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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진 May 12. 2021

'스승의 날' 왜 있을까요?

어느 날, 둥이가 다니는 초등학교로부터 '스승의 날'을 의식한 듯한 공지 문자를 받았습니다. 

 '우리 학교에서는 청탁 금지법이 잘 지켜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으며, 어떠한 형태의 금품, 향의, 편의제공 등 일체의 금품을 받지 않음을 알려드립니다.'


스승의 날... 특이하고 서로 민망한 날인 것 같습니다.


전, 달력에서 '직업'과 관련된 날짜를 찾아봤습니다. ('특정 업종'을 기념하는 날 포함)


3.17 상공의 날

4. 7. 보건의 날

4.21. 과학의 날

4.22 정보통신의 날

 5. 1. 근로자의 날

 6.28. 철도의 날

 9.10. 해양경찰의 날

10. 1. 국군의 날

10.21. 경찰의 날

10.26. 금융의 날

11. 9. 소방의 날

11.11. 농업인의 날


위의 기념일 대부분은 그 조직 내부 행사를 하거나 그마저 없는 경우엔 '아, 어제가 우리의 날이었구나!' 하며 잠시 생각하고 잊어버립니다.


이 중 유독 눈에 띄는 날은 바로 '스승의 날'입니다.  

5월 15일, 세종대왕님 탄생일, 스승의 날...

왜 5월 15일 '스승의 날'은 유독 타인의 축하를 당연하게 생각하고 강요하는 것일까요?

이름도 '선생의 날'도 아닌 '스승의 날'로 선생님이 아닌 학생의 입장에서 지어졌습니다. 스승은 선생님보다 더 깊은 가르침을 준 사람으로, 학생 마음에서 우러나왔을 때 부르는 호칭입니다. 학생이 그 사람을 스승으로 부를지, 아닐지... 선택할 수 있어야 됩니다.


일전에, 사회복지관을 운영하는 관장님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자신은 사회복지 사업을 하는 직업인 일 뿐인데, 자원봉사를 하는 사람으로 보면 부담이 된다고 했습니다. 

'스승'도 똑같지 않을까요? 

다양한 종류의 직업 중 하나인 '선생'을 택한 것뿐이고 스승으로 불리고 싶은 생각도 없는 사람에게 '스승'이란 호칭은 꽤 부담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별난 '스승의 날'... 변화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생명은 부모에게 받으나 인간됨, 세상의 이치를 스승에게 배운다는 취지는 알겠지만 예전과 달리 학교 외에도 배울 곳이 많습니다. 특히, 코로나로 인해 학교 갈 시간이 현격히 줄어든 아이들에게 학교는 '배움의 공간'이 아닌, '의무적으로 가야 되는 공간'일 뿐이지요... 집에서 방치된 채 오락만 하고 있는 것을 알지만 어쩔 수 없는 맞벌이 부모들은 결국 학교가 아닌 학원을 선택합니다. 온라인 수업 준비와 학생들 관리로 너무 바쁜 공립학교 선생님들은 어쩔 수 없이 학원을 권유합니다. 


학습 외 중요한 것들도 많습니다. 목숨을 걸고 근무하는 소방관, 경찰, 군인과 코로나 시대 위험을 무릅쓰고 생명을 구하는 의사, 간호사 등의 사회적 역할보다 과연 선생님의 역할이 크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모두 맡은 소임 내에서 최선을 다하는 직업인입니다. 어떤 직업이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 같이 중요합니다.


물론, 학교에서 고생하시는 선생님의 수고를 무시하고자 하는 글은 아닙니다. 

친구 중에 교사가 많습니다. 예전과 달리 높아져가는 학부모의 기대, 방역까지 챙겨야 되는 코로나 시대, 버릇없는 아이들 등 민원과 행정업무, 교육 업무로 너무 바빠서 퇴근 중 쓰러진 친구도 있습니다. 스트레스로 살이 너무 빠져서 40킬로도 안 나가는 친구도 있습니다. 엄마인 나도 몸이 편하고 마음이 즐거워야 아이에게 웃어줄 여유가 생깁니다. 하지만 선생님들은 피곤해도 인자한 모습을 유지해야 된다고 강요받고 있습니다. 이 시대 선생님들의 역할이 너무 큰 것 같습니다. 


최근엔 형식적인 '스승의 날'에 부담을 느껴 당일 학교를 재량 휴교하는 곳도 있다고 합니다. 

너무나 거창한 '스승의 날'로 정작 그날의 주인공인 학교와 선생님들이 숨어 버립니다.


선생님들 스스로 부끄럽게 만드는, 포장만 화려한 '스승의 날' 이 아닌, 

선생님들이 마음 편하고 즐겁게 교육에만 임할 수 있도록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휴식의 날이 되길 바랍니다.


끝으로, 고백하자면 이 바람은 선생님이 아닌 하나뿐인 내 아들을 위한 것입니다. 

초등학교 2학년인 아들이

  "엄마, 선생님이 바빠 죽겠다고 운동장에서 놀라고 했어."가 아닌,

  "엄마, 오늘 선생님이랑 운동장에서 같이 놀았어."라고 말하길 바랍니다.


소중한 나의 아들에게 짜증 내는 선생님이 아닌, 행복한 선생님이 계셨으면 좋겠다는 엄마의 욕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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