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사람을 위해 우울증을 공부합니다.
수술 후, 극심한 우울감을 난생처음으로 겪으며 나는 어디에도 의지할 곳이 없었다.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나 스스로를 이해하고 치유하기 위해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우울증과 관련된 다양한 자료를 찾아 공부하는 것이었다.
공부하는 중에, 나는 여태껏 더 나은 오늘과 내일을 위해 늘 공부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그것이 나의 장점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의 우울감은 호르몬 수치와 수술 후 건강 악화, 그리고 그 스트레스로 섬유근육통이 재발해서 온 것임을 인식하고 약물 치료와 조금 이르게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하지만, 나에겐 통증에 앞서 우울감을 없애는 것이 더 급선무였다. 나는 수술 후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아 여러 가지로 어려운 지경에 있는 환자였고, 그렇다한들 곁에서 지켜봐 주고 돌봐줄 보호자는 없었다. 스무 살 딸이 갑자기 보호자가 되기엔 아직 어렸다.
나는 ‘살기 위해’ 운전해서 3시간 거리인 엄마집으로 무리해서 운전을 했다. 일주일을 엄마와 언니 그리고 강아지와 시간을 보냈다. 특별히 보살핌을 받지 않았다. 오히려 식사 준비를 내가 하고 강아지 산책도 했다. 단지, 사람의 온기를 곁에서 느끼는 것이 나에겐 치유가 되었다.
돌이켜보면, 결혼 후에도 나는 언제나 스스로를 돌봐야 했다. 바쁘다며 밤늦게 술냄새를 풍기며 귀가했던 사람.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홀로 아이를 돌보며 보내야 했던 외로운 시간들.
출산 이후 지속된 전신의 통증을 홀로 감내하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건강을 회복하는 나만의 방법을 10년에 걸쳐 찾아왔다. 그렇게 통증을 다스리며 20년을 살아왔고, 그러던 중 이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책 속에서 아내의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 노력하는 저자의 모습을 보며 그저 존경스러웠다. 무엇보다, 그러한 노력을 기울이는 존재가 옆에 있다는 사실이 부러웠고, 한편으로는 비슷한 고통을 혼자 견뎌내 온 나 자신이 강한 사람이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내가 이 모든 어려움을 감내할 수 있었던 것은 내 엄마에게서 자연스럽게 배운 강한 정신력 덕분이었을지도 모른다.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다’는 말이 있듯, 아무리 아파도 나를 대신하거나 내가 아픈 것을 안타까워해 주며 보살펴 준 사람은 없었기 때문에 스스로 버텨내야만 했다. 남편은 있었으나 그는 그의 삶을 살았다. 그리고 나를 간간히 도와줄 뿐이었다. ‘같이’라는 건 없었다고 느껴진다. 그도 어쩌면 사이가 좋지 않은 부모 사이에서 누군가를 보살피는 방법을 배우지 못해 그랬을듯하다.
지난 세 달은 나를 세심하게 돌봐줄 존재가 없다는 점이 더욱 나를 힘들게 했었는지도 모른다. 나의 우울감에 공감해 주기보다는 이를 힘겨워하며 멀어지는 현상을 보며 더 깊은 고통을 느꼈고, 한편으론 마음을 더 굳게 먹기도 했다. 서글프기도 했지만 진정한 ‘홀로서기’의 시간임을 인식했다.
나를 보살펴줄 이는 없다.
그러니 앞으로도 스스로를 돌보고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나를 치유하기 위해 끊임없이 배우고 견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