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블루스 12회...
드라마를 보다가, 일본에 있는 친언니를 떠올리긴 처음이었다.
언니는 81년 4월생, 나는 82년 12월 생.
언니는 나보다 겨우 한 살 많았지만, 엄마는 언니에게 늘 말했다.
"20개월 차이는 두 살 많다고 생각해야 돼. 그리고 엄마, 아빠가 없는 곳에선 네가 서진이 부모야. 알겠지?"
언니가 엄마, 아빠에게 온전히 사랑스러운 딸로 살 수 있었던 것 겨우 20개월이었다. 태어나자마자 장애인 쌍둥이 언니를 책임질 운명을 타고 난 드라마 속 영옥보다 조금 낳은 듯싶지만, 영옥 못지않게 언니의 부담과 짐도 매우 무거웠다.
돌이 지나고 아장아장 걸어 다니며 엄마, 아빠에게 사랑을 듬뿍 받아야 됐던 아기 언니에게 아픈 동생이 생겼다. 엄마는 스물다섯 시간이 넘는 난산으로 반신불구가 됐다. 몸의 왼쪽에 있는 것들을 움직이지 못한 채 한동안 병원에 입원해 있었고, 속상했던 아빠는 매일 술이었다. 외할머니는 장애인을 낳은 딸이 불쌍하다며 어린 언니 앞에서 늘 울었다. 그리고 언니는... 그렇게 보고 싶던 엄마가 퇴원하던 날, 엄마에게 제대로 안겨보지도, 울지도 못한 체 외할머니 집에 보내졌다. 밤만 되면 멍하게 창밖만 보던 언니가 참 안쓰러워 못 보겠다며 외할머니는 언니를 곧 다시 집으러 데리고 왔지만 집에 왔다고 딱히 엄마의 사랑을 받고 자랐던 것은 아니었다. 행복과 사랑 대신 슬픔과 삶의 무게를 배우면서 자랐던 언니는 모든 면에서 뛰어나야 됨을 강요받았다.
시험을 빵점 맞아도 엄마에게 혼나지 않았던 나와 달리 언니는 항상 전과목에서 만점을 받아야 됐고, 수영과 미술, 체육 등 모든 면에서도 뛰어나야 됐다. 나의 재활을 위해 시작했던 피아노, 수영, 그림.... 이 언니에겐 결국 짐이 됐었다. 동생을 지켜 줄 수 있고 먼 훗날 동생의 생계를 책임져야 되는 강한 언니가 되기 위해선 당연히 그래야 된다고 엄마는 믿었다. 착한 언니는 잘 따라줬다. 바보같이... 언니가 어릴 때부터 조금씩 반항했었다면 나에 대한 책임감이 좀 줄어들 수 있었을 테지만, 언니는 엄마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 뭐든지 열심히 했다.
초등학생 시절 난, 고작 한 살 많았던 언니 등에 업혀서 등교한 적도 많았다. 맞벌이 었던 엄마를 대신해 나의 준비물과 책가방도 모두 언니가 들어줬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내가 환경미화부장을 맡은 탓에 커다란 쓰레기통과 대빗자루를 가져가야 됐었는데 언니가 한 번은 등굣길에 플라스틱 쓰레기통을 길바닥에 던져버렸다. 나는 엉엉 울었고, 언니는 그런 날 버려두고 혼자 등교했다. 언니는 아마... 그 쓰레기통에 자신에게 지워진 모든 삶의 무거움을(특히 동생) 구겨 넣어 버리고 싶었을 것이다.
초등학생 때 난, 소풍을 가는 날이면 반이 바뀌었다. 우리 반이 아닌 한 학년 위 언니 반 소풍에 따라갔었다. 눈치는 보였지만... 대부분 반장을 맡았었던 언니의 직위(?)와 활발한 성격 탓에 언니 친구들이 내게 잘해주는 게 좋았다. '언제 나를 놀리려나' 걱정시켰던 내 친구들과 달랐기 때문에 언니 뒤만 졸졸 따라다녔었다.
언니는 내가 졸졸 따라다니는 것을 징글징글하게 싫어했었다. 하지만 내가 괴롭힘을 당하면 언니는 반 친구들을 모두 데리고 우리 반으로 출동하곤 했다.
"누가 우리 동생 괴롭혔어? 누구야?"라고 말해주는 언니는 나의 모든 것, 우상이었다.
하지만 고등학교 즈음부터 우린 조금씩 변해갔다. 아팠던 동생이었던 난, 온 가족의 사랑과 보살핌 덕분에 점점 더 사람 구실을 하게 됐다. 내가 바보 천치로 살게 될 것이라고 했던 의사 선생님의 우려와 달리 '공부'라는 것도 할 수 있게 됐고 친구들도 생겼다. 이제 내게 언니가 필요하지 않았다.
