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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진 Jun 02. 2021

일기 숙제는 왜 있을까요?

공립학교에 방치한나쁜 엄마!

내가 거쳤던 수많은 교육기관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영어학원, 컴퓨터학원, 수학학원, 피아노 학원, 바둑학원, 스피치학원, 미술학원... 에서 숙제로 내 준 수많은 과업들 중 제일 하기 싫은 것은 '매일 일기 쓰기'였다.


왜?

왜??


손에 힘을 기르고, 자신의 생각을 정립시키고, 한글을 익히는... 뻔한 이유는 귀에 안 들어온다.


난 23살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후, '교육기관'과 멀어졌다.

더 이상 수동적으로 해야 될 숙제가 없어졌다.

취직, 결혼, 출산이라는 인생의 숙제를 스스로 찾아가며 하던 중 16년 만에 다시 교육기관과 만났다.


2020년, 아들 둥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것이다. 


세상에나! 내가 초등학교 졸업 한지 후 26년 만에 초등학교에 온 나는 경악했다.

26년 전과 지금의 교육과정이 너무 똑같았다.


바른생활, 슬기로운 생활, 즐거운 생활이 '통합'과목으로 통합된 것 말고는 모든 게 같았다.

아, '국민체조~ 시작!'에 나왔던 아저씨가 사라진 것도 바뀐 점이다. 


작년, 둥이가 1학년이었을 때다.

하교시간에 맞춰 학교 교문 앞에서 둥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1~2학년은 요일별 수업시간이 동일하여 2학년 엄마들도 함께 기다리고 있는데 그중 한 엄마가 얘기했다.


  A :  00 엄마, 00도 일기 매일 적어요?

  B :  응, 우리 애 반은 2학년 되니까 매일 쓰던데... 그런데, 00반은 일주일에 두 번만 적는데.

  A :  그럼, 선생님께서 꼼꼼하게 코멘트 적어주셔?

  B :  무슨, 애들 보는데서 '참 잘했어요!' 도장만 쾅쾅 찍고는 끝 이래.

  A :  우리 애 담임도 그래. 바빠서 도장만 찍어야 되는 날엔 최소한 선생님 자리에서 애들 안 보게 찍어야 되는 거 아니야? 우리 아이는 선생님이 도장만 찍고 일기장 내용과 틀린 글씨는 안 보신다고 마음대로 적어도 된다고 하더라고!
  B : 그러게 말이야, 안 그래도 학원 다닌다고 바쁜데 일기를 적으라고 했음 꼼꼼하게 봐주셔야지... 애들 사기 떨어지게. 

  A : 맞아, 그렇게 바쁘시면 일주일에 두 번만 적으라고 해도 될 텐데. 아쉽다... 그렇지?


두 엄마의 대화를 들으면서도 설마, 선생님이 애들 보는데서 도장만 찍고 지나갈까... 싶었다.


어느덧 우리 둥이도 2학년이 됐다.


학교에 기대한 내가 바보였다. 

역시나 2학년 선생님은 작년의 그 엄마들 대화처럼 일기장 검사를 제대로 해주지 않으셨다. 책상 옆 복도를 지나가면서 도장만 찍는다고 했다.


1학년 때 담임선생님, 2학년 때 담임선생님. 

우리 둥이는 두 분 담임선생님의 굉장히 적극적인 권유로 태권도 학원부터 공부방까지 다양하게 다니느라 바쁘다. 안타깝게도 우리 아이만 바쁜 건 아니다.


오후 6시 10분, 마지막 일정인 영어학원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같은 반 아이를 만났다.


 둥이 : 00야, 아파트 1층에서 같이 놀래?

 친구 : 아니, 올라가서 독서 수업해야 돼. 그리고 학교 숙제하면 저녁 9시까지 바빠.


아직 10살도 안 된 남자아이들의 대화 내용이 가관이었다. 저 엄마도 학교에서 학원 추천을 받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정말 안타깝다.



초등학교 때 일기 숙제를 죽도록 싫어했던 나는 지금도 이 브런치에 글을 적고 있다. 

늦은 밤과 새벽에도 글을 쓴다. 아들은 내게 "엄마는 글 적는 게 그렇게 좋아?"라며 묻는다.

글을 적지 않는다고 누군가에게 혼나지도 않고, 돈 한 푼 못 받지만 내가 좋으니깐 하게 된다. 


필요할 때 스스로 해도 전혀 늦지 않는다.


미국의 천재 CEO 일론 머스크는 '2030년 이후엔 AI와 인간이 공존하는 시대 '가 된다고 말한다. 
지식이나 기술은 AI가 대신하고 인간은 옭고 그름을 판단해야 된다. 판단은 ‘결정이나 선택이 적절한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행위다. ‘옳고 그름’을 결정하는 일이기도 하다. 개인적 선악뿐 아니라 정치적 선악의 판단을 하는 것이다.
AI시대 최고 인재는 판단을 빠르고 정확하게 내리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 시대의 주역이 될 알파 세대는 현재 일반 학교를 다니고 있다. 안타깝게도 기존의 공교육은 그에 걸맞은 교육을 수행하지 못한다.

* 알파 세대 : 산업화한 나라에서 2010~25년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


[원문링크]

https://n.news.naver.com/article/025/0003062968


1, 2학년 담임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 많은 아이들의 공부를 봐주기엔 역부족이니까 공부방(학원)을 보내라고.

 - 기본 인성 교육은 가정에서 하라고.

 - 체력증진을 위해 태권도 학원에 보내라고도 했다. (수영장에 다니고 있다고 말씀드리니 '줄넘기'도 배워야 되니 태권도로 옮기는 게 좋겠다고 했다.)


아마 그분들도 미래에 대응할 수 있는 교육을 할 수 없음에 죄책감을 느끼는 게 아닐까?

엄마인 나도 여전히 천방지축인 우리 아이에게 죄를 짓는 것 같다.


바로 '공립학교에 방치한 죄'

홈스쿨링을 멋지게 하는 똑똑한 엄마도 있고, 대안학교에 보내는 경제적으로 부유한 엄마도 있는데.

워킹맘으로 바쁘지만 돈은 그다지 많이 없는 난, 

뭘 해야 되는지 몰라서 그냥 '공립학교'에 방치하는 것 같다.


나는 오늘도 왜 해야 되는지 모르는 일기 숙제를... 대충 3~4줄 적고 있는 아들을 무력하게 바라본다.


매일 선생님과 엄마가 합동으로 '인생은 대충 속이며 살아도 되는 것'이라며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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