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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혼에 대한 입장

확실히 처자는 인간성을 훈련시켜준다-F.Bacon

어느 순간 부터 비혼이라는 단어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이제 결혼하라는 압박속에서 "비혼주의"라는 대답은 상대의 허를 찌르는 묘한 통쾌함 마저준다.


먼저 결혼이란 과정을 거치고 있는 선행자로써 이야기하자면 결혼은 한마디로 비효율의 끝이다.

결혼 후 가장 어려웠던 것은 혼자 잘하게 된걸 (30여년간의 숙달로) 둘이 나눠서 해야 한다는 거였다.

이게 얼마나 비효율인지. 부디 느껴보시라.

누군가와 같이 산다는 것. 그리고 누군가의 배우자가 된다는 건 사랑이라는 달콤함이 책임이라는 무거움으로 귀결되는 순간이다.

누군가의 보호자가 된다는 것은 결코 가볍지 않다.


얼마전 주관하는 모임에서  들은 이야기

20여년전 고칠 수없는 병에 걸린 아내를 돌보던 남편에게 부인이 말했다.

"당신, 아직 젊으니 나에게 매여있지 말고 새롭게 시작해요 새출발하기에 늦지 않았어요"  

남편이 말했다.

"당신을 향한 사랑이 언젠가 끝이 난다고 해도 남편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고 살거야"

그렇게 부부는 아직도 서로에게 책임을 다하면서 살고 있다고 한다.


책임, 남편이라는 책임.

아내라는 책임과 남편이라는 책임

책임의 무게를 지겠다는 사람은 얼마나 단단한가.

인내는 언제나 녹녹치않다. 책임은 시간과 감정의 인내를 감내해야 이룰 수 있는 위대한 도전이다.

여러 글에서 연애에도 책임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었지만 그 연애에 결혼이라는 목적지가 없다면 쾌락의 파도에 몸을 맡기는 것과 다르지 않다.

 

비효율적라는 말은 어떤 태도의 삶을 살고 있느냐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의 답인 것 같다.

효율성이라는 단어가 지극히 성과추구적이며 수치계량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결혼은 끝까지 비효율일 수 있다. 나의 커리어나, 에너지의 쓰임이나, 누군가를 부양해야한다는 중압감의 입장에서 본다면 말이다. 하지만 인생을 효율과 비효율로 나누는 것은 스스로를 소모시키는 접근이다.

어쩌면 수치로 비효율이지만 가치가 충분하다면 비효율을 감당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럼 다시 먼저 결혼한 선행자로써 결혼을 묻는 다면,

결혼초에 느꼈던 것처럼 여전히 혼자라면 더 잘할 것 같은 것들이 존재하지만 수치화 할 수 없지만 나를 완성해가는 분명한 성장의 포인트들이 있다.


책임은 확실히 무겁다. 관계에서 책임이 없다면 관계는 길을 잃고 표류하게 된다.

그리고 관계를 지탱하고 있던 감정마저도 파도에 무너지는 모래성처럼 무너진다.

결국 감정의 모체인 자신을 잃는다. 감정에도 책임지는 태도가 결국 나를 세우는 길이다.

태도는 습관이다. 결국 몸에 배이게 될때까지의 필연적인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불같이 뜨겁던 사랑의 종식은 결국 책임질 수 있느냐 였다.

뜨겁게 사랑한들 책임질 수 없다면 그저 욕심인건 아닌지 생각해보자


사랑하는 연인에게 물어보라. 결혼에 대해서 말이다.

지금 당장이 아니더라도 결혼에 대한 무게를 진지하게 고민해 볼 수 있는 상대이길


부부의 애정은 인류를 낳는다. 친구의 애정은 그것을 완성한다. 그러나 방종과 사랑은 그것을 부패케하고 타락시킨다. -베이컨의 수상록 중 연애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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