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말재주가 좋아도 잡학다식 한 지식, 깊이 없는 사색은 금방 들통난다.
여기저기서 얼핏 들은 정보와 화려한 언변이 합쳐지면 잠시 솔깃하지만 도무지 난 그런 사람들과는 친밀한 관계를 지속하기가 어렵다.
내게 있어서 '책'과 '글'도 그렇다.
2021년 4월, 기다리고 기다리던 '브런치 작가'가 됐다.
'브런치 작가가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라는 메일을 받은 날, 우리 가족은 외식을 했다. 너무나 행복해하는 날 본 아들은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아줌마, 아저씨들에게 '우리 엄마 브런치 작가래요~'라고 엄마를 자랑하곤 했다. 비록, '브런치? 그게 뭐야?'라며 반문하는 어른들의 반응에 금방 시들해졌지만 조용한 우리 집에 한 동안은 행복한 이슈가 됐다.
브런치 작가가 된 나는 신났다. 9번 탈락한 나! 그만큼 '작가의 서랍'에 수북하게 쌓인 탈락된 내 글들을 마구마구 발행했다. '한 번에 그렇게 많은 글을 발행하지 말고, 하나씩 소중하게 발행하는 게 좋겠다'는 선배 작가님의 조언이 귀에 들리지 않았다. 브런치 운영진에서 사기진작을 위해 초보 작가들의 글을 메인에 많이 띄워준다는 소문을 알고 있었음에도 내 글이 '다음'과 '브런치 메인'에 뜬 후 난 더 가벼워졌다. '이것 봐! 너네들이 탈락시킨 글인데 조회 수 폭등하잖아?'라며 자뻑의 극치를 달리고 있었다. 남편은 너무 들뜬 와이프가 혹시라도 공무원을 그만둘까 봐 조마조마했다. '1원' 한 푼 못 버는데 진심인 나를 남편은 의아하게 봤다.
그러다가 얼마 전,
내가 쓴 글 '4급 서기관이 물었다. "왜 내가 부럽지 않아요?"'이 다시 메인에 떴다.
https://brunch.co.kr/@lovebero/94
메인에 뜨면 '알람'이 먼저 알려준다. 정말 글을 잘 적으시는 고수님들은 '알람'을 꺼놓는다고 하던데, 시시때때로 내게 행복함을 맛보게 하는 '알람'을 내가 끌 이유가 없다. 난 꼭! 켜 놓는다.
메인에 등극 한 첫째 날은 매우 매우 기뻤다. 오랜만에 메인에 등극한 기쁨! 다음 포털과 브런치 메인에 뜬 화면을 캡처하고 저장한다고 바빴다. 사실 내 스마트폰 갤러리엔 '브런치'라는 폴더가 있다. 메인 캡처 화면, 조회수 폭등 화면 등을 차곡차곡 모으는 중이다;;
둘째 날은 살짝 불안했다. 비록 구독자가 150명도 안되고, '브런치'를 잘 모르는 조직이지만 걱정이 됐다.
'이 글을 회사 사람들이 본다면 어떻게 될까? 품위유지 의무 위반으로 퇴직당하는 거 아니야?'
글 쓰는 게 좋긴 하지만, 생계형 직장인인 내게 퇴직은... 무서웠다. 힘들고 싫은 직장이지만 당장 그만두면 먹고 살 일이 막막하다.
셋째 날이 되자 후회됐다.
'그렇게 나쁜 팀장님은 아니었는데... 대한민국 건국이래 유구한(?) 역사를 가진 탄탄한 조직인데 내가 너무 형편없게 적었나?'
대부분의 조직과 인간관계가 그러하듯, 공직사회나 특정 사람과의 관계는 장단점은 모두 있다. 20년도 안 된 꼴랑 6급 나부랭이가 뭘 안다고 그런 글을 적는다고 마음먹었을까... 후회됐다.
지금까지 내가 쓴 글 중 열 편의 글이 메인에 걸렸다. 그중 2개는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 있겠다'싶었다. 미안했다. '내가 뭐라고, 아무것도 아닌 내 글이 뭐라고...' 반성하고 후회했다.
'글을 지울까?' 고민하다가 그 또한 내가 날 대단하게 보는 것 같아서 그만뒀다. 대신, 타산지석으로 삼아 '내가 쓴 글'로 인해 상처 받는 사람이 없는 글을 적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워낙에 다혈질이고 부정적인 내 성격탓에 비판적인 글을 적겠지만...'최대한 줄여야겠다!'고 다짐했다.
난 뚜렷한 전문분야도 없고, 특출 난 글재주도 없다.
글짓기 공부를 처음 시작하면, 보통 '나'에 대하여 적 듯, 나도 그랬다.
나에 대해서 적다가 한계가 느껴지면, 내 가족을 털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을 파헤쳤다.
다른 것은 적을 줄 모르니깐...
전문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창의력이 풍부한 것도 아니고, 특별한 경험이 없는 내가 적을 수 있는 것은 고작 사실과 내 생각 조금뿐이었다.
그런데 이 '사실'이라는 건 '내가 본 사실'이다. 같은 현상이라도 처한 입장에 따라 전혀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그 과정에서 내 글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미처 몰랐다.
나의 글짓기 실력이 아닌 여기저기서 얻은 얕은 수작으로 멋만 부리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스타킹의 고가 나간 것 같다. '벗어버리긴 아쉽고 계속 신고 있자니 부끄러운...' 작은 상처가 '큰 구멍'으로 바뀌지 않도록 뒤처리를 잘해야 되는데 아예 못쓰게 될까 봐 걱정이 된다. 빨리 보수작업을 해야된다.
브런치 작가가 된 지 약 80여 일!
많이 늦었지만, 뒤늦게 '글쓰기' 공부를 시작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