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답지 못해서 힘든 사람들에게,
시도 때도 없이 폰을 보던 때가 있었다. 분명 누군가의 연락을 기다리던 때였다. 까만 액정 사이로 한줄기 빛이 나올 때 혹시나 기다리던 사람에게서 연락이 왔을까 잽싸게 폰을 열어보던 때가 있었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메시지를 확인한다. 기다리던 사람일까. 흔한 단체 메시지일까. 메시지를 확인하기 전부터 괜히 들떠있다. 그리고 메시지를 확인하는 순간 희비가 엇갈린다.
'이번엔 나도 좀 튕겨야지! 바로 답하지 않을 거야!'라는 다짐은 1초 만에 무장해제된다. 내 머릿속 다짐과 다르게 이미 내 손은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심지어 질문에 대한 답이 너무 주야장천이다. 그렇게 모든 과정이 끝난 후 후회한다.
'아... 조금만 늦게 보낼걸.'
'아... 조금만 담백하게 보낼걸.'
그리고 사라지지 않는 '1'을 보면 마음이 타들어간다. 왜 바로 읽지 않는 거야!
쿨해지고 싶었다. 생각해보면 20대의 연애는 쿨할 수 없었다. 온몸에서 사랑 호르몬이 미친 듯이 내뿜어지는 때다. 이성적 판단보다 호르몬의 지배가 더 강력하게 지배되는 시절이다. 연애와 결혼에 대한 환상이 증폭되는 시절이다. 내가 하는 연애는, 내가 하는 결혼은 완벽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되는 시기다. 그렇기 때문에 순간의 열정과 순간의 진심이 모이다 보면 쿨해질 수 없다.
직접적인 나의 몇 번의 실연과 주변의 실연 케이스들이 쌓이다 보면 마주하기 싫은 현실을 바라보게 된다. 두 사람이 사랑하는 과정은 실제로 아름답지만은 않다. 좋은 때가 있으면 힘든 때도 있다. 그 일련의 과정들을 함께 헤쳐나가면서 두 사람이 단단해지게 된다. 그 과정을 넘지 못하면 이별의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좋을 땐 느낄 수 없는 '쿨함'에 대한 마음가짐. 위기의 순간에 '쿨해지고 싶은' 심리는 나를 보호하고 싶은 마음이다. 이미 둘의 관계가 힘들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더 이상 나아질 것이 없을 때 결국 나는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쿨한 모드로 변경한다. 조금이라도 덜 상처 받기 위해서.
본래 쿨하지 못한 사람은 쿨한 척 자기 보호를 하면서 동시에 속이 타들어간다.
쿨하고 싶지 않다, 쿨하고 싶지 않다, 계속 되뇌지만 결국 쿨한 척 넘어간다. 그렇게 스스로 어른 같다면서 위로한다. 하지만 진짜 어른은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준다. 당장의 쿨함은 당장의 상황을 견뎌낼 수 있다. 하지만 미련만 남게 된다. '쿨함'도 관계의 성장통이었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성장통.
쿨한 척하기를 거부한다. 진짜 쿨해질 수 있을 때까지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기로 한다. 슬프면 슬프다고, 서운하면 서운하다고 그렇게 솔직하게 말해본다. 그래도 안 될 관계라면 편하게 보내주기로 한다. 그래야 진짜 쿨해질 수 있다.
원래 따뜻한 사람들은 이별조차 따뜻하게 마주한다. 자연스럽게, 자연스러울수록 가장 나답다. 이별의 정석은 없다. 사랑의 정석도 없듯이.
나다운 이별, 나다운 사랑, 나다운 관계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