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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진 Apr 13. 2021

8살인데 뭐가 늦었다는 거죠?

 "아이가 배우고 싶어 할 때까지 기다리자! 한번 배우면 1년은 지속하자!"


자녀 교육에 대한 우리 부부의 기본 생각입니다. 이것저것 시켜 줄만큼 경제적 여유도 없지만 원해서 배울 때 교육의 효율성이 극대화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지금은 100세&평생교육 시대이므로 언제든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급할 것 없습니다. 배움에 있어 '늦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몇 년 전, 둥이의 다섯 번째 여름이었습니다. 

캠핑장 미니 수영장에서 물놀이를 하고 오더니 수영을 가르쳐 달라고 한 달 정도 조른 적이 있었습니다. 아이가 뭔가를 배우고 싶어 하는 것은 부모가 바라는 일이므로 바로 수영 학원을 등록해 줄 수도 있었지만, 저는 한 템포 멈췄습니다. 둥이가 다닐만한 집 근처 수영장에 양해를 구한 뒤 둥이와 산책 겸 수영장 구경을 갔습니다. 어떤 날은 아무 말을 하지 않고 구경만 하고 왔고, 또 어떤 날은 형아, 동생들이 배우는 모습을 보며 함께 이야기했습니다. 둥이에게 수영은 물놀이처럼 시원하고 즐겁지만, 덧셈 뺄셈처럼 어려울 때도 있다고 얘기했습니다. 물론, 어린아이가 엄마의 마음을 다 헤아리진 못했을 테지만, 

 

배운다는 건, 놀이처럼 즐겁지만은 않다.

배움을 이룰 때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그럼에도 배우고 싶다면 엄마 아빠가 꼭 지원해 준다. 


이 세 가지는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여러 번 수영장을 구경한 후 둥이는 '수영'을 꼭 배우고 싶다고 했고 그때부터 2학년이 되기 전까지 약 3년 정도를 꾸준히 다녀 접영까지 배웠습니다. 덕분에 학교 수업시간 중 자기소개 시간이 있으면 '수영 잘하는 아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게 됐습니다.


하지만 '느려도 괜찮다.'라고 믿는 우리 부부도 긴장시키는 교육이 있습니다. 바로 '영어교육'입니다. 


'아기 때부터 배우면 놀면서 언어를 습득할 수 있다, 영어 유치원을 졸업하면 기본기가 튼튼하게 돼 중학교부터는 영어과목 공부를 안 해도 돼 타과목 공부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무엇보다 버터 굴러가는 영어 발음을 갖기 위해서는 최대한 어릴 때부터 가르쳐야 된다더라...'등 

영어를 못하는 저희가 선배 학부모의 경험담을 무시하고 있자니 걱정이 안 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영어조차 묻어두고 시간을 보냈고 둥이는 어느덧 초등학교 1학년이 됐습니다. 

직장 다니느라 엄마 아빠는 매일 바쁘고, 형제 없이 혼자인 둥이는 늘 심심했습니다. 너무 심심했는지 1학년 가을 어느 날, 둥이가 먼저 말했습니다. 


둥이) 엄마, 심심해...

엄마) 원래 사는 게 심심한 거야. 어른이 되면 바빠서 죽는다고 하는데 심심하면 좋은 거야.

        음... 엄마랑 같이 로봇 놀이할까?  (나 엄마 맞나요?ㅠㅠ)

둥이) 친구들하고 놀고 싶은데, 친구들은 학원 가야 돼서 바빠서 놀 수 없데.

       음... 엄마, 나도 영어학원에 보내주면 안 돼?

 

유레카!! 드디어 기다렸던 말을 듣게 됐습니다. 그 후로 저는 맘 카페 등 블로그 후기를 폭풍 검색하여 둥이가 다닐 수 있는 학원 세 곳을 추렸습니다. 물론, 보내고 싶었던 영어학원이라고 해도 3개월 정도 시간을 두고 갈팡질팡하는 둥이에게 영어공부에 대한 의지를 확답받는 시간은 가졌습니다. 

어느덧, 1학년의 마지막 달, 12월 말이 됐습니다.


영어학원 선생님과의 면담 날이 됐습니다. 간단하게 인사를 한 후 상담 선생님이 물었습니다.


