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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지기 Apr 25. 2023

가족사진을 찍었습니다

당신의 1순위는 무엇인가요?

올 해는 아버지의 첫 번째 칠순이다.

6월부터 만 나이로 바뀌면 내년에도 칠순이시기 때문이다.

만 나이 얘기가 나오자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칠순이 두 번이야. 올해는 울나이로 칠순이고 내년엔 만 나이로 칠순이니까."

"그럼 어느 칠순을 챙길까요? 올해? 내년?"

"뭔 소리야, 두 번 다 챙겨야지 왜 하나만 챙겨!"

여느 때처럼 농담인 줄 알았으나 웃음기 없이 진지하셨다.

아버지의 칠순 두 번은 예상치 못했는데....


칠순 기념 가족사진 촬영을 제안했다.

이렇다 할 가족사진을 찍은 지 오래된 것도 사실이지만, 미루지 말고 가족사진을 찍어야겠다고 마음먹었던 계기가 있다.

작년 주변 지인의 아버지께서 많이 돌아가셨다.

가장 젊은 분은 50대 중반, 출근하시던 후배의 교장선생님 아버지셨다.

요양병원에 계시던 동기의 아버지, 쓰러지셔서 응급실에 가셨다가 중환자실에서 유명을 달리하신 선배의 아버지, 밭에 일하러 가셨다가 갑자기 돌아가신 후배의 아버지.

장례식장에서 만난 선배 가족사진을 찍으라고 당부했다.

중환자실에서 나오시면 찍으려던 가족사진을 못 찍은 게 가장 후회된다며.

또한 건강을 위해 규칙적 운동을 하시며 온갖 영양제를 챙겨 드시던 아버지께서 약 3년 전 어느 여름날, 갑자기 쓰러지셔서 응급실에 다녀온 사건으로 언제 나에게도 닥칠 수 있는 일이라는 불안감이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았다.


첫 번째 가족사진은 유치원 졸업 무렵이었다.

당시 유치원 졸업 기념으로 졸업앨범에 들어갈 가족사진을 유치원 지정 사진관에서 찍었다.

여동생을 데리고 촬영하러 간 사진관에서 졸업앨범용 가족사진을 자신은 같이 촬영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여동생이 자기도 같이 찍겠다며 땅바닥에 구르며 울고 불고 난리가 났다.

기회를 놓칠 리 없는 사진관 주인은 가족사진 촬영을 저렴하게 해 주겠다고 부모님을 꼬드겼다.

아군을 얻은 동생은 더욱 목소리 높여 울었고 목표를 달성하자 언제 울었냐는 듯 얌전해졌다.

그렇게 동생의 억지 춘향으로 첫 가족사진을 찍었다.  


두 번째 가족사진은 2005년, 나의 입사 기념이었다.

군인 아버지와 소방관 오빠와 경찰 동기가 각자의 정복을 입고 촬영한 가족사진을 보고 자극받은 나는 우리 가족사진도 아버지와 내가 정복을 입고 찍자고 주장했다.

정복이 만들어 낸 특유의 딱딱한 분위기 때문인지 나의 바람과는 달리 어색한 가족사진이 찍혔고 두 번째 가족사진 역시 장롱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니까 이번이 세 번째다.

비록 지금 자신의 모습이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오늘이 남은 인생 중 가장 젊은 날이므로 미루지 말고 봄이 가기 전에 촬영하러 가자며 몰아붙였다.

평일 오후 예약을 잡고 스튜디오에 가서 촬영을 했다.

다른 건 다 수정할 수 있지만 표정만은 수정할 수 없으니 활짝 웃으라며 '하와이'를 외치며 열정적으로 촬영해 준 사진작가님 덕에 편안하게 촬영할 수 있었다.

당일 저녁 원본 파일을 받아본 우리 가족은 모두 만족다.

딸아이가 쓴 손글씨로 제작한 가족티를 맞춰 입고 닮은 모습으로 활짝 웃고 있는 우리.

가족이라는 것이 이런 거구나 싶은 뭉클한 감정이 올라왔다.


미루지 않고 찍길 정말 잘했다.

내 마음에 드는 모습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찍었다면 지금 이런 감정을 느끼지 못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문득 Anne Marie의 Perfect to me 가 떠올랐다.


I'm not a supermodel from the magazine

나는 잡지 속 슈퍼모델이 아니야

I'm okay with not being perfect

나는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Cause that's perfect to me

왜냐면 나한텐 그게 완벽하니까


내가 완벽하지 않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게 가장 중요했구나.

이제야 나를 조금은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를 나로서 받아들이고 인정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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