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잦은 비교를 당한 사람은 자존감이 낮다.
그 비교대상이 가족이라면 마음의 상처가 더욱 크다.
나에겐 한 살 터울의 여동생이 있다.
그렇다 보니 어려서부터 비교는 벗어날 수 없는 족쇄였다.
외모로 시작해서 성적표에 이르기까지 비교는 끝이 없었고 그때마다 하나뿐인 혈육은 피 튀기는 전쟁의 적군이 되었다.
우애를 다지며 서로를 사랑하기 전에 살아남기 위해 상대보다 잘해야만 한다는 집념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언니는 싸울 때 불리하다.
동생이 '네가 언니냐?'로 공격하는 순간 억울함과 분함으로 머릿속이 하얘지므로 동생이 이기게 되니까.
패배한 언니에겐 동생 하나 제대로 휘어잡지 못한다며 부모님의 타박이 이어진다.
승리한 동생 역시 엄마아빠가 없으면 언니가 부모님 대신이라는 핀잔을 피할 수 없다.
그렇게 어린 시절 사이좋은 추억을 쌓을 새도 없이 어느새 어른이 된다.
겉으로 사이좋은 자매처럼 보이겠지만, 다만 그뿐이다.
이혼할 때 남조차 함부로 하지 않는 모진 말로 마음 깊이 새겨진 상처는 '저 사람이 맡은 역할 = 내 여동생'이라는 관계를 재정립하는 방식으로 견뎌낼 수 있었다.
어린 나이에 시작한 사회생활은 '충조비평' 세례식이다.
먼저 구한 적이 없는, 전혀 도움 되지 않는 <충고, 조언, 비교, 평가>을 수시로 들이댄다.
"너 잘 되라고 하는 소리야"
본인 맘대로 자기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게 어째서 축복의 언어라도 선물하듯 포장하시는지.
"나나 되니까 이런 얘기해주지, 다른 사람은 안 해준다 너"
저기, 다른 사람은 그런 얘기가 굉장히 무례하다는 걸 아니까 안 하죠.
"이혼했으면 보란 듯이 잘 살아야지"
제가 살고 싶어서 이혼한 거지, 잘 사는 걸 보여주려고 이혼한 게 아닌데요.
"너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 욕해"
다른 사람 함부로 평가하는 사람치고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타인을 다 평가해"
평가의 근거와 기준은 도덕적 흠결 없이 다각적으로 완벽한가요?
타인을 향한 충조비평은 내 입밖에 내지 않는다.
내가 들이대는 잣대가 나를 향해 부메랑처럼 돌아올 것을 알기 때문이다.
위로의 말도 신중하게 고르게 된다.
섣부른 위로는 도리어 상처가 된다는 것을 경험했으므로.
모든 사람은 자기 자신을 위한 선택을 내릴 권리가 있다.
선택으로 인한 책임 역시 그에게 귀속되므로.
정말 누군가 잘 되길 바란다면, 말을 아껴주길.
잘한다 잘못한다 평가하지 말자.
Good for you.
너에게 잘 되었다는 말을 건네는 건 어떨까.
누군가 나에게 같은 이야기를 해준다면 들었을 때 가장 기분이 괜찮을 수 있는 칭찬의 방법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