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전,
운 좋게 떡상 알고리즘에 걸려든 제 글을 삭제했습니다.
그리고 그 글과 유사한 주제로 적었던 다른 글들과 매거진도 삭제했습니다.
브런치에 글을 발행한 후 1~2시간 이내 조회수가 많지 않으면 소위 묻혀버리는데
천운인지 열흘 전쯤 적은 글이 다음과 카카오톡 메인에 걸리게 됐습니다.
그리고 1일 조회수와 '좋아요'가 최고로 올라갔습니다.
덕분에 좀처럼 늘지 않던 구독자도 열 분이나 늘었습니다.
여러 작가님들께는 대수롭지 않은 통계일 테지만,
1개의 글을 하루 동안 4만여 명이 봐주신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그간 겪었던 알고리즘의 흐름상 2~3일은 떡상이 지속될 테고,
그렇게 된다면 총 누적 조회수, 구독자수 증가를 기대해 볼 수 있는 상황에서
떡상한지 만 16시간 만에 눈물을 흘리며 글을 지웠습니다.
브런치 작가지만, 제 글이 타인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저에게 '작가로서 책임감 있는 글을 적기를 바란다.'는 댓글이 달렸습니다. 악플은 아니었지만 제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책임감 있는 글'이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이곳 '브런치'에서는 역사, 경제, 의학, 예술 등 다양한 전문분야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브런치는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가 있는 곳입니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진정성 있는 글쓰기를 가능하게 해 주는 플랫폼입니다. 여러 작가님들의 진솔한 사연들(행복하지만 힘든 육아,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 사랑의 아픔, 자신만의 상처, 다양한 직업의 나름대로의 애환, 취준생 생활 등)이 브런치의 큰 자산이지요.
저도 그렇게 글을 적고 싶었습니다. 그냥 저의 얘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공무원은 '힘들다'는 말도 하면 안 되는 사람인가요?
자신의 직업을 사랑하며 자부심을 느끼는 분들도 계시지만, 적성과 취향에 맞지 않지만 가족의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다녀야 되는 분들도 많습니다. '평양감사도 제 싫으면 그만이다.'라는 말처럼 남들에게 좋아 보이는 직업도 누군가에겐 힘들고 싫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서민들은 고귀한 평양 감사님처럼 싫다고 그만 둘 순 없습니다. 꾸역꾸역 울면서라도 다녀야 됩니다. 생활비도 벌어야 되고 아이의 교육비도 벌어야 되니깐요. 저는 단지 그중 한 명일 뿐입니다. 제 가치관이 제 직업과 맞아서 다니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다녀야 돼서 다닐 뿐입니다.
제 생각이 많이 불편하시면 제 글에서 나가 주시기 바랍니다.
물론, 그분들의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임으로써 제 생각의 폭을 넓히고 글 쓰는 실력이 향상될 수도 있겠지요. 이런 의미에서 보면 굳이 끝까지 앍어 주시고, 친히 악플까지 달아주심에 감사를 드려야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마음이 콩알만 하고 유리알 같은 저는 정중하게 사양하겠습니다. 아주 천천히 성장해도 괜찮습니다. 아픈 말 대신 구독자수, 조회수 등으로 스스로 반성하며 깨닫겠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누군지 찾아 내 옷 벗기겠다'는 메일을 보내주신 분.
저 뚱뚱해서 옷 벗기면 선생님 눈만 버립니다. 그리고 성희롱으로 걸려요!
농담이지만 슬픕니다.
힘든 시기에 생계를 잃게 된 분들이 있는데 직장도 있는 제가 힘들다는 것이 연약한 투정으로 보일 것입니다. 하지만, 저도 나름의 고충이 있습니다. 새벽 1시에 퇴근하고 새벽 6시 30분에 출근하는 삶, 늦은 밤 오는 문자 한 통에 어린 아들을 친정부모님께 내팽개치고 나가야 되고, 함께 입사했던 동기들이 암에 걸리고, 선배들은 암으로 죽고, 퇴근하다 쓰러진 후배, 갈수록 늘어가는 나의 병명과 약들, 단지 비가 와 우울하단 이유로 쉼 없이 욕을 퍼붓는 민원들, 초과근무와 주말근무가 당연시 여겨지는 분위기 등 그저 제가 힘들었던 것을 저의 공간에서 말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오히려 제가 자신이 직접 겪어보지 못한 일에 대해 함부로 말하시는 분들께 여쭤보고 싶습니다. 정말 세상에서 가장 힘들고 괴로운 시간만 골라서 보내고 계시는가요? 각자 처해진 상황에 따라 고통의 크기는 다르게 받아들여집니다. 한발 곁에서 보면 별 것 아닐지라도 당사자는 정말 괴로울 수 있습니다. 힘들어도 그만둘 수 없는 일도 있습니다. 저처럼 이렇게 겨우 글을 통해 힘을 얻고 다시 돌아가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한번 더 그 사람을 힘들게 하는 말이 생각난다면 지금 보고 계시는 화면을 닫아주시기 바랍니다. 제발 같은 서민들끼리 힘들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이런 말을 악플을 달아주신 그분들께 할 수 없었습니다.
최악의 경우 시시비비가 붙으면 아무래도 제가 불리할 것 같았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제 글을 한편도 보지 못한 남편에게 물어봤습니다.
"오빠, 내가 우리 직업의 안 좋고 힘든 점에 대해 글을 몇 편 적었는데 악플이 달렸어. 어떻게 할까?"
