 남자친구든 배우자든 선택하는 기준은 무조건 ‘인성’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내 마음이 편안할 수 있고 서로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그런 관계라면 더할 나위 없이 최고라고.


“빛나야, 우리가 나이가 적은 것도 아닌데 조건을 어떻게 안 따지겠니. 난 아직 얼굴, 재력을 포기 못하겠어. 괜찮은 사람 없으면 혼자 살면 되지. 너도 잘 생각해 봐.”


그녀의 단호한 대답에 할 말을 잃었다. 현지는 기준이 꽤 명확했고. 굳이 결혼을 해야 하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사람마다 추구하는 삶의 방향은 다르고. 다행히 지금은 개개인의 선택을 응원해 주니까.


“그치. 결혼을 하든 안 하든 스스로가 행복하면 되는 거지.”


현지의 말에 동의를 했다. 결혼해서 죽음의 위기까지 겪어봤기 때문에. 나이 때문에 쫓기듯이 결혼하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알아서.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의 공간에는 말소리가 사라지고. 내용을 알 수 없는 팝송만 울려 퍼졌다. 현지는 내게 또 질문했다.


“그럼 그 오빠랑 잘 맞으면 또 결혼할 거야?”


이번에도 날카로운 느낌의 질문이었다. 이번엔 또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 얘기를 꺼낸 걸까. 퍼즐을 맞추듯이 혼자 생각했다. 무슨 대답을 원하는 걸까.


“아직은 잘 모르겠는데 일단 잘 사귀어 보려고.”


내 기준으로 생각했을 때 가장 중립적이고 무난한 대답을 했다. 하지만 역시나 예상 밖의 대답이 나왔다.


“난 결혼 한 번도 못했는데 넌 두 번 할 수도 있겠네.”


순간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우린 본능적으로 느꼈다. 꽤 견고하다고 생각했던 이 관계가. 한순간에 무너졌다는 걸. 현지와 마지막으로 인사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날. 묘하게 찝찝한 기분에 밤새 잠을 설쳤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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