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에 방영한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노희경 작가님의 작품답게 김혜자, 고두심, 이병헌, 이정은, 엄정화, 신민아, 차승원, 한지민, 김우빈 등 연기파 배우들의 캐스팅으로 방영 전부터 매우 기대했던 드라마다. (그리고 최근에 뿅~ 반한 박지환 배우님까지^^)
작년 봄. 예고편에 반해 본방사수를 다짐하며 드라마 시작을 손꼽아 기다렸다. 하지만 정작 시작되고 나니 몇 회 보지 못하고 드라마 시청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우정만큼 깊어진 오해, 다운증후군(장애)에 대한 접근, 부모와 자식 간 애증 등. 다양한 인간관계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을 굉장히 민감하고 세심하게 터치한 작가님의 글에 몰입됐다. 게다가 실제 인물인지 배우인지 구분하기 힘들 만큼 명연기를 보여 준 배우님들 덕분에 드라마에서 헤어날 수 없었다.
감정소모가 심해서 진이 빠질 정도였다. 기본적으로 드라마가가 방송되는 주말 저녁부터 화요일 오전까지는 감동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심하면 일주일도 갔다. 생각할수록, 곱씹을수록 애잔했다.
'우리들의 블루스'를 다시 보게 된 건 한 달 전부터였다.
아무도 없는 대낮이라는 시간과 넷플릭스 덕분에 감정의 끊김 없이 정주행 할 수 있었다.
본방송으로 봤을 때는 가족들이 함께 있는 주말 저녁이라 울지 못했는데 혼자서 보니 맘 놓고 펑펑 울 수 있었다. 거의 모든 에피소드마다 펑펑 울었다. 너무 빠져들어서 생활이 힘들 정도였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봤다. 각 에피소드마다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됐지만 인물들의 마음을 생각하면 괜히 짠했다. 몰입을 방해하는 가족들이 집에 있는 시간에는 볼 수 없었기에 20회 차 드라마를 3일에 걸쳐 정주행 했다.
그리고 일주일을 쉬었다. 쉰다기보단 계속 생각했다. 제주도 푸릉마을, 가족을 바다에서 잃고도 물질을 멈출 수 없는 해녀들의 삶, 다운증후군 언니를 피해 서울에서 제주까지 도망치듯 내려온 영옥의 마음, 어마무시한 사고(?)를 치고서도 사랑이란 이름에 당당한 고등학생 커플, 엄마 없이 생고생하며 키운 고등학생 자녀가 애를 낳겠다고 했을 때 무너진 아빠의 마음 등. 생각할게 한두 가지가 아니라 일주일도 빠듯했다.
이렇게 한참 동안 진정한 후 다시 천천히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역시 펑펑 우느라 놓친 대사와 장면이 많았다. 마음을 추스르면서 다시 집중하여 시청했다.
가까운 사람에게 돈을 빌리기 위해 아쉬운 소리를 해 본 적 없었을 테고, 장애인 가족도 없을 테고, 엄마와 평생 원수처럼 살지도 않았을 텐데 어떻게 다 겪어본 사람처럼 글을 적으신 건지. 정말이지 노희경 작가님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모든 에피소드가 감동적이었지만,
내가 장애인이기 때문인지 다운증후군을 다룬 '영옥과 영희' 에피소드가 가장 와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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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으로 감동적인 이야기는 '동석과 선아'의 에피소드였다.
어린 시절의 아픔, 시간을 두고 만날 때마다 생겼던 이야기도 좋았지만 '우울증'을 다룬 부분에 집중해서 봤다. 현재 내가 우울증을 겪고 있기 때문에 우울감이 왔을 때의 느낌, 주변 사람들의 강요와 포기, 우울증 환자에게 희망이 되는 위로 등 동석과 선아의 대사가 모두 명대사라고 생각됐다.
(동석) 너도 알다시피 나 무식하잖아. 내가 알기 쉽게 설명해 봐. 우울증 걸리면 기분이 어떤지.
(선아) 설명할 수 없어.
(동석) 아, 그래도 해 봐.
(선아) 뭐랄까...... 몸은 늘 물에 빠진 솜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는 기분? 그리고 눈앞의 모든 게 깜깜하고 분명히 지금처럼 불빛들이 많은데도 우울감이 오면 아무것도 안 보여. 앞이 깜깜해져.
(동석) 근데 이거 못 고쳐?
(선아) 아니. 의사는 고칠 수 있대. 이제 상담받아보려고. 약만 먹으니까 잘 안 낫나 싶어서.
(동석) 그래, 뭐든 해봐. 아니, 밤에도 밖이 이렇게 밝은데 그게 안 보이고 눈앞이 깜깜하면 오죽 무섭겠냐. 뭐든 해봐, 해 봐. 약도 상담도.
드라마를 보면 '늘 물에 빠진 솜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는 기분. 불빛이 많은데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깜깜한 느낌'이란 선아의 대사에 맞게 온몸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고 세상이 까맣게 변하는 영상이 나온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이 무거운 느낌, 나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 막막함을 정말 잘 표현했다고 느꼈다. 실례인 것은 알지만 '분명히 작가님이나 드라마 스탭 중 누군가 한 명은 우울증을 알아봤을 거야.'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밝은데 그게 안 보이고 깜깜하면 오죽 무섭겠냐.'라는 동석의 대사. 공감의 마음.
