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에서 깨니 카톡 메시지가 와 있었다. 새벽에 퇴근하는 후배가 보낸 것이었다.
"단언컨대, 언니가 휴직하기 전보다 낳아진 게 단 하나도 없어요. 더 바쁘고, 더 미래가 없어요. 희망이 없는 곳이에요. 언니가 꿈을 이뤄서 꼭 빨리 이 조직을 떠날 수 있기를 바래요."
새벽에 퇴근하는 동생의 삶이 과거의 내 삶이었기에, 고구마를 천만 개 먹은 것처럼 답답해졌고 고생하는 후배가 안쓰러웠고, 잠시 회사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내 삶이 감사했다.
2021년, 심장마비로 죽은 동료직원, 유방암에 걸렸다는 동기 언니가 두 명이나 된다. 매년 3~4명의 동료들이 암에 걸리거나 죽었다. 심신이 허약하고 가족력도 있는 내가 암에 걸리지 않는 게 신기할 뿐이다. 아무런 변화 없이 그대로 돌아간다면, 나는 아마 죽을 것 같다.
일과를 마친 후 저녁, 남편과 대화를 했다.
"오빠, 나 결심했어. 둥이를 키워야 되니 복직은 하겠지만 5년 내 그만둘 수 있게 뭐든 열심히 공부할 거야!"
"넌 왜 이 직업이 그렇게 힘드니?"
"경력으로 인정도 안 되는 일에 나의 온 시간을 투자하고 싶지 않아."
"무슨 말이야?"
"음... 만약에 내가 다른 회사에 취직한다고 생각해봐. 이력서에 '공무원 경력 16년'이라고 적어야 될까, 안 적어야 될까?"
"......"
"봐, 대답하기 힘들지? 사람들은 오랫동안 공무원을 한 사람은 순진해서 세상 물정 모른다고 해. 그리고 민간기업에 비해 편하다고 생각하는데, '그 편한 직장도 못 버티고 나왔냐'라고 생각한단 말이지. 그러니깐 우리가 고생했던 시간과 경력은 1년이 됐든, 10년이 됐든... 써먹을 데가 아무 곳도 없는 그저 버려진 시간이야. 그런 가치 없는 시간을 위해 계속 사무실에 메여 둥이도 내 손으로 못 키우고, 몸은 몸대로 아프고... 무슨 의미가 있을까? "
"니 말이 맞긴 맞네. 그래... 내가 널 신입 때부터 알았었는데. 이제는 '힘들다.'너의 말이 어리광이 아니고 정말 너의 '진심'이라는 것을 알겠어. 16년을 참았으면 충분한 것 같다. 고생했어."
"그렇다고, 먹고 살 대책도 없는데 지금 당장 그만둔 다는 것은 아니야. 다만, 정년퇴직까지 간다면 나한텐 너무 끔찍할 것 같아. 업무 자체에 창의성이 전혀 없아. 몇십 년을 한 직장을 다닐 수 있다는 게 감사하지만, 급변하는 사회에 아무런 능력이 없다는 반증 같기도 하고..."
"그래... 노력해보자. 나도 니가 복직하면 또 맨날 야근하고 힘들다고 울고... 눈에 뻔한데. 이러다가 죽으면 안 되니깐 살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보자."
"고마워."
비록 남편에게 머지않아 그만두겠다고 선전포고를 했고, 허락(?)을 받았지만, 생계형 직장인이므로 몇 년간은 버터야 된다. 아마 나가라고~ 나가라고 할 때까지 자리보존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자존심(?) 상 꾸역꾸역 다니고 싶지도 않다. 그럼, 남은 근무기간을 보람 있게 다니기 위해서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그건 바로, 힘든 마음을 의지할 수 있는 '반짝이는 부캐'를 만드는 것이다!
죽을 때까지 나를 키우는 것보다 재미있는 것은 없다.
스스로 내 꿈을 실현시켜 줄 돈을 벌고, 내 꿈을 키워줄 든든한 스폰서가 된다.
-김미경 대표-
항상 나에게 새로운 자극과 열정을 주는 김미경 대표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그러면서 꿈을 이룰 수 있게 해주는 본업에 충실하라고 했다. '잘하는 일에서 돈을 벌고 좋아하는 일에 돈을 쓰면서 버텨라!'라고 하셨다.
김미경 대표님의 말씀처럼 나에게 맞지 않는 직업을 16년간 포기하지 않고 유지한 덕분에 '1년'이라는 소중한 '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어렵게 갖게 된 만큼, 난 내 시간을 도저히 허투루 보낼 수가 없다.
"도대체 맨날 뭘 그렇게 꼼지락 거리는 거야? 그냥 좀 쉬어 봐."라는 남편의 말을 뒤로한 채 내 방에 스스로 갇혀(?) 지낸 지 몇 달만에 꿈에 그리는 부캐를 갖게 됐다.
본케보다 더 값진 나의 부캐 타이틀은 바로~!!!
1. 브런치 작가
2. 제페토 크리에이터!!
무려 두 가지나 된다!
공무원과 겸직도 가능한 분야고 복직 후 홍보, 4차 산업 관련 부서에서 일을 할 수도 있다. 메타버스와 관련된 정책을 펴고 사업 수행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설레고 흥분된다.
특히, 메타버스를 잘 활용하면 다양한 세대와 소통할 수 있어서 좋다.
'재패토 크리에이터'에선 10대들과 주로 소통한다. 그들이 좋아하는 옷을 아바타에게 입히거나 디자인한다. 말투에서 '나이'가 느껴지는지, 처음에는 몇 번 튕긴 적도 있었지만ㅠㅠ 지금은 제법 대화를 이어 간다. 제페토는 10대, 청년과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다. 아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원하는 세상이 뭔지 살짝 엿볼 수 있다.
반면, 브런치에서는 20대 초반 이후의 모든 세대와 소통할 수 있다. 다양한 직업과 연령의 작가님들의 글을 보고 댓글을 통해 소통한다. 많은 분들의 삶과 생각을 통해 '아, 이런 서비스가 필요했겠구나, 이런 문제가 있었구나...'라는 생각도 자주 들었다. 제페토처럼 '이게 도대체 무슨 뜻이지? 이렇게 말해도 될까?' 고민하지 않아도 돼 더 아늑하다. 왠지 친정 같은 곳이다.
아무튼, 두 번째 사춘기를 겪으면서...
부캐를 활용 해 본캐를 조금 더 유지하고 빛나게 하는 방법을 찾게 됐다.
'내 영혼이 머물 수 있는 공간과 자리'를 메타버스에 견고하게 구축하게 됐다. '언제, 어디서든 접속할 수 있다.'라고 생각하면 외롭지도 않다. 본캐를 뒷받침해주는, 내가 직접 만든, 나의 든든한 스폰서 부캐!
확실히, 마흔은 '의미 있고 아름다운'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