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빠의 눈빛이 싫었다.

by 이서진

아빠의 눈빛이 싫었다.


금방이라도 가족을 잡아먹어버리고

모든 것을 파멸시켜 버릴 듯한

그 눈빛이 너무너무 싫었다.


기분 좋게 시작된

부부동반 모임, 가족과 지인들의 저녁 식사에서

유독 혼자만 취하시는 아빠.

술에 있어서 만큼은

'절제'라고는 도무지 모르는 아빠.


한 없이 다정다감하다가도

술 약속이 있는 날엔 어김없이

엄마, 언니랑 나,

우리 세 모녀를

공포로 몰아넣던 그 눈빛은, 악마였다.


언제인지 기억도 정확하지 않을 만큼

내가 어렸을 때.

엄마와 함께 갔던 낡은 재래시장에서

'한 푼 만 도와줍시오!'라고 외치던 구걸의 눈빛

혹은

'주든 말든 마음대로 하시오!'란 느낌이

어린 내 눈에도 읽힐 듯한

포기의 눈빛!

생계비를 하룻저녁 술 마시는 대 다 써버리고는

동사무소에 와서 고래고래 욕지거리를 하다가

혼자 지쳐서 돌아가던

수급자 할아버지의 분노와 원망이 서린 눈빛...


그 모든 눈빛들이,

왜! 열심히 살아오신

나의 아빠의 눈빛에 다 서려 있는 건지...

왜 고생만 하시는

엄마가 저 눈 빛을 평생 보셔야 되는 건지...

너무너무 싫었다.


언니와 내가 성인이 된 후로,

아빠는 좀 나아 지신 것 같았다.


하지만, 수년 전부터

다시 아빠의 얼굴이 보기 싫어졌다.

나를 공포에 떨게 했던 그 눈빛은

없어진 게 아니었다.

그 눈빛이 포함된 얼굴.


바다와 관련된 일을 하신 탓으로

햇볕에 그을려 검게 된 피부색에

알코올의 기운이 빨갛게 서려진

그 검붉은 얼굴이 너무 싫었다.


전처럼 소주를 몇 병씩 마신 것도 아닌데

거칠거칠, 검붉어지는 저 얼굴을 마주 보는 게 싫었다.


저 검붉은 얼굴!

빨갛게 살갗이 튼 얼굴.


정년퇴직을 하신 아빠는

풍족하진 않지만, 다달이 나오는 국민연금과 모아놓은 돈으로

엄마와 단 둘이 사시기엔 부족함이 없는데도

굳이 아파트 경비원을 하신다.


공무원들이 법을 이상하게 바꾼 탓에

쉴 수도 없는 형식적인 휴게시간만 늘고 임금은 오르지 않고

동료들은 잘리게 돼 더 바빠졌다고 투덜거리면서도

아빠는 경비원 반장이 됐다고 좋아하시면서

5년째 다니고 계신다.


힘들지 않냐고... 그만 두시라고 아무리 말려도

'경비원은 사람이 아니다.'라고 생각하고 일하면

아무렇지도 않다는 아빠.

'내가 늙어 죽을 때까지 내 밥 벌이는 할 테니 걱정 마!'

라고 큰소리치는 아빠.


우리 집 바로 앞에 있는 아파트에서 경비원을 하시는 게

점점 자라는 손주에게 폐를 끼칠까 봐

걱정하는 아빠...


제 엄마 아빠 직업이 번듯한데 무슨 상관이냐며,

그리고 경비원도 엄연한 직업이라며

아빠를 안심시키는 엄마와 나의 말을 못 믿으시는지

아빠는 근무하는 아파트를 조금만 벗어나도

유니폼을 사복으로 갈아입고,

하루에 샤워를 3~4번씩 하시고 향수도 꼬박꼬박 바르신다.


이제 술을 전처럼 드시지 않는데,

로션과 크림도 잘 바르시는데

그래도 아빠의 얼굴은 갈수록 시뻘게진다.


그리고...

추운 겨울에 얼굴과 손이 다 트면서까지 일해서 모은 돈을

일본에 있는 언니에게 보내주셨다.


어렸을 때 걱정만 끼쳤던 나와는 달리 항상 아빠의 자랑이었던 언니!

코로나로 인해 직장을 잃고 생계가 막막한 언니를...

자랑이고 보물이었던 언니는 이제 아빠의 애물단지가 됐다.


언니도, 아빠도... 모두 힘든 것을 알지만

'그러다가 다 같이 죽는다고! 먹고 살기 쉬운 사람이 어딨냐고!'

악다구니를 쓰며, 끝까지 언니를 돕지 않는 나.

이제 내가 악마가 된 것 같다.

수 십만 원 하는 아들 영어학원비는 있으면서

추위에 벌벌 떨고 있다는 언니에게 선뜻 보내지 못하는 돈.

그 의미 없는 돈을, 나는 매일 악으로 깡으로 벌고 있다.


올 겨울은, 빨갛게 튼 아빠의 얼굴을 보기가 더 힘들다.

너무 가슴이 아프고 미안하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12월! 천천히, 따뜻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