"헉; 그런 걸 적었단 말이야? 당장 지워! 누가 보면 어떻게 하려고!"
"브런치니깐 당연히 직장생활의 애환을 적지, 그럼 내가 뭘 적겠어?"
"난 네가 소설이나 예쁜 글을 적는 줄 알았지... 우리 직업은 안전하지만 또 말 한마디면 위험해질 수 있다는 걸 왜 몰라."
"예쁜 글은 또 뭐야! 그리고 내가 소설을 어떻게 적어. 공부를 많이 하고 책도 많이 봐야 되는데, 타고난 소질도 필요하다고! 그리고 내가 무슨 대작가도 아니고 누가 본다고 그러는데!"
"서진아 하루에 4만 명이 봤다는 건 결코 작은 게 아니야. 아주 적지만 영향력이 있는 거라고. 그리고 네가 정말 작가가 되고 싶다면 반대의견에 대처하는 방법도 터득해야 되는 거 아니야?"
"됐어! 말 안 해.. 이게 뭐야, 내가 무슨 대역죄를 지었길래, 힘들단 말도 못 하는 거냐고"
속상해하는 와이프를 위로하는 대신 끝까지 바른말만 하는 남편이 얄밉습니다.
그렇게 각자 다른 일을 하는 척 30여분을 보냈습니다. 이번에는 남편이 먼저 다가옵니다.
"서진아, 간혹 지탄받는 정치인들이 있잖아. 그분들의 말이 모두 논리적으로 잘못돼서 지탄을 받는 게 아니야. 어쩌다 시기상 잘 못 해석될 수도 있다고. 우리 같은 말단 직원도 예외는 아니라고. 너도 알고 있잖아."
"......"
"그리고 우리 직업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너처럼 글을 적을 줄 몰라서 못 적는 게 아니라고. 이런 거 저런 거 다 고려해서 말을 아끼는 건데... 서진아, 조금만 더 참자. 4만 명 중 누가 포함됐을 줄 알고. 물론 네가 나쁜 글을 적은 것은 아니겠지만 코시국에 무조건 조심해야 된다고"
"내가 이래서 우리 직업을 싫어한다고! 도대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이젠 글도 못 쓰게 하고. 공익광고 같은 글 아님 우린 글도 못 적는 거야? 내가 진짜 최대 5년 내로 그만두고 만다! 그땐 내가 하고 싶은 말들 다 할 거야!"
큰소리는 쳤지만, 겁이 난 저는 대화가 끝난 후 제 글 여러 편을 스스로 삭제했습니다.
제가 스스로 글을 지운 이유는 '악플과 협박(악플) 메일 때문이었습니다.'라고 이유를 대고 싶지만,
사실은 저의 나약함 때문이겠지요. 그리고 혹시라도 생계가 달린 직업을 잃거나, 사회적 지탄을 받게 될까 봐 무서웠습니다. 내 맘을 알아주지 않고 매번 바른말만 하는 남편이 미워서 큰소리를 쳤지만, 우리 아들은 이제 초등학교 2학년입니다. 당장이라도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현실은 제발 나가라고 할 때까지 붙어 있겠지요. 충분히 예측 가능한 미래 앞에서 제가 또 한 번 지는 것 같습니다.
생계가 가장 무섭고 강한 것 같습니다.
제가 저의 피 같은 글을 여러 편 지우면서 얻은 결론은,
제 직업에 관한 글을 적을 땐 신중하게 적겠습니다. 여러분들의 반감에 가만히 있고 싶지도 않고, 끝까지 싸울 자신도 없습니다. 제 마음이 고요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순화하여 적을 수 있을 때, 사실과 정보만 전달할 수 있을 때 적겠습니다. 불만보단 나름의 대안을 제시하겠습니다. 저의 답답한 마음은 따로 준비한 예쁜 일기장에 적어야겠습니다.
그리고 저를 속상하게 하는 댓글은 죄송하지만 삭제하겠습니다.
댓글에 대한 권한이 그분께 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제 글에 할애된 공간입니다. 감사하게 받아들이거나 담담하게 무시할 수 있기 전까진 삭제하겠습니다. 다만, 글을 사랑하는 사람들로서 예의를 지켜주며 말씀해주시면 차분하게 생각 후 제 댓글을 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욕설이 담긴 메일을 보내주신 분들껜 '신고하기' 기능을 사용하겠습니다.
댓글을 달 수 없도록 설정할 수는 있지만, 다른 작가님들과의 소중한 소통의 기회마저 빼앗기고 싶진 않습니다. 그래서 당신만 저의 브런치에서 잠시 삭제하겠습니다.
제 글을 읽다가 나가주셔도 좋습니다. 저의 삐뚤어진 가치관이 마음에 안 드시면 구독을 취소해주셔도 좋습니다. 사실 이건 저에겐 매우 슬픈 일이지만, 작가님들의 구독 취소를 보며 조용히 혼자서 반성하겠습니다. 개인을 위한 일기와 다수를 위한 '글'의 차이를 배우며 열심히 적겠습니다.
이곳은 글 쓰는 공간이자 치유의 공간입니다. 아직도 많은 치유가 필요한 저에게 브런치는 아주아주 소중한 보물 같은 곳입니다. 제가 오래도록 머물 수 있도록 도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와 마찬가지로 작가님들에게도 이곳 브런치가 소중하지 않나요?
브런치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위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