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명함은 발령받고 6년이 지나서야 받을 수 있었다.
사기업에 취직한 친구들에게 명함을 받을 때마다 무척 부러웠었는데 입사 6년 만에 드디어 내 이름 석 자가 적힌 명함이 생겼다. 처음에는 신기해서 그 작은 종이를, 나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어서 명함이 굳이 필요하지 않은 부모님, 친구, 심지어 내 이름을 알고 오는 민원 혹은 거래처 직원에게도 줬었다.
그로부터 다시 수년이 지난 지금, 누군가 명함이 있냐고 물어보면 당연히 ‘없다’고 한다. 공무원의 명함에 적힌 전화번호가 112 혹은 119처럼 응급용으로 쓰인다는 것을 알고 난 뒤로는 내 명함은 책상 서랍 구석에 처박혀 있다. 늦은 저녁, 주말, 새벽 가릴 것 없이 전화가 온다.
심지어 나와 전혀 상관없는 업무를 물어보면 소름이 돋는다. 여태껏 내 명함을 들고 있었다니...
아무것도 모르고 명함을 뿌려댔던 내 손이 너무 원망스러울 뿐이다.
나는 분명히 내 노동의 대가로 월급을 받는 것인데 사람들은 마치 자신들이 내는
세금으로 빌어먹고 사는 것처럼 말한다. 심지어 놀! 고! 먹! 으! 면! 서!
공무원의 생활은 군대와 비슷하다. 예를 들어, 비상근무명령이 떨어지면 30분~2시간 내로 응소를 해야 된다. 또한, 업무와 관련 없는 행사에도 수시로 차출되는데 문제는 갈수록 행사도 많아지고 ‘비상근무명령’의 사유도 많아진다는 것이다. 태풍, 폭설, 폭염, 감염병 외 언론에 자신의 업무와 관련된 사항이 나오면 근무 시작 전에 보도 내용에 대한 해명자료를 윗분들에게 보고 드려야 된다. 시민의 생명, 재산과 관련된 사항이 아니면, 정해진 근무시간에 차근차근 알아보고 일을 처리하는 게 훨씬 더 안정적일 텐데 뭐든지 후다닥 후다닥! 정신이 하나도 없다. 오히려 업무 외 시간이 돼야 본연의 업무를 겨우 처리할 여유가 생긴다.
이런 사유로 외부에서 알고 있는 것과 다르게 오전 9시에 출근해서 오후 6시에 예쁘게 퇴근한 적은 15년 동안 많지 않다. 수시로 발생하는 비상근무로 나도 핏덩어리 내 아들을 친정엄마에게 맡겨야 됐다.
‘워라벨’이라는 것은 애초에 꿈조차 꿀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이제 외부에서 오해하는 것이 싫어서 자랑스럽던 명함은 구석에 처박아두고 직업을 물어도 ‘공무원’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냥... ‘이 근처 사무실에 다녀요.’라든가 ‘월급쟁이입니다.’등으로 말하고 만다.
공무원도 가족의 생계를 위해 직장에서 받는 월급이 절대적인 노동자이다. 공무원이라고 해서 태어날 때부터 시민에 대한 봉사정신을 갖고 태어나서 위험한 일, 궂은일을 아무렇지 않게 당연히 해야 되는 사람들이 아닌 가족들을 위해 힘든 일을 참고 일하는 평범한 소시민이고, 노동자일 뿐이다.
대기 중에 산소가 있어 우리가 숨 쉬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당연하다고 해서 산소가 소중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공무원도 시민, 국민을 위해 일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다.
공무원도 누군가에게 소중한 가족이며 그들을 위해 일하는 노동자라는 것을 홍보해야 된다.
지금처럼 공무원으로 열심히 일하면서도 눈치가 보여서 직업 말하는 것도 꺼려지는 사회 분위기가 바뀌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