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해도 잘 삽니다
당신의 걱정은 고이 접어 하늘 높이 날려주시길
나는 이혼했다. 그것도 9년 전에.
결혼 결심보다 이혼 결심이 더 빨랐다.
그도 그럴 것이 죽도록 사랑해서 결혼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임신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 결혼을 결심했다.
난 엄마가 되고 싶었다.
내게 찾아온 소중한 생명을 낳아 기르고 싶었다.
나에게 있어 결혼이란 아이를 낳기 위해 주어지는 덤이었으므로.
가끔 이런 얘길 하면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뜨악하는 주변의 반응을 마주하게 된다.
흔하지 않겠지만, 그럴 수 도 있다.
어떤 사람과 결혼해야 하는지, 결혼이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몰랐다.
그저 엄마에게 들었던 말이라곤 "아무 남자나 함부로 만나지 마라"가 전부였다.
'아무 남자'는 대부분의 남자들이었고 '함부로'는 순결을 잃지 말라는 것이었다.
어떤 남자를 만나야 하는지도 같이 알려줬어야 맞겠지만 물어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친구들과도 이런 이야기는 깊이 나눠본 적이 없어서 무지하고 순수했다.
어쩌다 보니 초등학교 6년을 제외하고는 여중에 여고, 전공생의 9할 이상이 여성인 특이학과를 전공한 것도 한몫했다.
아이는 부모를 선택하는가?
아니다.
부모는 아이를 선택하는가?
여러 가지 이유로 그런 사람들이 존재한다.
나는 피치 못할 이유로 그전에 아이를 포기한 적이 있는 사연 있는 여자였다.
그런 나에게 찾아온 소중한 그 아이를 지키지 못할 이유가 내겐 없었다.
아이를 낳는 게 그 무엇보다 중요했다.
모성애가 뛰어나서가 아니라, 살고 싶어서.
아이를 포기했을 때 그때 나는 진심으로 죽고 싶었다.
죽었어야 한다고 후회했을 때 이미 아이는 없었고, 나는 죽기 위해 노력했다.
이율배반적인 삶의 의지로 죽지 못해 살아남았고, 그러던 중 아이를 만난 것이었다.
아이는 꼭 나를 살리기 위해 찾아온 천사 같았다.
이렇게 부족하고 못난 내게 찾아와 준 아이를 반드시 시키고 싶었다.
하지만 나의 결혼생활은 짧고도 불행했다.
그는 결혼에 적합하지 않은 성향의 소유자였고, 나는 그 꼴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는 집안의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돈벌이"에 국한시키는 매우 가부장적인 사람이었다.
돈벌이는 동일한 직장 내에서 나도 하고 있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육아와 살림 그 외 부수적인 것들은 모두 내 몫이었다.
그와의 결혼생활은 심약한 나의 스트레스만 가중시킬 뿐이었다.
이십 대 후반에 결혼했고, 삼십 대 초반에 이혼했다.
이혼은 정서적으로 나를 안정적이고 풍요롭게 만들었다.
정서적 안정은 아이를 온전히 사랑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있는 힘껏 사랑해 주었다.
그 아이는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었고, 전교 회장이 되었다.
학원을 보내지 않아도 알아서 공부하고 잘 논다.
나에게 과분한 게 아닌가 싶을 만큼 잘 자라는 중이다.
게다가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고 너무나도 사랑해 준다.
그리하여 나는 As good as it gets.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행복의 척도가 결혼생활을 잘하는 것과 직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하루하루 살아가며 증명하고 깨닫는다.
무례하게 선을 넘는 그대여, 나를 걱정하기 전에 자기 자신 먼저 돌아보라.
당신의 결혼행활이 부디 행복으로 가득하길.
이 세상 모든 이혼남녀여, 행복하자.
그대들의 용기를 온 마음으로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