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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진 Nov 17. 2023

수능 후 스터디카페

오늘은 아침부터 분주했다.

식사 후 그릇을 개수대에 넣어 남은 잔반들이 굳지 않도록 물만 적시고, 끝!

빨래도 청소도 하나도 하지 않은 채 외출 준비를 한다. 세수도 대충, 화장은... 선크림만 쓱쓱, 30초 만에 옷도 다 입었다. 어제 입은 청바지와 티셔츠, 패딩조끼, 양말. 


가방을 꺼내면서부터는 속도가 느려진다. 노트북과 전원선을 넣고, 스타벅스 캔커피 1개, 귤 2개, 보조배터리, 핸드크림, 텀블러 2개, 립밤을 아, 오레오 과자까지 야무지게 넣고 책장 앞으로 간다. 글을 적다가 심심하면 읽을 책을 고른다. 오늘의 책은 신경숙 작가님의 <리진>과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기대된다.


나는 그렇게 빵빵한 가방을 든 채, 등교하는 아들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탄다. 

  "어제 형아들 대학교 입학시험도 끝났다던데, 엄마는 무슨 공부를 해? 엄마는 취직도 했잖아."

  "음... 글 쓰는 공부. 글 쓰는 사람들이 보는 시험을 '공모전'이라고 하는데 이제 시작이거든. 그거 공부해."

  "어른들이 본다는 소설책 공부야?"

  "응. 어제 엄마가 읽는 책 봤지. 엄청 두껍잖아. 그 안에 적힐 만큼의 긴 이야기를 상상하고, 읽기 쉽도록 잘 적어야 되거든.  그런 공부를 하는 거야. 승현이가 초등학교를 6년 동안 다니듯 엄마도 계속 공부해야 돼."

  "알아, 천천히."

  "응. 3년에서 10년 정도 후, 우리 둥이가 중학교,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하다 보면 엄마만의 글을 적을 수 있을 거라고 믿어."

  "응. 엄마 열심히 책 공부 하고 와. 나도 학교 잘 갔다 올게."


아들과 난, 아파트 입구에서 헤어진다. 우연히 만난 친구들과 함께 등교하는 아들의 모습. 아들이 공부하는 모습도 좋지만 저렇게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는 모습은 볼 때마다 울컥, 감사하다. 


스터디카페는 우리 집에서 충분히 걸을 수 있는 거리라서 남편이 운동도 할 겸 꼭 걸어가라고 했지만, 3박 4일  외박해도 될 만큼 이것저것 많이 넣은 탓에 가방이 너무 무겁다. 아무래도, 어쩔 수 없이 지하철을 타기로 한다. '나의 어깨는 소중하니까, 복지카드가 있으면 지하철 이용요금이 무료니까.'라며 걷지 않은 나를 합리화한다.


오랜만에 스터디카페에 왔다. 오전 8시 50분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없다. 항상 다섯 명 정도는 있었는데, 이게 웬일이지? 생각해 보니 어제가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이었다  아무리 공부하는 학생이라지만, 재수 아닌 오수생이라도 어제 그렇게 오랫동안 집중했으면 당분간 푹 쉬어야겠지.

 

나는 사람이 있든, 없든 언제나 같은 자리 '44번'에 앉는다. 노트북을 할 수 있는 홀, 딱 중간 자리다. 

소음이 나지 않도록 조심조심 움직여야 되지만 오늘은 아무도 없으니까, 편하게 짐을 풀고 텀블러 두 개를 손에 들고 로비로 간다. 아메리카노와 생수를 각각 담아 자리로 돌아오고 나서야 모든 준비가 끝났다. 

글을 적기만 하면 된다. 빈 페이지만 뚫어져라 보고 있노라니 갑자기 화장실이 가고 싶다. 화장실에 다녀와서 다시 자리에 앉았다. 물로 씻은 손이 당기는 듯해 핸드크림을 바른다. 물을 마시고는 립밤을 바른다. 

'이제 글을 적어볼까?' 생각만 하다가 좋은 글을 많이 보는 게 우선인 것 같아서 소설책을 본다. 소설책은 글쓰기, 공부, 집안일 등 해야 될 게 있을 때 유독 생각난다. 

틈틈이 로비로 나가 먹던 귤과 오레오가 떨어졌다. 그 많던 간식들을 난, 언제 다 먹었던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소설에만 집중할 수 있게 생활을 단순화시켰다던데, 나도 더 이상 딴짓할 게 없어지자 글이 적힌다. 할 수 없이, 심심해서 글을 적는다. 무엇이든지 적어보자. 긁적이다 보면 언젠가는 내 글이 툭! 튀어나오리.


그렇게 한 시간쯤 적고 나니 사람들이 오기 시작한다. 저들은 무슨 바람이 있길래 이렇게 날씨 좋은 금요일에 놀러도 가지 않고 이곳에 온 걸까? 잠시 사람들을 구경하다 또 적는다. 

쓰다가 읽고, 읽다가 글을 적는 것을 무한 반복한다. 아니, 무한 반복할 수 있기를 원한다.

그러다 보면 한 겨울이, 2024년이 될 테고 지금 고민하는 것들이 해결 돼 있겠지?


스터디카페에 새로운 수험생들이 가득 차일 내년 이맘때에도 내가 글을 적고 책을 읽고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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