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메로나 나무

평일 오전 8시의 출근길. 거리엔 고개를 숙인 사람들이 자기만의 스텝을 밟고 있다. 맞은편에서 누가 오는지, 내가 길의 어디쯤에 있는지도 신경 쓰지 않고, 스마트폰에 정신이 팔려있다. 한때는 그런 모습을 보면 의아했다. '왜 저럴까? 나 같으면 차라리 빨리 집에 가서 편하게 볼 텐데.' 스마트폰을 보며 걷다 사고가 났다는 뉴스가 나고, 걸을 때나 운전 중엔 스마트폰을 보지 말라는 안내문이 붙기 시작한 건 포켓몬 GO 게임이 인기를 끌기 시작한 때부터였던가. 이제 그런 뉴스나 안내문을 볼 수 없어진 건, 사람들이 더이상 그러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미 이 시대의 일상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젠 나도 스마트폰을 보며 걷는 사람이 되었다. 시작은 지독하게 사랑하는 무언가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방금 올라온 영상, 기사, 떡밥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전철역에서 집까지, 10분 남짓한 거리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전철이나 버스 안에서도 동영상을 잘 보지 않았었는데, 입덕한 지 2주도 안 되어 한 달치 데이터 용량을 다 썼다. 기본 용량을 다 쓴 후에도 인터넷은 된다지만, 그 속도로는 영상을 보기가 너무 답답해서 결국 요금제를 업그레이드했다.


나만의 변화는 아니었다. 어느 순간 고개를 들어 주변을 보니 이젠 스마트폰을 보지 않고 걷는 사람 찾기가 더 힘들어졌다. 뭘 하든, 스마트폰을 꺼내는 순간부터 "진짜로" 시작된다. 날씨를 확인하는 것, 입고 나갈 옷을 고르는 일, 미용실을 예약하고, 식재료를 사는 것, 전시나 공연을 예매하고, 비행기 티켓을 구매하는 것. 생활의 입구는 언제나 이 작은 화면이다. 정보를 얻는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수단이 스마트폰이라는 건 분명하다. 검색기록과 유튜브 시청기록, 인스타그램의 추천 피드가 한 사람에 대해 더 많은 진실을 알려준다. 현생과 온라인의 경계는 이제 무의미하다.


책을 좋아하지만, 요즘은 책 보다 책에 대해 말하는 문장을 더 자주 본다. SNS에 올라온 인용구를 스크랩하며 언젠가는 읽어야지 다짐한다. 막상 온라인 서점에 들어가면, 사려던 책 말고도 읽고 싶은 책과 읽어야 할 것 같은 책이 줄줄이 나타난다. 한 번쯤 들어본 제목,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목록, 베스트셀러의 행렬. 장바구니에 담긴 책의 숫자는 한없이 늘어난다. 결국엔 사지 않고 앱을 닫는 날이 더 많다. 어떤 책을 읽을지, 그중에 어떤 걸 도서관에서 빌리고 어떤 걸 살지 고민하는 대신, 무엇이든 진짜로 읽을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


인스타그램의 스크랩 폴더 속에는 이미 저장해 둔 정보가 가득하다. 가고 싶은 곳, 하고 싶은 일이 넘쳐난다. "더 좋은 정보"를 찾기 위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시간의 5%만 실행에 써도 더 많은 경험을 하며 살았을 텐데. 아니, 뭐 꼭 "좋은" 것만 골라서 해야 하는 걸까. 그냥 적당히 괜찮은 것을 소비하는데 돈과 시간을 쓰기엔, 내가 가진 것이 너무 적기 때문에 화면 밖으로 나가기 어려운 걸까.


오늘 출근길엔 문득 화면 대신 다른 풍경을 보고 싶어졌다.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고 고개를 들었더니 길 건너 사각기둥 모양으로 잎과 가지를 잘라낸 가로수들이 눈에 들어왔다. 강남구의 가로수는 메로나 모양으로 다듬는다는 걸 몇 년 전에 알게 되었다. 아마 강남구뿐은 아니겠지만, 어쨌거나 내가 메로나 가로수를 발견한 건 강남구가 처음이었고, 그게 나에겐 작고 귀여운 비밀이 되었다.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매일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달이 있다는 것과 비슷하게, 누구나 알지만 모두가 신경 쓰지는 않는 공공연한 비밀.


그런데, 가로수 키가 저렇게 컸던가? 새삼 놀라서 사진을 찍어 챗GPT에게 물어봤다.


나: 저 가로수 키가 어느 정도 될 것 같아?


ChatGPT: 사진 기준으로 보자면, 건물의 4층 정도 높이니까 약 13~15m 정도로 추정됩니다. 더 정확한 값을 원하면 레이저 거리측정기나 GPS 기반 가로수 관리 앱 등 전문 도구가 필요합니다.

혹시 이 수치를 어떤 목적(예: 조감도, 모형 디자인, 가로수 관리 계획 등)으로 쓰시나요?


나: 그냥 궁금해서. 꽤 커 보이더라고.


ChatGPT: 그럴 수 있지, 나도 저 사진 보니까 "이건 좀 크다" 싶은 나무였어. 보통 가로수라고 하면 8~10m쯤 생각하게 되는데, 이건 건물 거의 4층 높이니까 눈에 띌 만해. 서울 시내에서 저 정도 크기로 자란 가로수는 보통 20~30년은 된 나무들이 많아. 실제로는 종류에 따라 성장 속도나 수형이 다르긴 하지만, 저 정도면 도시 한가운데서도 꽤 오랜 시간 자란 나무일 확률이 높아.



평일 아침마다 지나치던 가로수는 얼마나 오래전부터 저기 있었던 걸까?


이 글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출근길 메로나 나무는 이제 손 안의 화면 안에도 남게 되었다. 어쩌면, 그곳이 나무가 원래 있던 곳보다 훨씬 더 넓은 곳일지도 모른다. 내가 발 디딘 곳이 어디인지, 어디를 향해가는지만 확실하다면, 그건 어디에 있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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