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

퇴직 후 만남을 조심하라

by 써니톰

대기업 25년 퇴직 후 시골로 내려가 살았다. 농사도 지으면서 닥치는 대로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서울을 떠난 지 18년, 서울살이가 궁금하고 다시 살아보고 싶어졌다. 학창 시절의 친구들, 선후배, 전 직장동료들의 소식도 궁금했다. 과거 신세 진 사람들에게 따뜻한 밥과 술 한잔 대접하면서 과거 이야기로 돌아가면 내 젊음이 재생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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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느닷없이 고등학교 때 친하게 지내던 K동기한테 전화가 왔다. 그가 공무원일 때 가끔 동기 모임에서도 만났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소식이 두절됐다. 몸이 아파서 요양한다고만 소식이 들려왔다. 만나고 싶었지만 만날 수 없다고 했다. 가끔 몸 상태가 호전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내가 볼 때 그 친구는 공부가 문제였다. 전교 1등 하던 그 친구는 공붓벌레였다. 그것을 놓치지 않고 유지해야 장학금도 받아 가정에 도움이 되었다. 공부에 미친 사람처럼 공부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학교시절에는 지덕체의 다양한 학습과 경험이 필요했다.


다른 친구한테 내 전화번호를 물어본 모양이다. 전화를 받고 나니 얼떨떨했다. 그동안 요양하느라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하니 소식이 더 궁금했다. 난 다른 저녁 약속을 취소하고 다시 통화되어 저녁식사라도 대접하면서 그 고생을 위로하고자 했다.


지하철 출입구에서 약속시간에 만났다. 근처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손이 떨리고 정신불안 증세가 남아 있는 것 같다. 술을 한잔 사달라고 한다. 술을 먹으면 안 될 것 같다고 하니 오랜만에 나를 만나니 서로 반가움에 그 기쁨을 누리고 싶다 한다. 거절하기 어려웠다. 그래 까짓 껏 얼마 산다고.


하도 강요하니 소주 한 병 가지고 둘이 나누어 반 병씩

먹었다. 그리고 보냈어야 했다. 평소 가고 싶은 곳이 있다고 했다. 근처 일식집에서 2차로 맥주 5잔을 둘이서 마셨다. 시간이 갈수록 손은 더 떨고 있었고 불안증세가 나타났다. 끝없는 옛날이야기로 재미있게 떠들고 놀다가 일어났다.


집에 가려고 하니 그 친구 몸이 흔들린다. 불안하다. 사는 아파트 정문까지 보내주겠다고 하니 혼자 갈 수 있다고 한다. 그리 멀지 않은 거리지만 몰래 숨어서 가는 걸 보니 자꾸 길가는 다른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것 같았다. 결국 내가 나서 서너 번 옥신각신 하다가 혼자 간다고 하여 보내주고 말았다. 그놈의 고집과 자존심은 아직 살아 있었다. 나는 혼자서 집으로 왔다.


집에 와서 오늘 만남을 후회했다. 보고 싶어서,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궁금해서,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고생했다 고 위로하고 싶어 만났는데 아니 만난 것만 못했다. 밤새 회한과 무사귀가를 기도하며 잠을 쉬이 들지 못했다.


다음날 아침에 그 친구번호로 전화가 왔다. 안도로 반가웠다. 받아보니 친구부인이다.

결론은 앞으로 자기 남편 만나지 말라는 것이다. 20여 년을 정신병원에 왔다 갔다 했다는 것이다. 이제 차도가 좀 좋아져 집에 와서 도서관에 다니며 좋아하는 책을 보며 점차 회복 중이라 했다. 부탁까지 한다.

알겠다. 미안하다고 했다. 다시는 앞으로 만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이제 많은 시간이 흐른 다음 보고 싶다고 함부로 만나면 안 되는 사람이 많아진다. 만나다 보면 타인들의 시선에 신경이 쓰이고 상대방이 어떤 상황인지도 몰라 조심스럽다. 주변의 안 좋은 경제적인 문제, 가정 문제 등을 듣고 나면 내 마음의 상처가 오래간다.


점차 인간관계 폭이 좁아지면서 나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이 깊어간다.


나이 들수록 평소에 만나지 않던 과거의 인연은 이제 점차 흘러 보내야 한다. 잘 살고 있으면 되는 것이다. 새벽마다 기도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내가 지금 이 자리에 할 수 있는 것은 무릎 꿇고 두 손을 잡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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