'우리나라 우울증 환자 중 이런 공감을 받아본 사람이 과연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오죽 무섭겠냐, 얼마나 힘들었니'라는 말 대신에 내가 많이 들은 말은 '너만 그런 거 아니다. 다 힘들다. 긍정적인 생각만 해봐.'였다.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 말을 듣고서도 '고맙다'라고 말해야 되는 내가 더 싫어지게 만드는 말들.
내 우울감이 명상과 좋은 책 따위로 치유할 수 없는 감정이라고 확신하기까지 나도 무서웠다. 잘 산 것 같은데 갑자기 왜 뒤죽박죽 된 것인지, 앞으로 사회생활을 못 하면 어쩌나...
'많이 배우지 못하고 다소 거친' 캐릭터 동석은 선아에게는 정말로 따뜻한 사람이었다.
불쌍한 사람에게 건네는 가벼운 위로 말고 진심 어린 공감과 걱정을 할 수 있는 멋진 동석을 바라고만 있기에는 내가 너무 초라해지니 '우울증에 걸린 여주인공 선아가 너무 예뻐서 그런 거지.'라고 넘겨본다.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라는 의문과 함께.
(동석) 망가지려고 작정한 사람처럼 왜 이래? (생략) 밥도 먹고. 물도 안 마시고. 애도 있으면서 어떻게든 살아 보려고 해야 될 거 아니야.
(선아) 내 전 남편처럼 얘끼하지 마. 우리 엄마처럼 얘기하지 마.
대체 선아야, 너 언제까지 슬퍼할 거냐고. 언제 벗어날 수 있을 거냐고 묻지 마! 나도 내가 언제 벗어날 수 있을지 언제까지 슬퍼해야 될지 몰라서 이러는 거니까. 이런 내가 보기 싫어? 보기 싫으면 떠나면 돼. 어렸을 때 우리 엄마처럼. 전 남편 태훈 씨처럼.
내 몸에서 태어난 자식을 돌볼 때조차 짜증 나는데 심지어 타인을 위로하고 공감하는 건 더 쉽지 않겠지. 당연히 질리겠지. 지긋지긋할 것이다.
우울증으로 휴직을 하기까지 가장 어려웠던 것은 가족들의 반대였다.
엄마는 장애인으로 태어난 딸이 제 앞가림하며 잘 살고 있다는, 훈장 같은 자랑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됐고 같은 직장에 다니는 남편은 우울증 부인을 둔 사람으로 찍히는 게 싫었을 것이다. 수년을 반대했다. 울면서 빌고 또 빌었다. 생각해 보면 엄마와 남편은 나의 우울증을 공감해서 내가 쉴 수 있게 허락한 것은 아니었다. 우울증이 심해져 뇌기능이 이상해졌고 류머티스가 심해져 섬유근육통, 절뚝거리는 다리를 본 후 어쩔 수 없이 포기한 것이다.
엄마와 남편은 내가 쉰 후로도 날 쉬게 놔두지 않았다. 충분히 쉰 후에 내가 알아서 할 텐데도 가만히 놔두면 우울증이 더 심해진다는 명목하에 매일 집 밖으로 나가길 권유했다. '운동이라도 좀 하지. 잠시라도 걸어보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으로 지정된 사람들의 얘기를 난 또 따르고.
우울증은 치매처럼 서로 사랑하고 책임저야 되는 운명 공동체, 가족조차 질리게 만드는 정말 지긋지긋한 병이다.
(동석) 대체 너 무슨 생각을 그렇게 자꾸 해?
(선아) 머리가 너무 아파.
(동석) 다른 생각 해!
(선아) 나도 그러고 싶은데 잘 안 돼! 나 좀 도와줘.
"나도 그러고 싶은데 잘 안 돼. 나 좀 도와줘"
우울증으로 휴직 중이라는 소문을 듣고 많은 지인들에게 연락을 받았다.
'부정적인 생각 하지 마, 아예 생각을 하지 마.'라며 감동 가득한 영상을 보내주거나 글을 보내주는 분들도 있었다. 감사하지만 또 그만큼 부담됐다. 그들은 내가 우울증으로 진단받기 전에 '마음치유'에 관한 책이나 영상을 얼마나 많이 봤는지 모르겠지. '적게 먹고 운동하면 살 빠진다.'는 대원칙을 몰라서 살이 찌는 게 아닌데.
나는 가만히 나하고만 있고 싶다. 다른 사람들 눈치 보느라 살피지 못했던 나를 알아채고 싶다.
이 글을 어떻게 끝내야 될지 모르겠다.
아무도 읽지 않을지언정 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로 결론을 내야 되긴 하는데 계속 더 우울해져서 적을 수가 없다. 그래서 내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든 동석의 대사로 대신 끝맺음을 해야겠다.(이렇게 좋은 작품을 적어주신 노희경 작가님께 뒤늦게 감사하면서...)
그러다 보면 뭐 결국엔. 그 나물에 그 밥이라고 네 아들도 커서 너처럼 되겠지. 뭐. 결국 맞잖아. 엄마는 이렇게 울다가 결국 단 한 번도 행복해보지 못하고 죽으면 너 닮아서 평생 망가지고 싶거나 기회만 되면 죽고 싶거나 지 팔자 탓하면서 우울해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