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저녁, 남편은 명절 연휴마다 만나는 고향 친구들을 만나러 나갔습니다. 원래는 부부동반 모임이었는데 코로나로 인해 남자들끼리만 만난 지 벌써 2년째네요. 우리 집에서 가장 에너지가 많은 남편! 활기차고 시끄러운 남편이 집에 없는 데다가 그동안 즐겨봤던 <오케이 광자매> 드라마도 종영돼, '오늘 저녁은 뭐 하고 보내지?'라고 생각하던 차였습니다. 아들마저 늦은 낮잠에 들어서 더 조용하고 심심한 오후...
그때, <축하합니다>라는 제목의 메일 한 통을 받았습니다.
전 아무 생각 없이 휴대폰으로 이메일을 확인하였습니다.
그리고 조용하다 못해 적막했던 우리 집은 금방 시끄러워졌습니다.
축하합니다. 000님께서는 0000예술 신인상 응모에서 수필부문 심사를 통과하여 당선되었습니다. 당선소감과 약력 그리고 사진을 아래 사항에 맞추어 이메일로 보내주세요. *합격하신 분은 편집회의를 거친 후 한국문학예술 잡지에 글이 실렸을 때 비로소 등단이 인정됩니다.
당선과 작가 등단의 기회가 드디어 제게도 왔습니다.
올해 브런치에서 개최 한 공모전에서 낙선됐을 땐, 슬프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만족스러운 작품으로 공모했다기보다 올림픽 정신, 즉 참가에 의의를 둔 것이어서 실망스럽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딘가에 당선이 된다고 해도 무덤덤하게 지나칠 줄 알았는데, 막상 당선되니 무척 기뻤습니다.
우선, 친구를 만나고 있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오빠!! 나 신인상 당선됐데~"
"뭐? 전에 안데르센 동화 공모전은 떨어졌다고 했잖아!"
"그거 말고 다른 공모전~"
"그것 말고 또 넣었다고? 말도 안 했었잖아~ 축하해~!! 우리 마누라 진짜 작가 됐네~"
"나 원래 브런치 작가였거든?"
"아, 맞네! 미안~ 당선 작가님! 축하해."
"제수씨 축하해요~!!"
저의 흥분된 목소리가 남편 핸드폰을 넘쳐서 남편 친구들 귀에도 들어갔나 봅니다. 남편 친구들의 축하를 받으니 더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남편과 전화를 끊은 후 친정식구들 단톡방에 메일을 캡처해서 올린 후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이렇게 기쁜 날은 아빠가 아닌 엄마에게 무의식적으로 손이 갑니다. 아빠 미안해요 ㅠㅠ)
"엄마, 어디야? 내가 보낸 카톡 봤어요?"
"나 지금 운동 중이지. 무슨 일 있어?"
"나 신인작가로 당선됐어! 잘 되면 등당까지 갈 수 있데!"
"와, 우리 딸 장하다! 학교 다닐 때는 네가 글 적는 거 좋아하는지 전혀 몰랐는데 웬일이야 이게?"
"그땐... 글짓기를 싫어하긴 했지만;; 백세 시대니까 마흔 살에 알게 된 게 어디예요?"
"좋아하는 것 찾아서 정말 잘됐어. 축하해!"
"엄마, 무슨 일 있어? 왜 이렇게 시끄러워?"
결국 제 호들갑이 아들의 낮잠을 깨웠습니다. 평소엔 우리 귀한 왕자님 낮잠을 깨우지 않으려고 살금살금 조심하던 엄마가 낯설었나 봅니다.
"둥아, 엄마가 글 잘 적었다고 상 받는데!"
"와~ 정말? 엄마 너무 멋져. 뽀뽀~!"
아들의 뽀뽀 축하까지 받았으면 그만둘 법도 싶은데, 굳이 진심으로 축하해 줄 친구들을 생각해 봅니다. ('시기'가 아닌 '진심'이 포인트입니다! 제가 가장 힘들었을 때 옆에 있어줬던 친구 두 명에게 카톡을 보냈습니다.)
"00야, 나 신인작가로 당선됐어. 축하해줘~!"라고 '축하'를 반강제적으로(?) 요구했습니다. 명절 음식 준비로 바쁠 텐데도 친구들은 성심껏 축하의 문자를 보내줬습니다. 전 충분히 행복해졌습니다.
가벼운 제 성격을 알고는 있었지만, 이메일 한 통에 이렇게 요란해지는 저란 사람! 참 작가답지 않습니다. 제게 온 집안을 이렇게 순식간에 시끄럽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저도 몰랐습니다. 아마도 에세이를 적는 브런치 작가인 제게 '수필'부문 당선은 더 큰 기쁨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당선이 처음 돼 봐서 아직 뭐가 뭔지 잘 모릅니다. 메일 내용을 자세히 보니 당선 후 책자에 등단이 되기까지 절차와 시간이 더 소요되는 것 같습니다. 당선이 된 것은 확실한데 등단은 안 될 수도 있나 봅니다.(사실 등단... 이 뭔지도 잘 모르겠네요;; 이러고도 '작가'가 되겠다고 글 적는 제가 한심합니다.)
사실, 걱정되는 부분도 조금 있습니다. 우선, 당선 후 등단까지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등단이 되면 실명이 공개되는 것도 조금 부담됩니다. 필명 뒤에 숨어서 자유로웠는데 제 이름 석자 대신 자유로움을 뺏길까 봐 걱정됩니다. 또, 비록 상금은 없지만 직업의 특성상 '겸직허가'도 받아야 된다고 하니 더 부담됩니다. 이런 경우를 미리 예상 해, 공모전 작품에는 직업과 관련된 글은 제출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걱정이 되긴 하네요. '공모전 당선을 포기해야 되나...'라는 섣부른 걱정을 하던 중 마음을, 생각을 억지로 멈춰봅니다.
살면서 당연하게 축하받을 일이 많지 않은 저에게 온 행운을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며칠 동안은 마냥 행복하고 싶습니다. 좋은 일에 부정 타지 않게 경거망동하지 말고 조용히 미소 지으며 감사하라는 옛말이 생각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