반면 언니의 마음은 점점 더 아파졌다. 어릴 때 받지 못했던 부모님의 사랑과 관심을 받기 위해 점점 정도에서 벗어났다. 언니는 건강해졌지만 아직 버스를 타지 못하는 동생이 따라다니지 못할 만큼의 먼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우리가 살던 곳과 매우 먼 그곳! 아무도 언니에게 '어른스럽게'살라고 강요하는 이들이 없는 곳에서 언니는 뒤늦게 숨을 쉬게 됐다. 그리고 언니는 자유롭게 살겠다며 부모님의 바람에서 점점 더 멀어졌다. 성적이 떨어졌고 어렸을 때 알던 친구들과의 학습, 생활 격차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지자 언니는 설 곳을 잃었다.
그리고 결국 성인이 돼자 일본으로 떠나버렸다.
언니가 가족, 특히 나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했던 것을 알고 있었다. 다만, 일어일문학과를 전공했던 언니가 일본으로 떠난 게 나쁜 것만은 아니라며 생각하며 언니에 대한 죄책감을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
<우리들의 블루스 12화 영옥의 독백 중>
나의 엄마 아빤 화가셨다. 화가로서 앞날이 창창했던 두 분은 가난해도 좋으니 평생 별일 없이 행복하게만 해달라고 늘 기도했단다. 그런데 기도는 이뤄지지 않았고 별 일이 일어났다. 나랑 재앙이가 동시에 태어난 것이다. 그리고 불행이 시작됐다. 내 쌍둥이 언니 영희가 우리에게 온 건 우리 가족이 선한 사람을 찾는 신의 심사를 통과한 것 일고 신은 조금 아프거나 특별한 아이를 세상에 보낼 때 이 특별한 선물을 감당할 만큼 착하고 큰 사람을 고른다 했다. 그래서 우리 가족이 당첨된 거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게 사실이라면 그건 신의 실수다. 엄마 아빤 착하고 큰 사람이 분명하지만 난 절대 착하지도 않고 모든 걸 감당할 만큼 그릇이 큰 사람도 아니다. 난 신의 이 특별한 선물이 부담스럽고 싫었다. 그리고 영희와 내가 열두 살 때 부보님이 돌아가셨다. 이 또한 신의 실수고 횡포다. 우린 한동안 엄마를 닮아 착하고 착한 이모의 집에서 살았다. 그러나 이모집에서의 생활은 1년 만에 끝이 났다. 영희가 특별한 건 맞다. 영희는 특별히 이상하고 특별히 못났고 특별히 나를 힘들게 만드니까. 그때 버렸어야 했나... 돈 벌로 지방에 간다는 건 핑계였다. 나는 영희와 멀어지고 싶었다. 그래서 일자리도 경기에서 충청으로, 충청에서 강릉, 통영 제주로 멀리 자꾸 옮겼다. 약속도 어겼다. 돈만 보내고 자주 보러 가지 않았다. 나는 그러다 보면 영희가 날 잊을 줄 알았다. 아니면 기다리다 지쳐 영원히 나를 안 찾거나... 내가 영희를 너무 쉽게 봤다.
어제 드라마를 보다가 언니가 생각났고 미안했고... 정말 미안했다. 충분히 엄마의 사랑을 언니와 나눌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던... 시간들이 생각났다.
일본으로 건너 간 언니의 삶은 평탄하지 않았다. 타고난 운명을 믿고 있는 나로선, 최근 언니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신이 원망스러웠다. 어릴 때부터 당연히 받았어야 될 사랑을 받지 못하더니... 아무리 열심히 해도 도무지 풀리지 않고 더 엉망으로 얽혀 버리는 언니의 삶을 보고 있으면 이건 정말 신이 작정하고 누구 하나 죽이려는 거구나... 싶다. 그렇지 않고서는 낮에 회사에서 일을 하고 저녁에 쇼핑몰 운영을 하고 새벽에 물류센터 알바로 세 시간 이상 잔 적 없다는 언니의 삶이 점점 더 힘들어질 수가 없으니까!
언니가 머나먼 타국에서 고생을 한다는 것을 듣고 있으면서도 내 새끼 병원비와 상담비를 먼저 떠올리며 모른척했던 나는 도대체 뭔가 싶다.
둥이가 아파서, 남편이 나이가 들어서, 내 몸에 커다란 종양이 자라고 있어서, 로봇수술비가 천만 원이라서, 나도 좋아하지 않는 일인데 먹고살려고 하는 수 없이 하는데, 몇 년 후 엄마 아빠가 편찮으시면 모셔야 되니까... 등 수많은 이유를 재빨리 찾아 나를 방어하고 있다. 드라마 속 다운증후군인 영희는 자신을 버린 동생을 용서하며 찾아왔는데... 여전히 아무것도 하지 않은 체 몇십 년을 버티고 있는 나는 참... 답이 없는 사람이다.
드라마가 끝난 후, 음악을 들으며 두세 시간 동안 언니와의 추억을 떠올렸다.
내겐 추억이지만 언니에겐 고통이었을 수도 있었을 그 시간. 지금 언니는 물류센터에서 밤새고 택배 분류작업을 하고 있을 텐데... 난 방 안 침대에서 누워서... 고작 추억이나 하고 있다.
잊고 있던 감정을, 굳이 후벼 파듯 찾아서 꺼내보여 주는 드라마가 참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