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고 싶은 날, 위로가 되어줄 소리 내어 울기
자기 연민이 눈물을 부른다
그런 날이 있다.
특별한 이유 없이 마음이 아프고 축 처지는 날이.
평소 타인에게 지지와 위로를 건네는 데 익숙한 사람도 자기 자신을 위로하는 것은 익숙하지 않다.
친구에게는 잘도 쏟아져 나오는 위로의 말들이 정작 나에게는 한 마디도, 잘 될 거라는 뻔한 말도 나오지 않는다.
공지영 작가의 책에서 읽었던 '자기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 거울을 보고 나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건네보라'던 구절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거울 앞에 선 내 얼굴을 보니 연민의 감정보다 자기혐오가 먼저 덮쳐왔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아니 싫어하는 인간이 바로 나라니...
거울 앞에 서서 눈물만 뚝뚝 흘리다가 불현듯 소리 없이 우는 내가 불쌍해서 엉엉 울고 나니 답답했던 마음이 후련했다.
그때부터 일부러 소리 내어 우는 연습을 했다.
나는... 소리 내어 울지 못하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눈물이 많던 나는 툭하면 울곤 했다.
그 시절 나에겐 울 일이 참 많았다.
드라마도 영화도 다큐멘터리도 그저 다 내 일 같았다.
주인공이 죽을병에 걸리면 아픈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고, 죽고 나면 주변인들의 마음이 헤아려져서 같이 울었다.
그리고 울 때마다 엄마한테 혼났다.
그게 울 일이냐고 다그쳤고, 다 울고 나면 울보라고 놀렸다.
그 모든 일은 내 마음에 보이지 않는 상처가 되었다.
나는 더 이상 소리 내지 않고 남몰래 울기 시작했다.
아무리 아프고 힘든 일이 있어도 가족에게 터놓지 않았다.
나의 아픔을 공감하지 못했고 눈물을 이해하지 않았으므로.
숨죽인 눈물은 서러움을 증폭시킨다.
긴 세월 산처럼 쌓여있던 서러움을 쏟아내며 엉엉 울었다.
가슴이 토해내는 한없이 애끓는 울음을 내가 들어줬다.
이제 나는 소리 내어 우는 법을 안다.
더 적확하게 표현하자면, 제대로 울 줄 알게 되었다.
울고 싶으면 울어도 된다.
아니, 울어야 한다.
울어야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