선생님) 어머니, 둥이는 어느 영어유치원 졸업했나요?

나)  어, 영어유치원 아니고 일반 어린이집 나왔는데요...

선생님) 그럼, 집에서 영어교육은 어떻게 시키셨나요?

나) 어린이집에서 일주일에 두 번씩, 영어 수업하는 것 외엔 따론... 

     이제 시작해 보려고요...


원래 학원 면담을 하면 기분이 슬~ 안 좋아지는 건가요?

마치, 아이를 방치한 엄마가 된 듯 묘한 기분이 들던 때, 상담 선생님께서는 잠시 멈칫하더니 보고 있던 파일을 덮고 다른 파일을 꺼내며 다시 얘기했습니다.


선생님) 이곳은 보통 00과 00 시티에 있는 아이들이 주로 다닙니다.(00은 우리 지역에서 부자동네라고 유명한 곳이에요) 또, 부모님들도 의사, 교수, 사업하시는 분들이 대부분이라 아주 어릴 때부터 영어유치원을 다니거나 외국에서 살다 온 아이들이 대부분이지요. 2학년 대상으로 하는 파닉스 반은 없습니다. 

나) 그래서 저희 둥이는 다닐 수 없다는 건가요?

선생님) 8살, 둥이 친구들과 수업은 어렵고, 혹시 예비 7세 반 중 기초반이 생기면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8살인 둥이는 한 달 정도 대기한 후에

예비 7세인 쌍둥이 남매와 영어공부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혹시 여기까지 보셨다면,

 - 학원이 그곳 한 군데냐! 당장 상담을 종료하고 나오지 뭘 계속 듣고 있냐! 

이렇게 저를 이상하게 생각하실 분도 계실 것 같습니다.

첫 번째 상담이었다면 물론 저도 그렇게 했을 겁니다. 단호하게 '됐습니다! 여기 말고 학원이 없는 줄 아세요?'라고 말했을 겁니다. 하지만, 꾹 참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세 번째 상담이었기 때문입니다. 먼저 상담받았던 학원도 비슷했습니다. 첫 번째 방문한 학원에는 저도 당당하게 말을 하고 나왔습니다. 두 번째로 상담한 학원에는 아쉬움을 말했습니다. 그런데 세 번째로 똑같은 일을 당하게 되니 아무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안타깝게도 공립초등학교도 아이 교육을 포기했는데, 학원은 오죽 더 심하겠습니까? 

배우고자 하는 아이, 부족한 아이를 가르치는 게 아니라

원래 잘하는 아이들만 선별하여 학원의 명성을 더 높이겠다는 것이죠.

의사, 교수처럼 잘난 부모가 아니라 말단 공무원 부모의 아이를 꺼려하는 학원의 태도에 자존심도 상했지만,

다행히 둥이가 영어학원을 매우 즐겁게 다녀서 감사했습니다.


그렇게 2주가 지난 어느 날, 영어학원에서 전화를 받았습니다.


나) 안녕하세요, 선생님^^ 안 그래도 둥이가 수업은 잘 받고 있는지 궁금했는데 어쩐 일이세요?

선생님) 어머니, 둥이랑 같이 수업받는 아이들이 나이는 어리긴 해도 영어유치원 출신 아이들이라(그놈의 영어 유치원!!) 진도가 빠르거든요. 둥이가 좀 늦어서 힘들어하는데요...

나) 선생님, 둥이 나이 이제 8살입니다. 도대체 뭐가 자꾸 늦었다는 건가요?

    수십 년 배운 성인도 어려워하는 게 영어인데, 우리 둥이는 이제 8살이라고요!!


제가 세게 나가서인가요? 이번에는 선생님께서 아무 말씀 없으시더니 금방 끊으셨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뭐든지 할 수 있는 꿈 많은 어린아이에게 

학교와 학원에선 도대체 얼마나 큰 기대를 하고 있는 것일까요?


처음으로 입학한 학교에선 학교에선 다 가르칠 수 없다며, 학원에 가서 배우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가게 된 학원에선 유아기 때 사교육을 왜 안 받았냐며 의아해했습니다.


우리 둥이는 다시 태어나야 되는 건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도 저도 영어를 못해서 학원을 보내야 되는게...씁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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