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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좀 살려줘!

by 이서진

최근, 뒤늦게 육아에 대해 공부하는 마음으로 오은영 박사님 영상을 자주 봅니다.

여느 방송 프로그램과는 달리 오은영 박사님의 영상은 볼 때마다 마음이 무겁습니다.


저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제가 어려워하는 것 중 하나인데, 영상을 볼 때마다

'아.. 내가 이걸 몰랐구나.., 둥이가 그때 저런 마음이었겠구나...'라며 반성하고 또 반성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이와 부모의 성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영상을 보면 볼수록 참... 제가 모르고 부족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제 마음이 편할 때는 한 없이 자상하고 착한 엄마였다가도

갑자기 욱하는 성격 때문에 불같이 화를 내는 저는 참 똘아이 엄마 같습니다.

이런 엄마 밑에서 아홉 살까지 잘 커준 아들이 대견하기만 합니다.


어느 날 저녁,

둥이는 거실에서 남편과 곱셈 공부를 하고 있었고 저는 방에서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글을 적고 있었습니다.


콩알처럼 귀엽게 생겨 귀 속에 쏙 들어가는 이어폰 덕분에

외부 소리에 방해받지 않고 집중해서 글을 즐겁게 적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엄마! 나 좀 살려줘!"

라고 절규하는 둥이의 비명 소리가 들립니다.


깜짝 놀란 제가 얼른 거실로 나갔지만

이미 남편이 둥이의 장난감 칼로 둥이를 한 대 때린 이후였습니다.

정황상 공부를 하기 싫어하는 둥이가 답답한 마음에 연필을 방바닥으로 세게 던졌고,

그런 둥이의 행동이 마땅치 않았던 남편이 둥이를 한 대 때린 거였습니다.

저를 본 둥이는 더 불쌍하고 다급하고, 더 큰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엄마! 나 좀 살려줘! 아빠가 나를 죽일 것 같아!"

저희 부부는 상대방의 훈육 방법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바로 나서지 않기로 약속했지만,

남편이 내 피와 살 같은, 사랑하는 아들을 때렸다는 사실이 너무 화가 나고 속상했습니다.

제가 방에서 나오려고 하자, 남편이 말합니다.

"엄마는 방에 들어가세요! 방에서 절대로 나오면 안 돼요!"

둥이를 때렸다는 것에 본인도 놀랐겠지요.

다행히 제게 말하는 남편의 목소리는 컸지만 어느 정도 진정된 것 같아서 방으로 들어왔습니다.

"엄마 살려줘!"

"서진아, 절대로 나오면 안 돼!"

둥이는 울고 남편은 화내고

둥이는 도와달라고 하고 남편은 방 밖으로 나오지 마라고 하고!

두 남자의 절규와 고함 소리에 머리가 터질 것 같았습니다.


이 와중에 빨리 오은영 박사님의 영상을 검색했습니다.

'물건을 던진 아이 훈육방법'

다행히 현재 난리인 우리 집 상황에 딱 맞는 영상이 검색됐고 급한 마음에 2배속으로 빠르게 봤습니다.

물건을 던지는 아이에게 박사님은

'기분이 안 좋다고 엄마한테 말로 해. 이게 안돼서 화가 난다고 물건을 던지면 안 되는 거야. 화날 순 있는데, 던지는 행동은 좋지 않아.'라고 진지하게 알려줘야 된다고 하셨습니다.

박사님의 말투에선 지금의 남편, 평소의 저에게 볼 수 있는 '흥분, 분노'가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또 반성합니다. 항상 반성만 합니다.


다행히 남편이 더 이상 둥이를 때리지 않고, 상황이 마무리됐습니다.

둥이는 그제야 엄마 품에 안길 수 있었고, 한참을 울다가 지쳐서 잠이 들었습니다.


이젠 저와 남편의 마음을 삭힐 차례입니다.

내 새끼를 때린 남편이 야속했지만 저보다 더 속상할 남편의 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당장 남편과 대화를 하고 싶었지만, 둘 다 흥분한 상태에서의 대화는 싸움으로 이어질 것이고,

우리 부부에게 그럴 여력이 남아있지 않아서 꽤 오랜 시간 동안 둘 다 침묵했습니다.


저는 방에 들어와서 남편에게 아까 제가 봤던 오은영 박사님의 영상을 공유했습니다.

30분쯤 후,

안방에 들어온 남편이 침대에서 자고 있는 둥이를 보며 저에게 말했습니다.

"둥이가... 학습장애라는 말을 듣고 마음이 급해졌던 것 같아. 분명히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이해를 못 하는 건지 화가 났던 거 같아. 사실은 둥이가 가장 답답했을 텐데."

"고생했어. 아이랑 한바탕 하고 나면 진이 빠지던데..."

"아니, 방금 같이 풀었던 문제인데 숫자만 달라진 건데 왜 모르냐고!"

"나도 둥이랑 공부하다 보면 속이 터지긴 해. 하지만 우리 둥이는 얼마나 답답하겠어. 친구들은 다 잘하는데 혼자 모르는 채로 남겨진 상황이... 속상하네."

"다시 유치원생으로 돌아갔다고 생각하고 처음부터 천천히 해 볼게."

"응. 애썼어. 얼른 쉬어."


짧지만 우리 가족 모두에게 길고 힘들었던 밤이 저물어갑니다.


내일은 둥이가 웃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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